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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Feb 01. 2016

죽음/자장면

-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들 -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이 나에게는 평범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세상 모두가 특별하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기는 하지만 내가 그 사이에 녹아드는 것은 왠지 쪽팔리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 사이코패스라느니 소시오패스라느니 말을 하곤 하지만 나는 그리 이성적으로 생각하지도 뭔가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휘둘리고 싶지 않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염병에 걸린 것도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 평범한 "타인"이 되고 싶다. 그러기에 학교라는 공간은 너무 좁고 답답하다. 나에게 과도한 신경을 쓰는 것 같아 귀찮을 뿐이다. 


수 많은 귀찮음을 억지로 버티고 집으로 가는 길. 내가 원하는 타인이 된다. 그렇게 타인의 모습을 만끽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오직 아빠만이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머릿속에 담을 능력도 없던 시기에 이미 엄마는 세상을 떠났단다. 기억할 능력이 없던 나는 엄마라는 존재를 머릿속에 담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같은 반 친구의 생일이 나와 같은 날인 것처럼 신기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상적인 사건일 뿐이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엄마가 없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아내려는 듯한 말투로 항상 더 좋은 성적과 인성을 강요했다. 채찍은 소모되지 않지만 당근은 소모되기에 사용하기 아깝다는 듯이 아빠는 늘 채찍으로 나를 달리게 하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빠가 빨리 엄마를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생각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들 한다. 나의 간절함에 반응하는 것처럼 아빠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고 그럴수록 나를 더욱 다그쳤다. 나는 속으로 비웃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렇게 나를 못 살게 굴더니 결국 건강이 안 좋아진다고 하니 그동안 내가 당해왔던 것에 보상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분명히 뛸 듯이 기뻐해야 할 말이었지만 내 얼굴에는 영혼이 붕괴되어 몸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하는 듯 헛웃음만 가득했다. 오만가지 생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 많은 생각들 때문에 숨 쉬는 일 외에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빠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공부하라고 다그쳤다. 늘 보던 표정이었는데 슬퍼 보이기도 하면서 나보다 훨씬 복잡한 생각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내 등을 토닥여주고 방으로 돌아가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제 나 혼자 남았다. 나를 돌봐줄 사람도 내가 돌봐야 할 사람도 없이 오롯이 나 혼자 남았다. 이 모습은 분명히 예전에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호들갑이라도 떨며 기뻐해야 할 내가 조각상처럼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지독하다고 손가락질했다. 그 상황에 억지로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쏟아내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했다. 


장례를 치르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빠방은 잠기지 않은 채 봉인되어 버렸다. 나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장례 후 아빠의 짐을 처리할 방법도 모르고 생각도 못하다가 옷을 태워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오랜 고민 끝에 아빠방에 들어갔다. 그곳의 시간은 철저하게 멈춰있었다. 나는 아빠의 옷가지를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맑은 하늘의 뜨거운 햇살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철제 통을 주워다 놓고 그 안에 옷가지를  집어넣으며 태우기 시작했다. 활기차게 타오르는 불꽃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중간에 새하얀 와이셔츠를 태우려고 집어 들었는데 검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뭔가 하고 옷을 펼쳐봤다. 그것은 자장면 자국이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나에게 같이 밥을 먹자며 말끔히 차려입으시고 같이 중국집을 갔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보이시며 자신의 자장면까지  덜어내 주시던 아빠의 얼굴이 과도할 정도로 선명하게 뇌리에 꽂혔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계속 떠올랐다.  젓가락질하는 모습 자장면 튀는지도 모르고 밝게 먹는 표정 반짝이던 구두 나를 바라보던 표정까지 하나하나 시간이 갈수록 강하고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바로 앞의 불꽃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스스로가 추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참하게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이나 울고 난 후에 결국 그 옷은 태우지 못하고 가지고 내려와 버렸다. 그제야 집에서 아빠가 나를 위해 했던 행동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건강에 좋다며 이름 모를 약초를 끓이고 있거나 내 밥을 챙기신다고 졸린 눈물 비비시거나 하는 모습들이 집안 가득 바이러스처럼 퍼져서 눈에 아른거렸다. 그 후로 한동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이 나에게는 평범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한없이 평범한 것이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특별한 것도 무시하고 살다가 너무 늦게 특별함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다. 이제 나에게 그 어떤 것도 평범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기분 좋은 특별한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오늘 날씨,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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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세요.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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