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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Jan 04. 2024

21. 임신은 처음이라서

2023년 4월. 그토록 기다리던 임신을 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한동안 아이가 없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선물과 같이 아이가 찾아왔다. 태명은 '열매'. 우리가 바라고 기도했던 것이 열매를 맺었다는 뜻에서 태명을 그렇게 지었다. 임신기간은 순탄했지만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해야 하는 검사가 왜 이렇게 많은지, 기형아검사, 임신성 당뇨검사, 철분검사, 임신중독검사 등 병원에 가면 늘 긴장을 하게 되었다. 매번 내 앞에 놓인 산을 넘는 것 같았다. 임신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역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며 남편과 마음을 다잡곤 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늘 주수에 맞게 컸고, 작은 사건들은 있었지만 큰 탈없이 잘 자라주었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겪는 입덧은 나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특정 냄새가 너무 불쾌해서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특히 밥 짓는 냄새가 너무 역해서 한동안 밥통에 먼지가 앉을 정도로 밥을 먹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입맛이 없다가도 갑자기 먹고 싶은 게 뜬금없이 생각나곤 했다. 나의 경우에는 삼겹살, 냉면과 같은 아주 뜬금없는 음식들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며칠은 입덧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음식을 먹는 것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입덧이 끝나고 나서는 입맛이 변했다. 나는 원래 면보다 밥파였는데, 임신을 하고 난 이후에는 밥이 먹히질 않았다. 특유의 텁텁함과 은근한 단맛이 속을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몸에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면류로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라면을 좋아하는 남편은 드디어 함께 라면을 먹는다며 아이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첫 태동을 느끼는 순간은 특별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뱃속에서 물방울이 터지는 것처럼 꼬르륵거리는 느낌이 났다. 배고픔을 느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배고픔을 느낄 때 장기가 움직이는 느낌이라면, 태동은 뱃가죽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배를 훑고 지나가는 느낌, 배 안에 누군가가 장기를 발로 차는 느낌 등으로 거듭되었다. 주차를 거듭할수록 태동은 활발해졌다. 어느 날은 누군가가 나를 마구 흔들어서 깨웠는데 깨어보니 태동이었다. 뱃속에서부터 얼마나 활발한지 엄마를 요란하게 흔들어서 잠에서 깨는 날도 있었다.  


배가 나온 나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는 아들엄마라 그런지 배가 전체적으로 넓게 두루두루 퍼지는 모습이었는데 처음에는 내 뱃살 같았던 것이 주차가 찰수록 앞으로 불룩해지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살이 쪄서 나오는 똥배가 아니라 아기가 커가먀 느껴지는 배의 단단함이 참 신기했다. 막달에는 배가 너무 나와서 무서울 정도였다. 사진을 연신 찍어놓으며 '진짜 이게 내 배라고?'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임신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출산 막달일 것이다. 아기가 커지며 배가 나올수록 방광과 다른 장기들이 눌려서 두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그리고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낮밤이 바뀌어 모두가 잠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할 때도 있었고, 낮에는 한없이 나른해져 하루가 사라져 버린 적도 많았다. 이 시기에는 급격한 배고픔을 느끼는 때가 많았는데 이건 정말 생전 처음 느끼는 허기였다. 누군가가 칼을 들고 너 지금 '밥 안 먹으면 죽어!' 하는 느낌이랄까? 허기가 나를 쫓아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또 뭔가를 많이 먹으면 역류성 식도염이 오기 때문에 치즈나 크래커, 과일 등을 조금씩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또 막달에는 아기가 작고 많이 내려와 있어서  조산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숙아로 태어나면 아기가 그만큼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챙겨 먹어야 했는데 그것 또한 고역이었다. 입맛이 없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꾸역꾸역 무엇인가를 먹는 일이 큰 노동처럼 느껴졌다. 산모들이 눕눕이라고 이야기하는 와식생활과 친정엄마의 식단 덕분에 아기는 주수를 꼭 채우고 3킬로를 넘겨 태어날 수 있었다.


임신 순간 중 자주 듣던 노래가 있다.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이라는 곡인데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들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그중 이런 내용이 있다.



내 세상은 널 알기 전과 후로 나뉘어

네가 숨 쉬면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네가 웃으면 눈부신 햇살이 비춰

(...)

보고 있으면 왠지 꿈처럼 아득한 것, 몇 광년 동안 날 향해 날아온 별빛 또 지금의 너



아이를 만나는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지만 아이는 어쩌면 나에게 오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오기로 되어있던 아기. 그리고 그 아이가 곧 태어나게 되면 내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기대가 되었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새로운 감정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이가 웃을 때마다 내 가슴이 뛰고, 아이의 숨소리로 내 삶이 생기로워질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잠자는 아기를 옆에 두고 글을 쓰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임신 기간 동안 참 행복했다. 가족들에게 조심스레 아이의 존재를 알리던 순간, 태명을 지으며 행복한 고민을 하던 순간, 멀리가진 못해도 남편과 소소한 집 앞 데이트를 하던 순간, 모든 순간이 따스했다. 이 아이의 존재가 내 삶을 너무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벌써 그 순간이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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