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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Aug 27. 2021

헤일메리는 과연 응답할 것인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이 글에는 스포가 담겨 있으니 주의하세요!


《마션》으로 이름을 알린 앤디 위어의 신작 《프로젝트 헤일메리》. 이 책은 ‘헤일메리호’라는 우주선에서 한 남자가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한다. 컴퓨터의 집요한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지만,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던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까먹은 신세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동료로 보이는 두 명의 싸늘한 시신이 놓여 있다. 


웬일인지 실험실의 도구가 낯설지 않고 과학 개념에 빠삭한 그는 이런저런 실험으로 중력가속도를 계산해 낸다. 곧이어 자신이 현재 지구에 있지 않으며, 우주선 화면에 보이는 뻘건 항성이 태양이 아님을 눈치챈다. 그의 이름은 라일랜드 그레이스, 직업은 과학 교사.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선에 올라탔지만, 무슨 일인지 우주선은 편도행이다. 그리고 현재 우주선에 홀로 살아남아 지구와 다른 태양계에 훌쩍 떨어져 있다. 즉, 그는 ‘헤일메리 프로젝트’를 끝내도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다.


출처: 《프로젝트 헤일메리》(RHK코리아)


이 책은 헤일메리호에서 홀로 살아남은 현재의 그레이스와 지구에서 ‘아스트로파지’를 파헤치는 과거의 그레이스를 번갈아 보여준다. 아스트로파지는 그가 이름 붙인 외계 미생물로, 태양을 잠식하여 태양의 빛이 사그라들게 한다. 이로 인해 지구에도 빙하기라는 위기가 닥쳐 온다. 대개 과거는 그레이스가 떠올리는 대로 등장하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일정한 순서로 나타나는 편이다. 


수많은 과학적 지식으로 쌓아 올린 이 책은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다. 그러나 어느 SF 소설보다 탄탄하고 흥미롭다. 영리하게도 이 책은 주인공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의 상태에서 기억을 되짚고 실험을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구성을 택했다. 따라서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다행히 완독할 수 있다(아예 어렵지 않은 건 아니다). 


작가의 이러한 성향은 아마 전작 《마션》에서도 나타났을 테지만, 나는 그 책을 사놓고서 여태 읽지 않았다. 동명의 영화로 《마션》을 접한 상태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인상은 무척 낯설었다. 흥겨운 올드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낯선 행성에 홀로 남겨진 모습이 아니었다. 바깥에는 컴컴한 우주만이 펼쳐져 있고, 주인공은 우주선을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동료의 죽음과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알고 더욱 처연해진다. 


Photo by Ivan Diaz on Unsplash


이 책은 SF 소설로 접근해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소통’이었다. 이 책의 보도자료에서도 공생과 연대 그리고 우정을 강조한다. 아마 이러한 점을 많은 독자가 눈치챘을리라 본다. 헤일메리호에서 눈떴을 때 처음 만난 로봇부터 이후 만나는 외계 우주선의 낯선 존재까지. 주인공 그레이스가 각각의 대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살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지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은 대체로 일방적이다. 인류 존폐를 건 지구 최대의 고비 앞에 프로젝트의 리더들은 주로 ‘통보’를 한다. 처음에는 이 방식을 끔찍하게 싫어하던 그레이스도 어느샌가 농담을 건넬 정도로 익숙해진다. 심지어 헤일메리호의 로봇조차 지구인이 만들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일방통행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구인 ‘어른’만 일방적일 수도 있다. 그는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던 교사 시절을 그리워한다.


반면, 우연히 만난 외계 생명체 ‘로키’와의 소통은 쌍방적이다. 사는 곳의 환경도 외모도 대화 방식도 지구인과 모두 다르지만, 그레이스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로키와 훌륭히 소통한다. 심지어 말도 잘 통한다. 과학적 지식을 갖춘 둘은 실험을 거듭하며 아스트로파지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레이스가 홀로 실험하고 결과를 알리면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던 지구와는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보다 낯선 우주인과의 소통이 그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을까. 프로젝트가 성공하더라도 지구가 살아날지 모르는 상태로 홀로 죽어야 한다는 절망감을 이겨낼 만큼. 헤일메리(절망적인 상황에서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이자, 버저가 울리는 순간에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는 과연 응답할 것인가.    

(덧, 독서를 마치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면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진다.)



카피 사진: Photo by Vincentiu Solom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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