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를 설명합니다 (6)
암이 면역학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은 사실 정통 면역학의 관점에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암세포의 본질을 따져 보면, 내가 가진 세포이지만(Self) 어느 순간부터 내 몸에 해를 끼치는 종양(Non-Self)이 되게 됩니다.
종양이 Non-self가 될 때부터 점점 더 커지고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우리가 더 건강해 지려면 종양을 Non-self로 인지하여 공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종양은 똑똑하게도 면역 반응을 회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 종양이 면역을 회피하는 과정을 연구하다 보니, 암이 면역학과 상당한 연계성이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종양 면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근 등장한 다양한 치료 방법에서 항체가 종양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혹은 주변 세포들을 좀 더 학습시켜서 종양을 공격하게끔 만드는 “면역 치료”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이제 암은 면역학 분야의 한 축을 이룬다고 할 정도로 면역학에서의 위상이 훨씬 더 높아졌습니다.
암은 그 성장과 전개 과정에서 면역 시스템을 회피하는 다양한 전략을 개발합니다.
이러한 암의 면역 회피 메커니즘은 암의 발전과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암의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큰 도전이 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략 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암은 도대체 어떻게 면역 시스템을 속일까요?
첫번째 회피 기전은 면역 편집(Immunoediting)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암세포가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인식하기 어렵게 변화하는 능력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이는 암세포가 면역 시스템에 의해 인식되고 파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아주 스마트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세포는 자신들이 생성하는 항원을 변경하거나,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인식하는 데 중요한 분자를 감소시키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본인을 마치 Self처럼 표시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도 이런 능력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긴 합니다.
두번째로는 면역을 억제하는 환경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암세포는 자신들 주변에 면역 억제 환경을 생성하고 이를 유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암세포가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물질을 방출하거나, 면역 억제 세포를 유도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로 인해 암세포는 면역 시스템의 공격을 피하고, 자신들의 성장과 전개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게 되면 더이상 면역 세포들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없어지지 않을 정도의 암세포가 자라나게 됩니다.
세번째로는 Immune Checkpoint(면역 점검점)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이 분야로 2018년도 노벨생리의학상을 혼조 교수와 앨리슨교수가 받았죠.
일반적으로 면역 시스템은 과도한 활성화를 방지하기 위해 '면역 점검점'이라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신호를 받으면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세포와 단백질을 생성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니깐 Immune Checkpoint는 과민 반응을 억제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Immune Checkpoint을 이용하여 면역 시스템의 공격을 회피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람들을 속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암세포가 주변 면역 세포들에게
“여기 봐 검사 신분증이 있지? 나는 나쁜 놈이 아니야! 그러니깐 나를 믿어” 라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위조 신분증을 보여주는 보이스피싱 조직인데 말이지요.
이렇게 속은 주변 면역 세포들은 암세포를 가만히 두거나, 심지어 다른 면역세포들에게
“저 암세포 녀석을 건들지 말고 까불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까지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암세포는 스스로 조직세를 넓히고 성장하는 것이지요.
이런 암의 면역 회피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을 통해서 요새는 암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던 혼조 박사의 PD-1/PD-L1 경로는 암세포가 면역 시스템을 회피하는 데 사용하는 주요 면역 점검점입니다.
즉, 암이 PD-1이라는 가짜 신분증을 내밀어서 면역 세포들을 안심시키는 것을 신분증을 항체로 없애는 형태로 막아버리는 전략입니다.
PD-1 항체를 암세포에게 전달하면, 더 이상 암세포들이 PD-1을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면역 세포들이 이 암세포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런 치료 전략을 표적 면역 치료라고 합니다.
치료 전략 외에도 항체는 암의 진단, 그리고 예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암세포는 다른 정상 세포와 달리 특정한 단백질을 표면에 표현하거나 분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백질은 종종 암의 진단에서 이용되는 '암 표적'으로 작용합니다.
특정 항체를 이용하여 이러한 암 표적을 항원처럼 탐지함으로써 암을 진단하거나 암의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방과 관련한 부분은 지난 글에서 어느 정도 소개드렸지만, 한 번 더 짧게 설명을 드리자면, 항체를 이용하여 특정 바이러스나 암 생성 단계로부터 보호하여 관련 암의 발병을 예방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사람 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이 있습니다. 이 백신은 HPV에 대한 항체 반응을 유도하여, HPV 감염과 관련된 자궁경부암 등의 발병을 예방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소년기 여성(남성도 가능)에게 접종하여, 추후에 있을 자궁경부암 발병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개념적이긴 하지만, 종양 그 자체를 좀 더 잘 공격하게끔 “종양 백신 혹은 암 백신”을 만드는 것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종양이 생기기도 전에, 이들 모양이나 생길 조짐이 있는 세포들만 가지고 있는 항원을 공격하는 항체를 만드는 것이지요.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종양 백신"에 대해서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항체를 이용한 암 치료는 진행 중인 많은 연구에 의해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고, 더욱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법도 부작용과 함께 다른 치료법과의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경우도 많으므로, 개별 환자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다양한 항체의 종류(subtype)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