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대화
환절기를 맞이하자마자 콧물을 쭈욱 흘리는 세돌지난 아기가 열감기가 걸려 등원이 중지되자 가족 모두가 분주해졌다. 그동안 글을 꽤 오래 못썼지만 나는 작년초부터 계획했던 프리랜서 강사가 드.디.어 되었고. 올 7월부터 아주 열심히 바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일을 시작할 때 가장 걱정이었던 부분이 아이가 아플 때 대처방법이었고, 다행히도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서 하루씩 번갈아가며 가족구성원들이 아이를 돌보았다. 그렇게 일주간 노력한 결과, 아이의 감기는 똑 떨어졌는데 그 후로 나의 감기가 시작되었다. 아픈 아기는 징얼거림이 많고, 짜증이 많아지고,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그런 아이의 투정을 마음으로 몸으로 다 받아줘야 하는게 엄마의 몫인데, 사실 병간호를 하는것보단 이런 감정들을 받아주는 것이 아직도. 3년이나 했는데도 여전히 익숙치가 않아서 아기의 병치레가 끝나면 꼭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것이다.
몸이 아프니 만사가 번거롭고 귀찮다. 이럴 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아이의 반쪽을 담당하는 나의 파트너이기에, 그의 작은 행동 실수에도 예민해지게 되는 시점이 바로 이 기간인 것이다. 어김없이 지난 주말에도 대차게 다툼이 있었다.
근데 왜 싸웠더라?
다툼의 시작은 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부부나 그러겠지만, 아주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이를 낳기전엔 다투다 내 분에 내가 울어버리거나, 혹은 분노가 주체가 않될 때 둘중에 한명이 자리를 나서곤 했었던것 같다. 바람을 쐬고나면 감정이 차분해져서 대화가 잘 마무리 되었었다. 아니 더 솔직히 들여다보자면, 남편이 주로 미안하다고 수긍하고 먼저 인정하는 쪽이었다. 나는 또 상대가 수긍하면 용납과 이해가 빠른편인지라 갈등 해소가 빠르게 되었고, 우리 부부의 관계는 비교적 건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갈등 해소의 과정에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졌다. 서로를 향한 작은 실수가 아이를 양육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갈등의 결이 좀더 날카롭고 첨예해졌다. 더더욱 예민해질 수 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그날도 다투고, 아이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 없어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무작정 혼자 집 앞 까페로 갔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리 심하게 화를 낼 필요가 있던 일이었나 싶다. 분명 이거 말고 이유가 있을거다. 나는 나의 분노의 이유가 무었이었나 적기 시작했다.
분노 note
남편이 최근 나를 대하는 눈빛이나 말의 온도가 변화했다. -> 사랑이 식었다.
부부예의: 그의 행동들 (화장실 사용등)이 날 배려하지 않는다. -> 반복적으로 말했는데도 조심하지 않는다는건 내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는거지. 사랑이 식었네.
오늘도 남편이 갈등 중에 말 꼬투리를 잡고 비꼬며 대답했다. -> 비겁하고 유치하다. 사랑이 식었다.
기승전, 나는 그의 최근 행동들에 사랑이 식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연애만 6년, 결혼은 4년반이 되었고, 네살짜리 아들도 있다. 설레면 그것도 병아닌가? 싶지만서도
나는 그에게서 언제까지나, 내가 머리를 감았건 아니건, 살이 쪘건 아니건간에 사랑받는 아내이고 싶었던게다.
내가 매일 그를 위해 차리는 따뜻한 밥상과, 바쁜와중에도 매일같이 집안 청결에 힘쓰며 그의 면역계 질환을 줄여주려 했다는걸. 그가 회사에서도 멋지게 보였으면 해서 그의 의상도 말끔하게 정리 해놓는 그 모든 것이 그를 위한 애정이라는 것을.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그가 진심으로 알아줬길 바라면서.
나 역시도 그의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배려 받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었던거다. 그게 아니라는 생각에 그의 작은 실수에도 감당치 못할만큼의 분노가 치솟았던것 같다. 그걸 인정했다. 그리고나니 홀가분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집으로 돌아가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다 전달한다.
"당신은 정말 좋은 아빠야. 그런데 최근 일련의 행동들에서 나는 더이상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자로 대하지 않는것 같단 느낌을 받았어. 그래서 작은 실수 하나가 날 너무도 실망시켰던것 같아. 사실 그 실수 하나만으로 그렇게까지 화가 난건 아니었을거야. 마음이 쿵 내려 앉는것 같았어. 난 사랑이 필요해. 당신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모른척 지낼 수는 없는 사람같아. 나는 아이를 함께 키우는 양육파트너로만 생각하며 살수는 없어."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이건 마치 '날 사랑해 주세요'와 같은 사인이었으니까. 정당한 대답을 받지 못한다면 상처는 두배가 될 것 같았으니까.
곧 그가 대답한다.
"미안해. 당신이 나가고 나서 계속 생각했어. 어떤날엔 나도 당신에게 이렇게 대하면 안되는데.. 싶은데 내가 또 그렇게 말하고 있더라고. 아이에게 자상하고 따뜻하게 말해야 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이에게만 그런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느라 미쳐 당신을 돌보지 못했어. 미안해. 노력할게."
눈물이 펑! 터진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서.
문장 하나하나에 지뢰를 심어두고 보란듯이 테스트하는 듯한 나의 정제되지 못한 감정들이 그의 솔직 담백한 말들에 무장해제가 되버린다.
그날 우리는 계획했던 오후 일정을 웃으면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부부간 솔직하지 못한 케이스들을 꽤 많이 봤다. 보통 여자들의 섬세한 감정들을 남자들이 이해나 공감을 못해주거나, 또 한쪽이 느끼는 적나라한 감정들을 상대에게 말하기가 창피해서 숨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보면 되돌릴 수 없을만큼 멀리 가버린다는걸 안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서 그런 고민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최대한 표현하라고 말한다. 사랑 받고 싶다고 말하는게 뭐가 어때서.
여자는 사랑을 받고, 남자는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던 어른들의 그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는데 격한 공감을 표한다.
솔직하자. 그리고 상대도 솔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부부사이에도 당연한건 하나도 없다는걸 인정하는 시점에서부터 부부의 사랑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