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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Feb 02. 2016

시간의 감옥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이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물론 꿈이라고 생각하던 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분수대에서 그대로 정지해 있는 물줄기를 보고 있을 때면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다.


누가 마네킹이고 누가 사람인지도 잘 구분을 할 수도 없었다.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보지만 결국 혼잣말이 될 뿐이었다. 간혹 가다가 혼잣말이라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한참을 떠들다가 문득 가짜 관절들을  보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배가 고프지도 피곤하지도 않지만 돌아다니는 내 모습에 지쳐서 잠을 청했다.


나의 취미가 생겼다. 내가 움직일 때의 내 옷의 나풀거림을 관찰하거나..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는 것. 물론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자살도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충격이 몸안으로 파고들어갈 시간 자체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상처도 생기지 않는다. 칼도 상처를 내 보려고 해도 내 피부를 뚫지 못한다. 한순간 그 찰나에 아주 순간적인 찌릿함 정도만 느낄 뿐이다.


하지만 그 느낌이라도 느껴보기 위해 일부러 통증이라도  불러일으켜 보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그런 행동도 질린다. 시간이 정지해 있기에 한정된 공간에 있다 보면 더 미칠 것 같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물론 문이 닫혀있는 곳은 갈 수 없기 때문에 문이 열려있는 실내나 야외만 돌아다닌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돈 따위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을 했고 이곳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움직일 때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지갑을 들고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지갑을 지하철에서 구걸하고 있는 노숙자의 바구니에 던져버리고 조금은 몸이 가볍고 후련해졌다. 그렇게 계속 돌아다니던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아름답고 예쁘고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장소는 전혀 그럴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모든 것에 의심이 쌓여가다 보니 그녀가 마네킹 인지도 확인해봤지만 사람이 확실했다.


문제는 그 여자는 조각처럼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나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 딱딱한 플라스틱 같은 피부의 촉감과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그녀의 눈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녀가 쌀쌀해 보여서  두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하고 옷도 입혀줘 봤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의 집이라고 생각되는 집의 문 앞에 서 있다. 문을  열려하고 있다. 그녀는 문을 바라볼 뿐이다.


너무 아름다운 그녀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다. 뭔가 번뜩 생각이 나서 고층 아파트 복도에서 땅으로 단숨에  뛰어내렸다. 지하철의 노숙자에게 던져놓은 나의 지갑을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 안의 내 신분증. 사진. 추억들이 잠들어 있었기에 나는 기쁜 마음에 힘들게 뛰어서 그 노숙자를 찾아서 지갑을 다시 주웠다. 나를 증명할 것들을 찾아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나를 알아봐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시간이 멈춘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행복감이다. 이제 그녀에게 주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가 힘들어서 고개를 숙이고 헉헉 거리는데 내 귓가에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똑......... 딱.......... 똑...... 딱..... 똑.... 딱.. 똑.. 딱. 똑딱


내 손목시계가 움직인다. 나는 제차 확인한다. 내 귀에 시계를 가져가 보고 확인하다. 시간이 흐른다! 그녀에게 나를 알릴 수 있다! 그 순간. 온몸에 통증이 한 번에 찾아온다.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자학을 했던 통증들이 한 번에 밀려온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랜만에  찾아온 시간이고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전에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당연히 익숙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언제든지 다시 멈출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통증을 억지로 악으로 버티면서 기쁜 마음에 뛰어간다. 전력질주를 한다. 


오랜만에 시간이 흐른다는 것 따위는, 통증 따위는  이 기쁨에 묻히는 듯했다. 내 장기를 토할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엘리베이터도 움직이고 있었지만 믿을 수 없어 계단으로 뛰어갔다. 분명히 내가 기억하는 층에 도착했는데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집에 들어간 것일까 싶어 그녀 집 앞으로 간다.


조금씩 다가가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집으로 기억되는 곳 문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나는 그녀를 본 적은 있지만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집안에 다른 사람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은 복잡해서 터질 것만 같다. 더 이상 문 앞에서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녀를 어떻게든 불러서 이야기라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녀는 내가 누군지 물었다. 순간 너무 오랜만에 듣는 사람 목소리라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그 첫 목소리가 그녀라니 너무 행복했다. 베시시 웃으며 대답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제차 물었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뭐라도 둘러댈만한걸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중국집과 피자집 스티커가 문구석에 몇 개 붙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배달 왔다고 말을 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택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둘러댔고 곧 그녀가 현관 쪽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문 앞에서 잠금장치를 풀고 있었다. 그 순간 서서히 모든 소리가 다시금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시계를 바라보았는데 바늘 움직이는 모습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다.


시간이 서서히 느려지면서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문틈으로 그녀의 눈이 보였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계를 확인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바늘도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 분명 여기에 그녀가 있다. 바로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시간이 멈춰버렸다. 이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 베란다 쪽으로 가서 베란다 문을 아무리 걷어차 봐도 멈춰진 시간에선 유리가 깨질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나는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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