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폭발과 같은 6세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결심
2023. 해가 바뀌어 이제 막 네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나의 아이는 한국나이로 6세가 되었다.
마지막 브런치에 글을 남기던 무려 두 달 전만 해도 나의 육아는 핑크빛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와의 시간들이 어찌나 행복한지. 그 시간들 위로 그리는 일상의 추억들이 예뻐서 그저 좋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행복은 언제나 이렇게나 쉽게 무뎌지는 건지. 아니면 6세의 아이는 원래 이렇게 급변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그런 갈등의 날들이 새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이는 오히려 아기때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물면서 영상 보기는 기본.
길에서 일부러 외발로 삐뚤빼뚤 불안하게 걷다가 넘어져 한겨울의 건조한 맨바닥에 철퍼덕 굴러다니기,
엘리베이터 거울에 묻은 정체 모를 이물질을 점퍼 소매로 다 닦아주고 있는가 하며,
유치원에서 경험했던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던 일을 며칠 동안 반복해서 이야기한다거나,
무슨 일이든 시키면 세월아 네월아,,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만 나열해 보면 '아이니까 당연하지 않아? 아이니까 하는 행동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손에 뭐가 묻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아이라 미술 시간에도 손에 물감이 많이 묻으면 괜찮다 말해줘도 여러 번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와서 다시 수업을 하는 아이였다. 긍정과 사회성의 아이콘이라, 유치원에서 분위기메이커를 자처하며 중간에 새로 입소하는 친구들과 기존 친구들과의 어색함을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밝은 성격과 에너지를 가져, 적응을 어려워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역할도 잘 해내는 아이였다. 승부욕과 욕심이 있어 집중해서 무언가를 성공해 낼 때의 성취감을 즐기고, 그러라 하지도 않았건만 네 돌이 되기 전 진작에 유아변기를 떼었고, 놀이하다가 밥을 먹을 때 시키지도 않았건만 기꺼이 스스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와 앉아 밥을 먹는 그런 아이였단 말이다. 물론 침을 질질 흘리는 유아 시기에도 목에 두르는 빕을 액세서리로 하고 다닐 만큼 침 한번 흘린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어딜 가나 '온순하다. 정말 딸 같은 아들이네. 그 정도면 순한 편이지. 똘똘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특히 애착이 아주 잘 형성되어 있어서 타인의 감정을 제법 잘 공감해 주기에 주변의 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답답함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생각했던 날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웃프네..) 전체적으로 또래보다 조금 더 정서적으로 빠르게 발달되고 있단 이야기를 들었던 그런 아이였다. 이게 불과 몇 개월 전 이야기란 말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높아졌던 걸까.
5세 2학기부터 유치원에서 한 장의 숙제를 매일 내주기 시작했다. 말은 숙제라 하지만, 색칠하고 동그라미 치고, 선을 긋는 등 소근육 발달을 위한 연습에 불과했다. 왜 갑자기 숙제지? 생각했었는데 어머님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2학기 상담에서 아이반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소근육 발달' = '색연필 잡기'에 대한 코멘트를 받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정규 교육 과정에서 연필을 쥐는 한글 교육은 초등학교 때 시작하지만, 사실 6세 여름쯔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글을 어느 정도 뗀다고들 한다. 그게 현실이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초등학교 입학해서 한글공부를 시작하려 하면 첫날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는 알림장도 적어 올 수가 없어 원활한 학교 생활이 불가능하고 아이가 당황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교육이 더 어려워진다는 무서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엄마들은 빠르면 5세 늦어도 6세 사이에 어느 정도 한글 교육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숙제가 주어진 후부터 육아책에서 강조하는 '습관화'를 만들어보자며 호기롭게 루틴화를 시작해 보았었다.
