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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마인 Jan 04. 2019

3. 자유에로의 여정

하루 치 향유 - 필름사진을 본 후, 쓰고 그립니다.


 이 남자와 여자는 사귀는 사이인 듯 했다.

 “아까 세 시간 전에 여기 지나 갔었는데, 얘 아직도 이러고 누워있네.”

 “유기견 아니야? 불쌍해… 어디 신고라도 해야 하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인간은 딱 질색이다. ‘불쌍하다’는 말은 스스로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존재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 아닌가? 신경끄고 빨리 지나쳐 갔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잠을 깼지만 곤히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다.

 사람도 심약한 사람, 대범한 사람, 거절 한 번 못하는 사람과 대쪽같은 사람처럼 같은 종이어도 천사와 악마 수준으로 극과 극인데, 모든 개가 오직 주인만을 바라보는 삶을 산다는 건 인간들 입장에서 바라본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최초의 기억은 아마 생후 3개월 정도 됐을 때였을 거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던 집이었는데, 하루종일 온 가족이 내 배와 발바닥과 온 몸의 털을 만지지 못해 안달을 냈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와 스마트폰으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어댔다. SNS에 계정을 만들어 올리는 듯 하더니, 팔로워가 늘자 색색깔의 옷을 갈아입히고 억지로 간식을 먹였다. 기를 써서 아르릉 대 봤지만 바둥대는 내 모습까지 깔깔대며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힘이 없으니 별 수 있나. 일단 귀여울 수 밖에. 나는 잘 먹고 잘 자며 체력을 키우고 훗날을 도모하기로 했다.


 그러나 와신상담하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 년 즈음이 지나자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에 먼저 당황한 기색이 어리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전력을 다해 뛰었을 뿐인데 목줄을 잡은 주인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다. 예전엔 밖에만 나가면 온갖 사람들이 달려들어 함부로 만지곤 했는데, 이제는 다들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아우, 깜짝이야!” 하고 소리를 꽥 지르며 눈을 흘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안 건드니까 편하고 좋네. 중학생 아이도 내게 흥미를 잃은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에서 돌아와 부엌으로 뛰어가던 아이가 곤히 잠든 나의 꼬리를 세게 밟았다. “왕!!!!” 나조차 깜짝 놀랄만큼 큰 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꺄악!!” 아이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며 식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뒷통수를 만져본 손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이의 친할머니가 사는 시골의 농가로 옮겨졌다. 드디어 이 곳에서 탈출이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절로 꼬리가 흔들렸다.


 이제 거의 아흔을 바라 본다던 할매는 오랜 시간 혼자 지내온 게 적적했는지 내게 참 잘 해주기는 했다. 귀찮게 여기저기 만지지도 않았고 귀가 잘 안 들려서인지 내가 크게 짖어도 놀라는 일이 없이 늘 평온한 표정이었다. 밥 그릇에는 니맛내맛도 아닌 사료가 아닌 육향 듬뿍 나는 고기가 매일 한 가득이었다. 겨울이 시작되어 싸락눈이 폴폴 날리기 시작하면 조용히 문간을 열어 뜨뜻한 아랫목을 내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할매의 발 등에 턱을 살짝 올려놓고 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다. 추위가 차츰 강력해져 마당이고 흙길이고 할 것 없이 꽝꽝 얼어버리면, 할매가 필요한 물건들을 대신 물어다 마루에 갖다놓기도 했다. 그러면 할매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진 거친 손으로 나를 곱게 쓰다듬으며 “니가 나를 보살피고 앉았다야”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두 겨울이 지나갔다.


 급격히 날씨가 변하고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노인들이 자주 아프다고 했던가. 추위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아침 햇살에 드디어 따사로움이 느껴지던 날의 아침, 할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집 앞을 지나던 동네 아줌마가 그 옆에서 멈추지 않고 짖는 나를 발견했고, 할매는 병원으로 이송된 후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아이와 가족들이었다. 상복을 입은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마을 주민과 대화를 나누었다.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는 건 싫어…! 나는 낮게 으르릉 거리며 그들을 노려봤다.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며 부부가 말했다. “어휴, 우린 못 키워요. 개 장수한테 팔든 어디 보내 버려요.” 인간들은 개가 못 알아 듣는다고 생각해 함부로 얘기하곤 하지. 하지만 동물은 언어말고도 표정과 손짓 발짓, 목소리로 의미를 전달한다.

 ‘여기만큼 좋은 데로 가기는 글렀군. 그리고…’

 나를 쓰다듬으며 웃던 할매가 떠올랐다.

 ‘다시는 인간, 보살펴주나 봐라.’


 한 날 한 시에 죽지 않는 한 함께하는 모든 존재들에겐 확실한 이별이 있다. 괜히 정을 줬다가 이런 괴로움을 다시 겪느니, 누구와도 얽히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나는 뒷 발에 힘을 주고 자리를 박찼다. 할매가 느슨하게 묶어둔 목줄이 쉽게 풀려나왔다. 깜짝 놀란 사람들 사이로 나는 유유히 집을 빠져 나왔다.

 이런 길바닥 한 가운데서, 비로소 찾은 자유다. 그런데 지나가다 몇 번 본 걸로 함부로 동정하다니. 지금 너희는 둘이 딱 붙어 나를 동정하느라 행복하겠지. 그러나 언젠가 확실히 이별할 너희를 내가 불쌍해해야 맞는 거라구. 눈을 감은 채로 조소를 보내는데 갑자기 엉덩이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보니 저 멀리 한 꼬마애가 돌멩이를 던지며 도망을 가고 있다. 아, 한국에서 개로 살기 힘들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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