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보낸 2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며 나는 다시는 영국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언어로 문화로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다 가는 유럽 배낭여행은 나의 옵션에 없었다. 영국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귀국후 1년이 지나서 였다. 사람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 힘들었던 기억을 다 잊어버렸는지 나는 다시 유럽으로 나오게 되었고, 의지할 짝이 있어서 그나마 그때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말이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른 이곳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고, 인스타에 올라오는 한국의 예쁜 카페나 맛집들을 볼 때마다 입맛을 다시며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살이가 힘들어 독일이란 나라에 꿀밤을 때려주고 싶다가도, 가끔은 이 곳에 정착하고 있는 자신이 기특하고 또 이 곳이 사랑스러워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독일어로 전화하는 것을 성공했다든지 (물론 나는 알아듣지만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ㅋㅋㅋ 그들은 독어로 나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비싼 물건들을 비교적 싼 값에 구입한다든지, 한국에서 먹는 콩가루, 쌀가루 등을 우연히 마트에서 발견할 때라든지의 경우다. 쓰고 보니 굉장히 주부 중심적인 사례다.
우리 부부는 매일 저녁 산책을 하는데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우리 지금 이 시간을 나중에 40대 50대가 되고 나면 참 그리워할 것 같아, 그렇지?"
차가운 밤공기. 따뜻한 마주 잡은 손. 맑은 하늘. 선명한 별자리. 그리고 잘 보낸 하루 뒤의 수다.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찬란한 시간인지 우리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고 가볍게 그 세월을 낭비하며 보내고 있다. 마치 이 시간이 우리에게 영원할 것처럼. 하지만 인생의 아름다움 또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젊음을 소비하고 탕진하며 그 시간을 보내는 것. 내일의 걱정은 미래의 우리에게 맡겨버리고 오늘을 사는 것.
어제는 인절미를 만들어 볼 요량으로 마트에 나가 재료를 사 왔다. 오늘은 우리 집 싱크대가 막혀 한국으로 치면 '관리사무소'격인 회사에 전화를 했다. 내일은 친구들과 독일어 공부를 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는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