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는 육아 초보 시절의 물음표들
아이가 48개월이 넘었다.
일상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내일은 또 내 아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원더윅스는 도대체 언제쯤 끝날까 한숨짓던 밤들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이는 이제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손도 씻고, 양치까지 혼자 할 만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수월해질 만큼 자랐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도 많이 변했다.
육아 초보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땐 매일 같이 주어진 육아가 낯설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던 것 같다. 또 육아를 나의 희생이라 생각했던 부분들이 컸다. 어떻게든 이따금씩 자유부인 시간을 가져야 했으며, 무언가를 사거나 배우거나 정체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당시 아이 첫돌 지나자마자 협회에 등록해서 1년 동안 공부해서 자격증도 땄고, 그 길로 재취업도 했으니 어찌 보면 조바심이 컸었던 것 같다. 육아만 하던 그 시절이 아이에게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 두려웠었다.
그렇게 날 잃지 않겠다며 취업하고 일을 하면서 예전처럼 '일에 열정적인 나'는 다시금 되찾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계속해서 갈증이 일었다. 왜냐면.. 육아도 일도 최선을 다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나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다분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일하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엄마의 역할은 그대로였으니까.
일을 하기까지 할 뿐, 나는 여전히 엄마이고 아내라서 우리 가족의 끼니를 챙겨야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아이의 유치원 준비물과 숙제 행사 준비물 등을 모두 챙겨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얼마 전 확인해보니 지난 1년간 아이를 위해 새로 산 책이 별로 없었단 걸 깨달았다. 4세까지는 모든 면에서 빠르다고, 영특하다고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받던 아이였는데 우리 아이는 딱 그 자리에서 머문 채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예전만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년간 일을 하다가 개인적인 이유로 최근 일을 잠시 쉬게 되었다.
쉬면서 육아에 집중해보니 예전에 몰랐던 행복들이 눈에 보인다.
내가 직접 원으로 가서 하원을 해주는, 일주일에 하루 있는 날을 아이가 제일 기다린다. 유치원 문이 열리면 "엄마~"하고 해맑게 웃으면서 달려 나오는 예쁜 아기의 얼굴. 내가 놓쳤던 것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유치원 학부모 상담회라던지, 설명회라던지, 학부모 브런치 모임이라던지 이런 일들에도 시간적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같은 반 친구들과 하원 후에 키즈카페를 간 적이 있는데 너무도 즐겁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이제야 친구들과 놀게 해 준 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매번 놀이터에 덩그러니 앉아 "나만 친구가 없다"라고 말하던 아이에게 "저기 있는 친구에게 가서 놀자고 해봐~" 시키던 나였는데, 본인이 좋아하고 또 친한 친구들과 노니까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며칠이나 여운이 가시지 않는 듯 그날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를 보면서 한동안 마음이 짠하고 미안했다.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지역 육아 관련 정보도 얻게 되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과의 관계도 바뀌었다. 내가 예전보다 전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니 남편 역시 몸과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일할 때는 집안일 하나도 양보가 안되어서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던 날들이 잦았는데 이젠 부딪히는 일들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도 더 안정적이 된 것 같아 지금의 우리 가족의 모습이 좋다고 한다.
일을 쉰다고 하면 주변에서 흔히 이렇게 말한다.
"복직은 언제 해요?"
"애 다 키워 놓고 나면 뭘 하려고 그래요, 절대 일 놓지 마요"
"아이도 좀만 더 크면 일하는 엄마를 좋아할 거예요"
"남자도 여자가 일을 해야 긴장해요"
이 말들을 왜 하는지는 너무 잘 안다. 아마도 그래서 나 역시도 재취업을 강행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로서 말고, 나로서의 삶을 대비해두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이 드니깐.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답할 용기가 생겼다.
"복직은 언제 해요?"
"제 스스로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요."
"애 다 키워 놓고 나면 뭘 하려고 그래요, 절대 일 놓지 마요"
"지금 하는 이 일을 고수하진 않아요.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때엔 또 그때 하고 싶은 일이 생기겠죠? 인생은 기니까요."
"아이도 좀만 더 크면 일하는 엄마를 좋아할 거예요"
"일을 하든 안 하든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엄마가 될 거예요."
"남자도 여자가 일을 해야 긴장해요"
"내가 일을 해야만 긴장하는 남자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본거겠죠."
예전에는 나를 잃을까 그렇게나 두려웠지만, 지금은 그게 잃는 게 아니란 걸 안다. 나는 한 아이를 키우고 있고, 그 아이의 하루 속에 묻어있는 엄마로서 느끼는 행복감이 정말 크다. 아이가 읽고 싶은 만큼의 책을 읽어주고 난 후 잠자리에 들던 어느 날 밤,
"엄마가 밤에 일하지 않아서 너무 좋아요. 엄마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사랑해요" 말해주는 나의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음에 정말 가슴 가득 벅찬 감동이 밀려들었었다. 일을 할 때는 늘 여유가 없어서 빨리 재워야 내가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데.. 청소를 할 수 있는데.. 장을 볼 수 있는데.. 그러다가 빽 소리 지르며 도대체 언제 잘 거냐고! 아이에게 말했었던 것 같아서 말이다.
최근 2년 전 방영했었던 [산후조리원]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 찾아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나를 잃는 것 같아 괴롭다면 나가서 일을 하는 것도 맞고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이가 눈에 밟혀 그게 너무 힘들다면 전업주부가 되는 것도 맞는 것 같다고.
무엇이 더 괜찮은 건지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그저 사람마다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거니까 엄마가 행복한 삶의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모두가 행복한 방법이겠지. 그러니까 육아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각자의 삶의 방향도 정답은 없는 건데 왜 우리는 꼭 엄마로서의 삶에는 꼭 다음 스텝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게 정답인 것처럼 굴게 되는 걸까.
좀 거창하지만, 내 주변 친구들이 아이 엄마가 된다면 친구의 고군분투 육아기를 함께 따라가며 결국에 도래하고 마는 선택의 순간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괜찮다고 응원해줘야지 다짐한다. 내 주변 엄마들이 불안함보다 안도감을 느끼며 살 길 너무도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