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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Jun 13. 2022

12_임산부석에 앉아버렸다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 시험관 고차수 난임에세이


이제 막 새로운 찻수를 시작해 과배란에 들어갔는데 일거리가 들어왔다. 벌써 최근 두어 달 동안 두세 번은 들어오는 일들을 거절했던 것 같다.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받았겠는데,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 하거나 고정적으로 일정기간 상근을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병원 스케줄과 병행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고, 체력이 달려 힘에 부치기도 해서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내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터라 일을 제안하기 전에 늘 내 컨디션과 안부를 먼저 물어준다. 참 고맙고 미안하다. 아무리 이해를 해 주려고 한다지만 공적인 일에서 계속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진행하지 못하면 이 신뢰가 과연 오래 이어질까. 이번 일은 서울에서 진행되기도 하고 새벽진료를 이용하면 병원 스케줄도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해보자 싶었다.


다른 프로젝트보다 좀 더 높았던 페이도 사실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날로 늘어가는 병원비와 그에 따라 또 늘어가는 부가적인 지출이 점점 부담이 되는 요즘이었다. 눈 딱 감고 잠시만 고생하면 꽤 여유 있는 목돈이 들어올 텐데 조금만 견뎌보자 싶었다.




출퇴근은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방법과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같이 나갔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 전철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광역버스를 타는 것이 편한 방법이긴 했다. 호르몬제에 대한 부작용 때문에 과배란 때마다 멀미하는 듯한 울렁거림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 출퇴근 길의 밀리는 만원 버스 안에서 그 울렁거림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전철이 낫겠다 싶었다. 흔들림이 덜 하기도 하고, 너무 힘들면 전철에서는 잠시 내릴 수라도 있으니까 그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새벽진료를 안 가본 것은 아닌데, 일이 있어 첫 진료를 다녀본 것은 처음이었다. 진료 대기가 조금씩 길어질 때마다 출근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너무 초조했다. 원래 다니던 직장이라면 오늘 조금 늦겠다고 양해라도 구할 텐데, 프로젝트성으로 잠시 머무는 외부 직원이 개인 사정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루는 진료 후 출근시간을 도저히 맞추지 못할 것 같아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속철도를 예매해두었다. 비용이 비싸서 그렇지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20분이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는 어찌어찌 마쳤는데 처방된 주사약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차 시간이 임박하다고 사정사정을 해서 간신히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남은 약은 냉장보관을 해야 했는데 얼음 팩을 넣는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몇 시간 채 되지 않았다. 출근하는 곳이 탕비실 같은 것이 마련된 일반 오피스가 아니어서 상비된 냉장고가 없었다. 저녁에 찾으러 올 테니 주사를 좀 맡아달라고 병원 측에 부탁을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최대한 일찍 퇴근을 해서 병원 문 닫기 전에 주사를 꼭 찾아서 들어가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난임치료를 받으면서 출퇴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소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럴 때마다 얼마나 난감하고 힘들었을까 싶었다.


호르몬제 때문에 약간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일을 하려니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재택으로 하는 일들은 거의 페이퍼 작업이기 때문에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그런데 외근이나 출장을 나오면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긴장이 잔뜩 된다. 머리와 혀가 빠르게 협력을 해주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뇌를 거쳐 나온 말들이 맞는지, 아무래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으려나 싶어 너무 불안했다. 질문을 던져놓고 상대방의 답변을 들은 뒤 후속 질문을 이어가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정보가 빨리빨리 흡수되지 않아 순간순간 공백이 생겨 아찔한 순간들이 생겼다.


최대한 포멀한 복장을 해야 하는 자리였는데 날이 갈수록 몸이 부어서 옷차림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과배란 때 함께 투여되는 부스터 역할을 하는 성장호르몬제는 몸 이곳저곳을 많이 붓게 만든다. 특히 투여일 수가 늘어날수록 다리와 발이 많이 부어서 운동화 외에는 잘 신겨지지가 않는데, 이곳에 출근을 하는 동안에는 계속 구두를 신어야 해서 발이 매우 아팠다. 과배란 중에는 가볍게 걷는 운동을 자주 해 주어야 난포들이 잘 클 수 있는데, 이번에는 걷기는커녕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엉덩이 한 번 떼지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여러모로 잘 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면서 괜히 이번 일에 욕심을 낸 건 아닌가 시간이 갈수록 자책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퇴근길, 전철에 올랐는데 남은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난포가 한창 막 자라 불편한 배를 생각하면 서 있는 것이 편하긴 했는데, 안 그래도 퉁퉁 부은 발이 저녁이 되니 도저히 신발을 신기 어려울 정도로 부어 올라 어디든 앉지 않고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구두 뒷 축을 구겨 신고 슬리퍼처럼 질질 끌고 전철역까지 왔던 터였다.


딱 하나 남은 자리가 있었다. 핑크색 임산부석이었다. 저기라도 앉을까, 앉아도 될까. 초침이 두 번 정도 움직였을 그 짧은 시간에 앉아, 말아의 생각이 수십 번을 오갔다. 아 모르겠다, 그냥 앉아버렸다.   




이 자리에 앉고 보니 왜 그렇게 서러움이 몰려오는지. 내 자리가 아닌 걸 알고 앉으니 너무나 가시방석이긴 하지만 다시 일어나기엔 몸이 너무 버겁다. 같이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주변 지인으로부터 임산부 뱃지를 받아 쓰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호르몬 치료 중에 힘들 때나 배아 이식 후 몸을 조심해야 할 때 필요하면 쓰라고 주었다고 한다. 지난 임신 때 임산부 등록을 빨리 했더라면 뱃지라도 받아놨을 텐데, 몇 주에 걸쳐 정신없는 일들을 겪느라 임산부 등록을 하기도 전에 유산 확인서를 받게 되었었다. 뱃지도 걸려있지 않은 가방이 민망해 두 팔로 더 꼭 끌어안고, 그저 피곤에 지친 초기 임산부로 봐주기 바라면서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바닥만 보았다.


난임환자들도 임산부에 못지않은 호르몬의 변화와 체력 변화를 겪으면서 하루하루가 참 힘이 든데, 어디다가 난밍아웃을 할 처지도 못되고, 사정을 오픈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임산부도 그런 대접을 잘 받지 못하는 마당에 이 상황들을 얼마나 이해받을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우리는 임산부가 차라리 부럽다. 어쨌든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더 배려해주긴 할 테니까, 어디서든 축하와 축복을 받고 있는 중일 테니까, 그 응원의 덕으로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자리에 앉아 가는 20여분의 시간이 2시간처럼 느껴졌다. 내릴 때까지 마음속으로 빌었던 소원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다음 번에 이 자리에 앉을 때에는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당당하게 앉을 수 있는 신분이 되어 있는 것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내릴 때까지 진짜 임산부가 이 전철, 이 칸에 타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그 날 나로 인해서 그 자리에 앉지 못한 임산부가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정말 죄송했다고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시험관 고차수이고, 난임을 겪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가정의 오랜 노력과 소망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데 진짜 그러면 어쩌려고 이제 글까지 써서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수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정리해봅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그 모든 바람이 해피엔딩이 아닐진대, 인생의 섭리를 인정하며 나에게 이 경험이 왜 찾아왔을지 사유해봅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겐 부디 공감과 위로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연재를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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