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사서 Dec 11. 2021

작은 도서관 속 온기를 만드는 일

양지윤, 『사서의 일』


비교적 큰 규모의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은 도서관 속 사서도 참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부러워졌다. 각 규모별 도서관에는 일장일단이 다 있겠지만, 이용자와 소장도서에 더 친밀한 눈길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작은 공간이지만 함께 고요히 평화롭게 누리는 모습이 내내 머릿속에 그려져 시기심(!)이 일기도 했다. 어딘가 내가 동경하는 동네책방의 모습과 비슷해서 더 마음이 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들에서 단단히 질투가 났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어린이방에서라면 모를까..


"단조로운 패턴으로 굴러가는 도서관 안에서 나 역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예컨대 이런 날이다. 밖에는 조용히 비가 내리고, 도서관 안에는 책을 읽는 두 아이가 있다. 한 명은 소파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또 한 명은 무릎을 세운 채. 종종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 79 p.


작은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사서로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다. 사서로서의 성장 이야기에 더해 저자가 운영하는 '지혜의 숲'의 성장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다정한 도서관, 다정한 사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이 이용자들에게 유용한 곳이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노력 덕분이었다.


"매달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도서관은 점차 활성화되어갔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채 누렇게 바래가던 새 책들에 점점 이 사람 저 사람의 손때가 묻기 시작했다. 내가 사서로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지난 2년 동안 가슴속에 쌓여 있던 답답함도 점차 사라져갔다." - 62 p.


내가 사서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이용자를 직접 대면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에 있다 보니 도서관에서는 사서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무리 좋은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 해도 이용자가 이용하기까지는 사서의 서비스가 중요하고 그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정말 중요하다. 사서의 색깔이 도서관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규모가 좀 있는 도서관이더라도, 책임자에 따라 분위기에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물며 1인이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들은 오죽할까. 저자이신 양지윤 사서 선생님은 매번 이용자가 필요로 할 만한, 목적이 뚜렷한, 그러면서도 신선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개발하고 운영해 오신 듯하다. 그러니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이 다정하다고 느낄 수밖에.


"도서관은 와인과 닮았다.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입사 초기만 해도 갓 발효가 끝난 와인처럼 떫은맛 일색이던 도서관이, 10년의 숙성 기간을 거치고 나니 고유한 향과 맛을 지닌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보관 상태에 따라 풍미가 변하는 와인처럼, 도서관은 그곳을 운영하는 사서에 따라 분위기가 결정된다." - 220 p.


도서관계에 몸 담고 있는 나도 작은 도서관은 방문해 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선입견 때문이었을지도. 그렇지만 온 지구를 뒤덮고 있는 이 바이러스가 좀 잠잠해진다면, 색깔이 또렷한 작은 도서관 투어를 한번쯤 해 보고 싶다. 어떤 사서와 이용자가 서로 작은 다정함을 나누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혜의 집은 사람들에게 어떤 도서관으로 기억될까. 문득 한 꼬마 이용객의 얼굴이 떠오른다. 평일 낮이면 아이는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메고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러 온다. 아이가 서가에서 그림책을 골라오면 엄마는 옆에 나란히 앉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 엄마는 굵직한 목소리의 곰이 되었다가 정겨운 목소리의 꼬부랑 할머니로 변신하기도 한다. 아이의 맑은 눈은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따라 그림을 좇느라 좌우로 바삐 움직인다. 이야기 중간중간 신이 난 아이가 추임새처럼 감탄사를 내뱉으면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흘러나온다. 책 읽는 소리가 잔잔한 배경음악이 될 수 있는 곳. 바로 작은 도서관이기에 허용되는 풍경이다. 어쩌면 아이에게 이 작은 공간은 도서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 222 p.

매거진의 이전글 소리로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