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6 이명을 치료하면서
이명(耳鳴, Tinnitus)은 외부의 소리 자극이 없는데도, 귀나 혹은 머릿속에서 소리를 느끼는 현상을 말하게 된다. 이명을 느끼는 본인은 굉장히 괴로워서 잠을 설치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해 평온해서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도 많이 오게 된다.
오늘은 오랜만에 이명 환자가 내원해서 진료를 봤다. '삐'하는 고음의 소리는 예전부터 간혹 있었는데, 최근 들어 그 양상이 약간 스파크 튀는 소리로 변화하는 느낌이라 내원한 젊은 환자였다. 대학교에서 순수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환자는 이런 이명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도 많아지고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혹시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냐고 물었는데, 있다고 하지만 뭔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느낌이라 흘려버렸다. 치료를 받으러 오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자신의 속이야기를 맘껏 털어놓기는 힘들거라 나도 너무 캐내지는 않았다. 물어보는 것 대신, 나는 환자한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했다. 대개 그 나이대에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으라고. 떡볶이를 편한 사람이랑 같이 먹으면서 그냥 떡볶이 맛이 어떤지, 떡의 질감이 어떻고 어묵이 어떻고 양념이 어떻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면서 먹으라고. 허겁지겁 먹는 대신 천천히, 으레 올라가는 떡볶이의 치즈가 굳을 정도로 오랫동안 먹으라고 권했다. 그렇게 상담을 하고 침 치료를 진행했다. 한약을 먹는 게 좋은지 물어보는 환자에게 비타민이나 잘 챙겨 먹으라 말해주고, 혹여 심해지는 경우 큰 병원에서 검사는 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런 비슷한 환자를 예전 공중보건의 때 본 적이 있다. 남편 상 이후에 갑작스럽게 생긴 이명 때문에 내원한 50대의 여자 환자분이었다. 잘 때마다 너무 거슬리고, 잠을 잘 못 자겠다는 이 환자에게 비슷하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를 잊어가는 과정 중에 있던 이명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가벼운 침 치료와 더불어 들어주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 뭘 했는지, 졸린 와중에도 어떤 일을 했는지 들어주는 거였다. 그리고 청포도 사탕을 같이 먹는 것이었다. 이번 환자한테 떡볶이를 권했던 것처럼, 청포도 사탕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기보다는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그 환자와는 주에 1번 그렇게 사탕을 같이 먹었고, 어느 날부터 이명 증상이 많이 사라져서 치료 종료를 했다. 상실의 과정이라 불리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쳐갈 때 생겼던 이명 증상을 조금이나마 낫도록 도와주면서 나는 같이 보냈던 거다. 누군가를 잊어가는 과정, 슬픈 기억 대신에 온전히 좋은 기억만 남도록 도와주는 단계에 나는 발맞춰 걸어갔던 것이다.
이렇듯 한 가지 음식에 집중해서, 그 음식을 먹는 경험에 오롯이 집중해서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 있다. ‘마음 챙김 명상(Mindfullness-Based Stress Reduction)’의 일환 중 하나인 ‘건포도 명상’은 이와 비슷하게 건포도를 먹는 경험에 집중하며 전반적인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서구권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이 방식의 치료법은 ‘명상’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거창할 것 같지만, 되려 훨씬 쉽게 접근하는 것이 장점이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코르티솔’의 수치를 낮춰준다고 하는 결과도 있으니 나처럼 뭐든 환자에게 적용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할 때 한 번은 해봐도 좋은 치료법인 것 같다(물론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토론 중이다).
아마 이번에 왔던 환자 또한 어떠한 의미에서든 상실을 경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힘든 여정 속에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