유치원 다녀와서 놀이터에서 그네 조금 타고 집에 돌아와 간식 먹고, 아이 책상에 앉아 숙제하고 놀기! 이 얼마나 간결하고 합리적인가. 유치원에서 비록 간식을 먹고 하원하지만, 친절하게 집 간식을 또 차려주었다. 기분을 최대한 좋게 유지하고 숙제를 해보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부터는 금세 지루해졌는지, 앉아서 5분도 안 걸릴 숙제를 10분 15분 20분까지도 질질 끄는 날들이 태반이었다. 연필을 쥐고 무엇을 쓰다 삘 받아서 칠판으로 달려가 그림을 막 그린다던지 하는,, 그런 행동들이 이어지면서 점점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군다나 곧 신랑의 퇴근시간이니 밥도 짓고 저녁상도 차려야 하는데 아이와의 실랑이 탓에 좀처럼 효율적인 일처리가 불가했다. 하다 하다 지쳐 그럴 거면 그냥 숙제하지 말자고 하면 갑자기 하겠다고 운다. 울어재낀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아이의 마음. 선생님 피셜로는 숙제를 해가서 그다음 날 선생님한테 도장을 받는데 그걸 반친구들이 그렇게나 좋아한다고 한다. 그게 그들의 루틴인 것 같은데 거기서 제외되는 건 또 너무 싫은가 보다.
그날도 그랬다. 하원 셔틀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난데없이 울어재끼기 시작해 엘리베이터에서 또 저지레를 하고, 그것도 큰소리 내지 않고 잘 참았는데 결국에야 집안에서 아이의 사소한 행동을 보다 속이 터져서 화를 내고야 말았다.
그래도 5세에는 내가 혼내면 엉엉 울면서 잘못을 인정하던 아이였는데, 그날엔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애착인형을 꼭 껴안고 누워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미어졌다. 저 작은 아이가 크느라 얼마나 고생인가 싶어 안쓰럽고. 그 아이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치 불붙은 폭죽처럼 이리저리 사정없이 터져버리고야 끝나고 마는, 언제든지 불탈 준비를 하는 듯 늘 심지가 곧게 서있는 내 스스로가 그렇게나 미워질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살포시 다가가 껴안아주고, 왜 방에 혼자 와 있냐 물으니 자기도 화가 난단다.
자기의 행동과 무관하게, 그냥 엄마가 화를 내니까 그 소리가 자기도 듣기 싫어 화가 났나 보다.
우리 아가는 이제 이만큼이나 컸구나 싶어서, 왠지 모를 아쉬움에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화가 나는 이 마음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참으로 심정이 복잡했다.
요즘 우리 6세 남자아이는 활화산 같다. 감정 분화가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진행되는데, 농축된 감정을 다채롭게 아주 광범위하게 그리고 제약 없이 뿜어댄다. 그 휘황찬란함에 정신을 붙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나는 폭죽이고 그는 화산이니까. 내가 조금 여유로웠으면 아이를 조금 감싸줄 수 있는 성격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폭죽이 아니라 호수같이 잔잔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날밤 엉엉 울면서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며 다짐을 해본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자.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해보았자 고작 6세임을 잊지 말자. 고작 6세가 그렇게 화가 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할 일은 없지 않은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은 있으므로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교육을 지속하되, 매번 하기 싫어할 수도 있는 아이의 감정에 먼저 공감해 주자. 그것이 강압으로 느껴지지 않게 충분히 다독여주자. 당장 실천하기 위해서, 다음 날은 아이가 하원하기 전에 저녁 찬을 미리 다 만들어놨다. 그리고 아이와 눈 마주치고 놀이를 많이 해주면서 숙제를 봐주니 5분도 안 걸렸다.. 그리고 오늘은 등원 보내자마자 브런치에 로그인해 글을 쓴다.
그날 SNS에 올린 나의 칭얼거림에 위로해 주고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준 사랑하는 나의 지인들..ㅠㅠ
키울수록 느끼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사람이 아이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실천하는 엄마는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번연도는 아이의 그릇이 아닌 '나의 그릇'을 키우는 한 해로 살아보기로 한다.
현명하게 화를 다스리는 엄마 되기.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기에 조금은 더 멀어져 보려 애쓰는 그런 한 해를 가져보고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