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keone Feb 17. 2016

열쇠/달/화분

-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들 -

사람들은 오래전에 지구가 네모난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세계를 여행하던 사람들이 깊은 구멍을 발견하곤 했는데 그것이 반대편까지 뚫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 구멍으로 주기적으로 달이 빨려 들어갔다가 반대편으로 나와서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역사라고 하기엔 최근의 일이었다. 


예전엔 달이 관통하는 지역 근처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달이 지나갈 때마다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딱히 사람들이 거부하는 지역이라는 인상은 사라졌다. 살기 불편하다는 점 때문에 가격이 저렴했고 그 이유로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선 집을 구한 후 적응할 방법을 찾곤 했다.


달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과 사물들이 요동치긴 했지만 집은 튼튼해서 이 정도는 이제 참을만했다. 적응 한 사람들은 그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난 얼마 전에 산 물건을 가지고 들떠 있었다. 망치로 두들겨 놓은  것처럼 단단한 흙으로 만들어진 화분을 보기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달이 뜰 때 꽃이 피는 달맞이 꽃이었다. 이 화분이 재미있는 점은 달을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항상. 달이 어디 있는지 좌표를 확인한 후 자이로스코프처럼 자유자재로 회전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집에 오면 달이 눈에 보이진 않아도  어디쯤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언제쯤 달이  도착할 것인지 알게 된 후론 달이 오는 것을 즐기게 됐다. 달구멍이 있는 쪽 벽에 발을 대고 누워있으면 달이 떨어질 때 잠깐이지만 벽면을 걷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처음엔 맨바닥에서 해봤다가 머리를 바닥에 찧고 후회하긴 했지만 이젠 요령이 생겨서 매트리스를 깔고 즐기고 있다.


또다.  이쯤 되면 나도 열쇠나 팔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은 물건들이 자주 사라지곤 했는데 다른 물건들은 그냥 잃어버렸다 치면 그만이지만 열쇠는 골치 아픈 것이었다. 전자키로 바꾼 사람들도 있었지만 달이 올 때마다 망가져버리는 바람에 다시 열쇠로 돌아와야 했다. 집에 돌아올 때 문 앞에서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띌 때면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남들을 비웃다 보니 내 열쇠가 사라졌다니. 분주해진 열쇠집 아저씨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오늘쯤이었다. 달이 떨어질 때가 됐다. 매번 집에서 달의 위치를 확인하고 즐기기도 했지만 정작 이곳에 이사 온 후로 눈으로 직접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달이 가까워진다. 반짝이는 달. 눈이 부셨다. 이 정도로 밝았나 싶은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반짝임들의 원인이 열쇠였다는 것을. 


언뜻 본 것만으로도 지금 내가 사는 지역. 지구 반대편 지역까지 얼마나 많은 열쇠들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열쇠가 아니라고 해도 수많은 물건들이 빨려가서 반짝이고 있었다. 저 안에 내 열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달이 점점 반짝이고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달에게 빨려간 열쇠를 굳이 찾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열쇠는 찾지 않으면서도 집안의 귀중품이 사라질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어차피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지역에서 도둑이 든다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실제로 열쇠 없이 열려있는 집은 많았지만 물건이 사라진 집은 찾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대화를 시작한 것 같았다. 문이 잠긴 상태로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들끼리의 대화. 문이 열려있는 사람들과 방황하는 사람들의 대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옛날을 떠올리게 됐다. 사라져가던 이웃사람이라는 관계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난생처음 길거리에서 웃는 사람들의 표정을 목격한 것 같았다. 웃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화분이 돌고 달이 돌고 있었다. 달이 가까워졌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달이 다가온다. 동네 사람들은 넓은 공원 난간에 발을 동여매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달 때문에 붕 떴다가 내려가는. 바둥거리기도 하고 눈까지 감고 즐기기도 하는 서로의 의외의 모습을 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평생 이럴 수만 있다면 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밤이었다. 그런 기분 좋은 밤이었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왜 그렇게 잠을 잘 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