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가는 Aug 20. 2019

지금, 가장 찬란한 시간


영국에서 보낸 2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며 나는 다시는 영국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언어로 문화로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다 가는 유럽 배낭여행은 나의 옵션에 없었다. 영국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귀국후 1년이 지나서 였다. 사람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 힘들었던 기억을 다 잊어버렸는지 나는 다시 유럽으로 나오게 되었고, 의지할 짝이 있어서 그나마 그때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말이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른 이곳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고, 인스타에 올라오는 한국의 예쁜 카페나 맛집들을 볼 때마다 입맛을 다시며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살이가 힘들어 독일이란 나라에 꿀밤을 때려주고 싶다가도, 가끔은 이 곳에 정착하고 있는 자신이 기특하고 또 이 곳이 사랑스러워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독일어로 전화하는 것을 성공했다든지 (물론 나는 알아듣지만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ㅋㅋㅋ 그들은 독어로 나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비싼 물건들을 비교적 싼 값에 구입한다든지, 한국에서 먹는 콩가루, 쌀가루 등을 우연히 마트에서 발견할 때라든지의 경우다. 쓰고 보니 굉장히 주부 중심적인 사례다. 


우리 부부는 매일 저녁 산책을 하는데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우리 지금 이 시간을 나중에 40대 50대가 되고 나면 참 그리워할 것 같아, 그렇지?"

차가운 밤공기. 따뜻한 마주 잡은 손. 맑은 하늘. 선명한 별자리. 그리고 잘 보낸 하루 뒤의 수다.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찬란한 시간인지 우리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고 가볍게 그 세월을 낭비하며 보내고 있다. 마치 이 시간이 우리에게 영원할 것처럼. 하지만 인생의 아름다움 또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젊음을 소비하고 탕진하며 그 시간을 보내는 것. 내일의 걱정은 미래의 우리에게 맡겨버리고 오늘을 사는 것. 


어제는 인절미를 만들어 볼 요량으로 마트에 나가 재료를 사 왔다. 오늘은 우리 집 싱크대가 막혀 한국으로 치면 '관리사무소'격인 회사에 전화를 했다.  내일은 친구들과 독일어 공부를 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는 살아가고 있다. 



산책하는 우리의 발 재간 


매거진의 이전글 무지개가 나에게 준 약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