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 시험관 고차수 난임에세이
수 년 전 친하게 알고 지냈던 언니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암이었고, 2년 정도 투병을 했다.
언니가 암이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언니는 자기가 아픈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소식을 알려준 지인이 언니의 투병에 대해 모른 척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나는 끝까지 언니에게 관련된 안부를 묻거나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종종 언니를 오며 가며 보긴 했었다. 언니는 휴가를 내어 항암치료를 받고, 나머지 시간에는 회사를 다니고 일상생활을 했다. 얼핏 보면 암환자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곧 완치되어 건강한 모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언니의 상황이 좀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와 가까이서 연락을 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언니의 병문안을 가끔 다녀왔다. 언니는 여전히 자기의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는 잠시라도 다녀올까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언니가 원치 않는다고 하는데 찾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지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언니의 모습을 결국 장례식장에서 보았다. 언니를 찾아가지 못한 후회가 오래도록 남았다. 언니에게 두고두고 너무 미안했다. 첫날부터 발인까지 3일을 꼬박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소위 '교회 언니'로 살았다. 대학청년부 때는 매년 소그룹 리더를 했고 교회 공동체 내에서 여러 리더십의 모양으로 봉사를 했다.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는 기도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중보기도팀에 들어갔다. 기도는 매우 어려웠지만 하면 할수록 그 시간이 굉장히 귀하고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10년 동안 기도팀을 섬기면서 성도들의 수많은 기도제목을 접했다. 평소 관계에서는 다 알지 못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제목들이 너무나 갈급하고 구구절절했다. 내가 리드하는 소그룹 멤버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케어하고 심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차마 다 말하지 못한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터였다.
오랜 시간을 알아도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멤버들이 있었다. 묵상과 기도제목을 늘 시원하게 나누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며 저 마음이 조금만 자유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멤버들은 다른 멤버들보다 더욱 관심을 가지고 만나며 돌봤다.
누군가의 사연을, 아픔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면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고 더 구체적으로 돌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난과 고통의 종류와 갯수는 얼마나 될까? 또 그중에서 내가 사는 동안 겪어볼 수 있는 고난의 종류는 몇 개나 되는 걸까? 이때까지만 해도 들어서 아는 것과 겪어서 아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를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내가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의 종류가 몇 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의 고통을 함부로 이해하고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부부에게 어떤 문제가 발견되었고, 그래서 난임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소수의 몇몇 분들께 이야기하고 기도를 부탁드렸었다. 기도제목을 받아서 기도를 하는 입장일 때는 몰랐는데, 기도를 요청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 불편한 상황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난임치료의 여정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길어졌고, 주위 분들은 계속 나의 건강상태와 치료 경과에 대해 물어왔다. 나에 대한 걱정과 더 필요한 기도제목이 있을까 싶어 건네는 안부였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모든 것들이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좋아졌다거나 잘 되고 있다는 등의 답변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도 뭔가 힘이 나서 더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내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도해주고 걱정해주고 있는 분들의 마음을 생각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내 주변에 이런 케이스도 있었다면서 어떻게든 내 상황에 공감을 해 주려, 뭔가 아는 지식을 동원해서 나에게 조언을 하고 도움을 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공감과 나의 상황은 다른 경우가 더 많았고, 건네주는 조언과 정보 중에 도움이 되는 것 역시 별로 없었다. 죄송하게도 나는 그들의 수고와 노력에 진심으로 부응해드리지 못했다. 고마웠다고 위로가 되었다고 진심 아닌 말을 건네며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다.
만나서 밥 한 끼라도 사주며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려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병원 일정이 없을 때, 컨디션이 괜찮을 때 날을 잡아보자고 하는데, 난임치료의 일정이 어떻게 계획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뭐라 정확한 일정을 약속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 마음을 계속 거절할 수 없어 어떻게든 시간을 정해 만나고 들어오긴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꽤 많은 노력을 쏟고 다녀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내가 직접 내 이야기를 전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내 상황을 아는 경우가 생겼다.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냐며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냐며 그 친구는 나의 감정보다 더 격하게 반응을 했다. 네가 (부담스럽게) 이럴 까봐 말하지 않았던 거라는 얘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딱히 말할 기회가 없었다고 괜찮다고 얘기를 했다. 살면서 어려운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좀처럼 상황이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 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질 때는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말조차 하기 어렵다는 것을 오랜 난임 치료의 여정을 경험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을 붙들고 징징거리면 나아지는 고통이 있는가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그래서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든 고통의 종류가 있었다.
호르몬제가 최대치로 투여되고 있던 어느 날, 얼굴과 몸이 많이 부어있었던 나를 본 누군가가 "가을이 임신한 거야?"라고 물었다고 했다. 이윽고 임신이 돼서 살이 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이런 관심이 점점 부담스러웠다. 그 중에서는 진심으로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자꾸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한 번 내뱉고 끝날 남의 이야기였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어려움이 누군가의 가십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다. 수 년의 시간이었다. 그게 걱정 어린 마음이건 단순한 호기심이건 간에 어떤 쪽이든 가십의 당사자로서는 참 힘든 시간이고 관심이었다.
