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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마인 Jan 13. 2019

11. 흐르는 마음처럼

하루 치 향유 - 필름사진을 본 후, 쓰고 그립니다


 우리 셋은 고등학교 2학년 한 반의 친구 였다. 아침 8시 30분 부터 밤 11시까지 하루의 14시간 30분을 함께하는. 같이 수업을 듣고 졸다가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잡담을 나누며 야자를 하다가, 지난 새벽 유희열의 올 댓 뮤직을 녹음해온 것을 공유해 듣던 중 같은 포인트에서 풉 하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종일 붙어 있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지난 밤의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들고 또 쉬지 않고 종알대는 사이. 10월 11일은 연화의 열 여덟살 생일 이었는데, 나와 주연이는 그 날 연화에게 같이 점심을 못 먹겠다고 말했다. 


 왜?, 나 너희 말고 점심 같이 먹을 사람 없는데. 하고 연화가 말했고,

 우리는 그냥~ 일이 있어서. 라고 대답해서 그녀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서운해하는 연화를 보며 몰래 킥킥댔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섭섭해 하는 게 좋아서. 그리고 기대가 무너지며 서운함만 남았을 때, 그래서 더 이상 기대하고 싶지 않아서 기대의 공간을 최대한 좁혔을 때 그 빈 공간을 기쁨과 놀라움으로 채우면 벅차는 그 감정들이 우리에 대한 애정이 되어 흘러 넘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배고픔도 잊은 점심 시간에 학생들로 가득 찬 매점을 헤치고 나가 아줌마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줌마!! 여기 박스 남는 거 없어요??? 이거 쓰면 돼요???

 아이들의 실내화 자국이 여기 저기 남아 있는 라면 박스를 흔들며 우리가 물었다.

 라면볶이랑, 옥수수 크림빵은 무조건 넣어야 돼. 봉지 과자로도 좀 채우자. 자갈치는 넣어야지, 당연히.

 초코파이 빼 먹으면 안돼. 아줌마, 여기 초코파이도 한 박스 주세요!!

 박스 하나를 다 채우고 초코파이 한 박스 까지 더한 가격이 2만 3천원. 나는 한 달 용돈 5만원 중 만 천 오백원을 손으로 헤아려 가며 꺼냈다. 둘이서 합쳐 낸 꼬깃꼬깃한 2만 3천원이 아줌마의 억센 손에 건네어졌다.


 교실로 돌아가니 연화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우리는 또 몰래 킥킥댔다. 쟤 삐졌네, 삐졌어. 우는 거 아냐? 생일인데 우리가 심했나. 뭐 다른 핑계라도 댈 걸 그랬나 봐. 아, 아직 들어가지 마. 여기에서 초코파이 쌓아야 돼. 이런 말들을 소근대며 우리는 복도에 쭈구려 앉아 라면 박스 위에 초코파이 박스를 올려두고 그 위에 탑처럼 초코파이를 쌓았다. 주연이가 박스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고 교실에 산재해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연화에게 다가가 일어나~ 하고 말했다.

 연화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팔을 들어 내 손을 쳐내며 아직 점심 시간 안 끝났잖아, 더 잘래. 했고, 끈질긴 나의 깨움에 연화가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이연화~ 생일~ 축하 합니다~

 나와 주연이 둘이서 시작한 생일 축하 노래는 다른 반 친구들에게로 전염되어 갔고, 사랑하는~쯤 부터는 반 안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생일을 위해 노래했다. 2만 3천원이 만들어 낸 기쁨과 놀라움이 연화의 눈물 샘에 넘쳤다.

 아, 뭐야… 뭐냐고~


 소외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친한 친구들이 자신의 생일을 잊지 않고 점심까지 거르며 챙겨 줬다는 고마움, 사물함에 들어 가지도 않을 라면 박스의 규모감, 반 아이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축하해줬다는 데에서 오는 소속감. 어딘 가에 소속되어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혼자가 아니고 방치되지 않았다. 이 집단에서 한 명의 일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왕따가 되는 일 같은 건 없다. 그런 마음에 열 여덟 연화의 생일은 충만했겠지. 고3 때도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고 수능 전 까지 몇 번의 라면 박스가 서로에게 오갔다. 우리는 그렇게 결속했다.


 그 때까지 살아온 날들 만큼의 시간이 지난 18년 후, 서른 여섯의 10월 11일에 나는 한강 변에 앉아 있다. 연화도 주연이도 없이 나 혼자 앉아있다. 스무 살의 우리는 같이 서울에 왔지만, 실용음악과에서 가수를 준비하던 연화는 서른이 되던 해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 버렸고 주연이는 그 다음 해에 결혼해서 남편을 따라 아예 다른 도시로 갔다. 


 졸업 후 몇 년 까지는 라면 박스 대신 술잔을 나누며 생일을 축하하다가, 그 후에는 축하 메시지와 기프티콘을 주고 받다가, 이제는 셋 중 누구도 서로의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소속감은 한 반의 몇 십명에서 세 명으로 줄었고, 그러는 와중에 각자 다른 소속이 생겼다. 나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이제는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소외될 일도 없다는 걸 알아버린 서른 여섯 연화의 생일 날이 무심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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