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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Feb 12. 2016

가면/불꽃놀이/볼펜

-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들 -

나는 오빠가 이런 미신을 믿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피라도 흐르는 것 같은 리얼한 모양과 색상의 가면을 거실에 떡하니 걸어놨다. 가면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절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모양이었다. 


요즘 사정이 어렵다곤 하지만 이런 흉측한 가면을 집에 걸어놓는 것으로 안정감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오빠의 생각을 꺾을 수는 없었다. 사실 오빠의 성격이 가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사람은 아니라 따지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심지어 며칠이 지났을  때쯤엔 그 가면이 익숙해지고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 가면이 우리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만한 조건은 완벽했지만 왜 의심을 하지 않고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됐다. 지금은 그 가면과 비슷한 가면, 비슷한 표정만 봐도 흠칫 놀라곤 한다.


그날은 손님을 초대했다고 했다. 평생 오빠가 누군가를 집에 데려오는 일은 처음이었다. 오빠는 사람들을 집에  들여놓고는 나를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자기들끼리 뭘 하고 놀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집단에 섞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가서 찬바람 맞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가까운 커피숍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오빠가 나왔다. 사람들을 위해 간식을 사러 간다고 하기엔 표정이 비장해 보였다. 난 알 수 있었다. 오빠가 저런 표정을 할 때면 뭔가 사고가 터졌던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예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가서 오빠를 붙잡았다.


무작정 붙잡긴 했지만 할 말은 없었다. 표정이 안 좋으니 커피나 마시고 가라고? 뭐 안 좋은 일 있냐고? 사고 치지 말라고? 다 필요 없는 말들이었다. 물론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무시하고 지나가는 모습은 평소보다 불길하게 느껴졌다.


계속 따라붙자 오빠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하나 꺼내 들었다. 얇은 플라스틱으로 덮여있는 볼펜이었다. 고급 만년필이나 되는 것처럼 정갈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플라스틱 뚜껑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더니 볼펜 몸통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그 볼펜으로 찌를 기세였다. 잠시 눈치는 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딸깍.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우리 집 방향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베란다 창문을 뚫고 화려한 폭죽이 터져나왔다. 충격이 집 벽과 바닥, 천장에 막혔음에도 대부분의 아파트 베란다 창문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가장 큰 불꽃이 반경 200m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충격이었다. 


그런 폭탄이 우리 집에 있을만한 곳이 어디 있나 생각했다. 한군대 있었다. 가면. 처음에는 마네킹 머리에라도 씌워 놓은 줄 알았는데 아무 모양 없는 동그란 모양이라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풍선도 아닌데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이상하다는 것을 떠올린 지금. 우리 집에 방문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확실히 놀이었다. 오빠에게는 불꽃놀이었다. 즐거워 보였다. 평소에 투덜거리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 집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그 투덜거리던 대상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지금 보니 인터넷에서 파는 간단한 전원 장치. 고작해야 형광등이나 켤법한 용도의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오빠는 집을  올려다보며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난 집으로 갈 수도, 도망을 칠 수도, 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몸이 굳어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날 돌아보지 않기를. 이대로 조용히 끝나기를 원했다. 멈춰버린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가면의 파편이 처참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내려앉았다. 날 지켜준 걸까? 우리 집을 모조리 날려버린 걸까? 얼마 후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경찰들의 손에 끌려가는 오빠. 인사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시선을 잠깐 마주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안 좋은 생각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뒤집혔다. 오빠의 그 표정이 갑자기 떠올랐다. 오빠에게 동화되는 걸까. 순간 오빠가 이 정도로 싫어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사라진 거라면. 오빠도 끌려가고 그런 사람들도 사라지고. 세상은 아주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이렇게라도 생각을 해야 지금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가 복잡하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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