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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큰티팟 Oct 04. 2019

당신의 시간은 얼마짜리입니까?

급여 협상에서 후려쳐지는 전업 주부라는 직업

첫 직장은 무조건 3년 이상 다녀야 해 


지난 1년간 나는 세번의 직업이 바뀌었다. 5년간 만근을 했던 의류무역회사 (일명 벤더)를 박차고 나와 백수가 되었었다. 요즘은 첫 직장을 3년이상 다니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상이 된다는 통계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쓸데없는 반항심은 꼭 저런 기사를 읽은 후에 발동되기 시작하는데, 그럼 나는 평범한 절반이상에 속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어떻게든 3년을 버티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년을 찍을 무렵, 또 다른 자아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당시는 5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어느정도 목표로 했던 돈도 모았고 이 회사가 아니면 죽을 것 같던 애사심도 어느덧 심드렁해졌고, 둘 다 학생이었던 당시 남자친구 (현남편) 와 결혼도 한 직 후였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메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보면, 자아 실현의 욕구가 최상위에 존재한다. 

그렇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나는 생리적 욕구가 모두 충족되었기에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죽기전에 한번 해볼 수나 있을까? 싶던 일을 해보기 위해서 선택적 백수가 되었다.  


선택적 백수가 되어 꿈꾸던 밝은 미래 


소비 대신 시간의 자유를 택한 다음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 시나리오 수업 신청을 했다. 정규반의 시작을 기다리면서 유럽 여행 티켓을 끊었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닌 나에게 주는 포상 같은 휴가였고, 엄마가 더 나이 드시기 전에 함께 떠나 광활한 유럽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완벽했다. 퇴사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그리고 엄마와의 여행까지. 나는 나의 새로운 직업이 무엇이 되든지간에 완벽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백수란 사실이 두렵지도 않았다. 나의 미래는 다시 시작점에 서있었고, 언젠가 <도깨비>같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마치 첫 직장을 얻게 된 사회 초년생과 같은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 ‘전업주부’가 되다.


유럽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세번째 예방접종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들렀다. 

주사 맞기전 간호사의 의례적 질문인 ‘혹시임신 가능성 있으신가요?’ 라는 물음에 대답이 나오지 않는 희미한 기억하나. 그래서 권유하는 검사를 받았고, 임신을 판정 받았다. 

판정이란 단어의 선택이 웃기지만, 그때에 내게 의사선생님의 대답은 정말 선고와 같았다. 일단 이렇게나 빨리 아기가 찾아와줄 줄은 상상도 못했고, 또 내가 그렇게 꿈꾸던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이 아니던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최소 비행시간이 12시간정도 되며, 최소 5개국, 10개 이상의 도시를 돌아다닐 10일간의 일정을 이야기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고, 나는 엄마, 그리고 남편의 설득 끝에 결국 여행을 포기했다. 

그렇게 예고 없이 전업주부가 되고 말았다. 


다시, 워킹맘이 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육아하기를 9개월. 이제 어느정도 육아라는 직업에 익숙해진 찰나였다. 

전전 직장의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와 나는 소셜네크워크상 친구였고, 종종 좋아요로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이였다. 안부를 묻는 대화 끝에 그녀는 혹시 일을 다시 하고픈 마음이 있는지를 물었고, 안그래도 슬슬 내년에 무슨일을 할지 생각하고 있던 요즘이었기에 덥석 하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그녀를 만나 6년 정도의 서로 살아온 이야기와 근황을 나누었고, 업무에 방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해 준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설렜다. 다시금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날 밤은 떨려 잠을 자지도 못했다. 


당신의 시간은 얼마짜리입니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그녀로부터 업무 지시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일은 처음에 만났을 때 생각했던 자택근무로 해결을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아니었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재택근무라는 환경을 준다는 것에 매료되어 제대로 급여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제시한 금액을 받고 그런 일을 할 수는 없겠다 싶어 생각을 정리해서 연락을 했다. 그렇게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는데, 결과적으로는 급여에 대한 제안을 거절당했다. 

이유는 지금도 혼자 할 수도 있는 일을 굳이 시간적 제약이 많은 내게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고,  내가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는 거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전문가를 찾았다면 그 분야에서 손뗀지 오래된 나를 찾았다는 것 조차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적 제약이 많다는 부분을 언급한 지점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밖에 없는 지금 상황이 마치 약점으로 잡혀버린것 같아 갑갑했다. 시간적 제약이 있어도, 쪼갠 시간 안에서 일을 해 내는 것이 능력이 아니던가. 

그치만 그 능력을 보이기도 전에 평가절하 되어버린 느낌. 

나조차도 잊고 있던 나의 재능을 기억해준 사람이라 생각해서 자존감도 생기고 빛이 보이는듯 하다가 다시 컴컴한 동굴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시간은 이제 나의 것이 아니고, 그 시간에 대한 가치 역시 내가 따지는 것이 아니라니. 절망스러웠다. 전 직장에서 나는 시급이 얼마였던걸까? 문득 궁금하여 계산기를 돌려보니, 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제시 받은 금액이 애초에 터무니없이 낮았음을 느꼈을 뿐이다.  


아. 내가 바로 그 ‘경단녀’ ‘전업주부’구나. 

뚜렷한 계획없이 다음 직장을 염두해 두지 못한채 임신과 출산을 한 것이 마치 나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 같아 처참한 기분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시간은, 과연 얼마짜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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