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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Dec 06. 2022

커피와 연기감지기

직접 볶아 먹습니다만

"띵동"

"네~"

"관리사무실에서 왔습니다. 연기가 감지되었다고 표시가 되어서 왔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

연기로 자욱한 집안을 확인하시자 할 말을 잊으시고는 색깔이 표시된 연기감지기를 찾아 교체해 주고 가셨다.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느 봄날 밤, 그 시작은 이랬다.

아침에 봤을 때 커피 원두가 똑 떨어졌었다.  그다음 날을 생각하며 버너를 식탁 위에 두고 로스팅 기계 작동을 시작했다.

창문은 다 열어두었다.

보통은 캠핑을 가게 되면 감성을 느끼며 밖에서 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일정을 잡아놓지 못해 갈 수 없었고 커피는 마시고 싶었다.

거의 완성이 되었다.

온도가 잘 올라갔고 색깔도 잘 나오는 것 같았다.

한 번에 로스팅할 수 있는 양은 충분치 않아서 두 번 정도는 해야 양이 적당했다. 첫 번째 시도는 무난하게 잘 되었으므로 두 번째를 이어가는데 이런, 쌓였던 연기가 빠지지 않고 있었다.  창문에 현관문까지 다 열고, 선풍기도 꺼내어 틀어놓고 부채질도 하고 애를 쓰고 있을 무렵, 벨이 울린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중에 아파트 입주민 게시판을 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드렸습니다.





우리 집은 3층이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에휴, 그냥 볶은 원두 사서 먹지 무슨 사서 고생을 할 거라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우리 집에도 나름 커피의 역사가 있다.

난 무슨 맛이든 다 좋다. 커피믹스는 사랑이다.

남편은 커피 원두 맛을 본 이후로 아메리카노~를 노래하며 그 맛을 잊지 못했고 그때부터 커피 원두, 커피 드리퍼, 원두분쇄기, 커피 드립포트 등을 사들였다.

볶은 원두를 사서 직접 갈아서 내린 드립 커피로 시작했다. 원두의 간 정도, 물의 양 등을 비교하고 맛보며 즐거워했다.

 

물 끓여두고 커피 원두를 분쇄기에 넣고 갈아낸다. 옆과 아랫부분을 좁게 접은 필터지를 펼쳐 가루를 부은 다음 드리퍼에 끼우고 드립포트에 뜨거운 물을 옮겨 닮고 물을 쪼르르 부으며 거품이 생기는 것을 즐겁게 관찰한다. 거품은 신선함의 정도란다. 초등학생 아들이 자신도 해보겠다며 했었는데 물을 부으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가 재미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커피의 크레마가 너무 좋았다면서 신중한 선택 끝에 커피 머신을 사들였다.

아들은 재미난 일을 잃어버렸다며 실망했다. 하지만 커피 머신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했다. 물만 잘 채워주면 알아서 뚝딱.


또 맛있는 커피에 욕심을 내다보니 생두를 사다가 직접 볶기도 한다며 생두를 주문했었다.

처음 시도는 프라이팬이었다. 열심히 볶기는 했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았고 사 먹던 커피 원두의 색깔과도 달랐다. 1차에 이어 2차 팝핑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하는데 쉬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검색을 통해 발견한 기계인데 바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로스팅 기계라고 했다.(아주 디테일한 성격의 소유자다.)

덕분나는 고급진 커피를 마실  있어 좋긴 했지만 커피 로스팅 기계를 구입한 이후로는 사서 고생을 하는 남편이 보기에 안타까웠다.



구입하던 날 어찌나 신나 하던지.

야외에 나가서만 할 수 있는 부분이 번거롭기는 했지만 고생 끝에 얻는 기쁨이었던지 그 과정을 계속하길 바랐다.





하지만 연기로 난리가 났던 이후 많은 민폐를 끼쳤다는 사실에 다시는 집에서는 할 엄두도 못 내었다.

그런데 로스팅기의 단점이 있다면 주변 온도의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

여름에는 실외에서도 가능했지만 겨울에는 밖에서 하게 되면 온도가 오르지 않아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제대로 볶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찾은 방법은 바로 가스레인지 로스팅이다.

평소 음식을 할 때는 풍량 1이면 가능했는데 고기를 구울 땐 풍량을 3으로 올리니 괜찮았음을 떠올렸다.

이 좋은 걸 왜 몰랐을까.



                       

생두를 구입한다.



190도 이상의 고온을 넘기고 그 과정에서 1차, 2차 팝핑을 거치면 크기는 조금 커지고 무게는 약간 줄어든 상태의 원두 모습이 된다.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보니 이 정도의 색깔과 윤기가 흐르는 정도가 가장 맛있는 맛을 내는 것 같았다.




이 기계가 바로 로스팅 기계이다. 다행스럽게도 수동이 아닌 자동식이라 전기를 연결하거나 배터리로  에너지를 공급하면 열심히 돌아간다.

직화 방식이라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일을 대비해서 그리고 가스불도 종종 꺼지기 때문에 그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10분~1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다.


우리 집 맛있는 커피를 책임지고 있다.

명절에 친척분들, 친구들, 지인분들이 오시면 커피 맛집이라고 칭찬하신다.


그 덕분에 남편은 이 과정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풍량은 최대로 높인다.



로스팅 기계에는 이렇게 온도계가 달려있고 이를 잘 관찰하면 된다.



든든한 식량 같은 풍족한 커피 원두가 만들어졌다.



이렇듯 한잔의 커피가 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친다.


나는 아직도 커피의 정확한 맛은 모른다.


맛으로 먹는 것은 아니고 의무로 먹는 것 같기도 하다.  믹스커피가 전부이던 내가 이제는 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 것 같다.

이게 중독인건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개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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