사람의 인생사가 어떻게든 굴곡이 있는 법이었다. 분명 한 때는 자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었는데 어떤 어려움을 겪고 나서부터는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떤 사람은 사별의 아픔을 겪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이혼 후 싱글맘이나 싱글대디가 되기도 했다.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 사람도 있었다. 상황은 달랐지만, 그들이 점점 교회에서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감정의 변화를 겪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성경의 가르침은 약한 자, 소외된 자, 고아와 과부 같은 자를 돌보라고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불완전하고 연약하여서 그 가르침대로 온전히 실천하며 살기가 참 쉽지가 않다. 교회의 모습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부분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뤘으니 어쩔 수 없다. 나 역시 온전치 못함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한 적이 분명 많았을 터였다. 난임치료의 여정은 나에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 깊이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세상에는 내가 함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감한다고 할 수 있는 고통의 종류가 많지 않으며, 모르면 모르는 대로 침묵하는 것이 가장 큰 공감이고 겸손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얼마 전 <우리들의 블루스> 라는 드라마에서 극 중 정준 역을 맡은 배우 김우빈 씨의 대사가 마음에 울림을 준 적이 있다. 그는 교제하고 있는 여자친구 영옥의 친언니가 장애인의 모습인 것을 처음 보고, 여자친구 앞에서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영옥은 '역시나 너도 지금껏 내가 만났던 다른 남자친구들처럼 우리 언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화를 내며 가버린다. 오해를 풀기 위해 정준은 영옥을 다시 만나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건 오해라고. 장애를 가진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장애인 앞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고. 배운 적이 없는데 그럴 수 있지 않냐고. 이제부터 배우면 되지 않냐고.
어른이 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왜 이렇게 사는 법이 어려운가 했었다. 어느덧 적지 않아진 내 나이를 보며 그 무게가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이 숫자만큼의 연륜이 나에게 생기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나는 어른이 되는 법을 어디서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이라고 하면 자고로 어떤 상황에 있어서 더 많이 잘 알고, 경험치가 있고 지식이 있어서 어른이 아닌 사람보다 능숙하고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온갖 지식과 정보를 동원해 '어른이라면 이렇게 할 거야' 싶은 행동을 하고 말을 하려 애썼다. 내가 가진 성숙한 어른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어른을 연기하려 했다.
나이가 어른이라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의 겸손이었다. 누군가의 어떤 상황 앞에 어쭙잖은 아는 체로 되지 않는 공감을 전하려는 것보다, 이런 건 내가 잘 모른다고 내가 어떻게 하면 될지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더 진정한 연륜을 쌓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찾아가 볼 걸 했던 후회는 그저 나의 희망, 나의 바람, 나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정말 끝까지 누군가에게 그 상황을 알리고 싶지도,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내가 그 때 언니를 만났더라면 언니에게 정말 위로가 될 만한 말이나 행동들을 해 줄 수 있었을까? 섣부른 판단으로 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공감도 위로도 상대방이 받아서 만족이 되어야 온전히 기쁨이다. 내 기억 속에는 밝고 예뻤던 언니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언니가 사람들에게 바랬던 것은 이런 기억이 남는 것이었을 것 같다.
또, 오랜 시간을 알아도 그 속에 어떤 사연과 마음이 있는지 도무지 알기가 힘들었던 교회의 소그룹 멤버들이 그 마음이 자유하지 못해 입을 열지 않았다고 말하기엔, 남모르게 고통하는 사람의 상황과 마음속은 여러 갈래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이 아닐진대, 한낱 인간으로서 자신의 고통에 온전히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누군가가 함부로 판단하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위로해주었던 사람들이다. 사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정확히 잘 모른다. 그래도 침묵과 조용한 기도로 나를 응원해주는 듯한 몇몇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쪽에서 먼저 오랜 시간 안부조차 묻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
이제는 나의 여정이 소위 남들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 여기는 것은 고난에 대해,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깊이에 대해 정말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어디서 '이런 것이 있더라' 하고 들었다 한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깨달음을 얻은 값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나는 정말 귀한 경험을 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진정한 연륜치 하나가 더해진 시간이었다.
시험관 고차수이고, 난임을 겪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가정의 오랜 노력과 소망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데 진짜 그러면 어쩌려고 이제 글까지 써서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수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정리해봅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그 모든 바람이 해피엔딩이 아닐진대, 인생의 섭리를 인정하며 나에게 이 경험이 왜 찾아왔을지 사유해봅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겐 부디 공감과 위로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연재를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듭니다.
* 13화를 마지막으로 <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 1부를 마치고 브런치북으로 묶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기존 매거진을 통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