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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Feb 27. 2018

올림픽 피겨 스타의 20대 초반 선수 은퇴 안내서

사샤 코언, 2018년 2월 24일, 뉴욕타임스


2006년 2월 23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 종목의 프리 스케이팅에 출전한 나는 초반 30초 동안 두 번이나 링크에 넘어졌다. 관중석에서 나온 탄식은 일순간 경기용 음악은 물론, 심지어 나의 생각까지 앗아가고 말았다. 토리노는 나의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이었다. 그 순간, 나는 금메달과는 확연히 거리가 멀어졌다고 직감했다. 


하지만 나는 안무를 제대로 마쳐야 했었기에, 다시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넘어진 이후로 나머지 동작은 내가 그간 연습한 대로 잘 이뤄졌다. 마침내 나는 은메달을 따냈다. 


그날 밤에 시상대에 서면서 나는 금메달을 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고 자책하면서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순간은 나의 경력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어렴풋이 알려주는 듯했고, 은퇴를 염두에 두자 슬픔과 혼란이 뒤엉켜 나를 찾아온 것 같았다.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난, 2010년에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출전권을 나는 획득하지 못했다. 비로소 나는 추후 올림픽이나 비슷한 수준의 대회에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자, 꽤 경기력 좋은 피겨 스케이터라는, 내가 20년 동안 쌓은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졌다. 25살에 나는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갑자기 찾아 나서야만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승리나 패배와 상관없이, 올림픽을 경험한 운동선수들이 은퇴에 직면할 때 피하기가 어려운 일종의 사망 선고(mortality)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범한" 삶으로의 변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과부하를 끼칠 정도로, 그리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심지어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도 이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자신의 경력에서 무려 23개의 올림픽 메달을 따낸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도 은퇴 후 지속적인 우울증 증세로 인해서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는 보도를 접한 뒤 나는 충격에 빠졌다.


올림픽 이후의 삶으로 돌아갈 때 직면할 어려움은,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역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21살에 벌써 퇴물로 여겨져 은퇴를 해야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 일요일에 열린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이 이후로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가운데 많은 비율이 자신의 상황에 따라, 방금 내가 언급한 질문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경험이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몇 가지 안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가장 첫 번째로,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은퇴를 꼭 필요했던 휴식 기간(vacation)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초반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서, 이제는 아픈 몸을 이끌고 몇 시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하거나, 나의 조국에서 비롯되는 엄청난 기대감을 홀로 짊어질 필요가 더 이상 없다는 게 정말로 좋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서 내 삶은 다시 김 빠진 것처럼 생기가 없어졌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자 나에게 주어진 훈련 일정이 사라지자, 나는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피겨 선수로서 나의 활력을 불어준 승리, 혹은 패배까지도 매우 그리웠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 가운데 한 명으로 군림했지만, 지금은 사회 내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서 뒤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묘한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나도 여타 많은 올림픽 선수들처럼 '홈스쿨링'을 통해 학업을 했지만, 수준은 평균 이하에 머물렀다. 26살이 되었는데도 나는 2년제 대학 조차 입학하지 못했다. 7학년[한국에서는 중1, 혹은 중2] 이후로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은퇴 후에 학업을 빠르게 따라가는 건 너무나 벅찼다. 29세가 돼서야 나는 처음으로 여름 인턴십을 참여했다. 그때 내 인턴 동기들은 나보다 10살 정도 어렸다.


이러한 어려움은 정서적인 상처로 매번 이어지지 않았지만, 혹여 그런 적이 있었을 때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운동선수였을 때 우리는 고통과 두려움을 부정하고, 심신을 좀먹는 부상을 끝까지 견디며, 불안과 우울증을 이겨내며 끝까지 인내하는 등 모든 상황을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가르침을 받곤 했다.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매우 혹독한 환경에서 몇 년 동안을 지냈던 사람이라면 어느 감정이 정상이고, 언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모른다. 


이것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금메달의 무게(The Weight of Gold)"에 나는 최근 참여한 바 있다. 어떤 선수들은 자신이 외부에 도움을 언제 요청해야 할지를 모르거나,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거기서 접했다. 동계올림픽에 3번이나 출전했고, 봅슬레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스티븐 홀콤(Steven Holcomb)은 지난해 미국 뉴욕 레이크플래시드에 위치한 미국올림픽선수훈련센터에서 약물과 알코올 과다복용으로 인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죽기 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홀콤은 올림픽 이후로 펼쳐지는 삶에서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할지 도통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올림픽 이후 계속 펼쳐지는 나만의 삶을 토대로 배운 점 한 가지는 또 다른 목표들을 세우는 동시에 새로운 목적의식을 함양하는 것의 중요성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학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제대로 작문을 하지 못했고, 수학 시간에 나오는 방정식은 고대 상형문자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스케이팅에 접할 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나는 2016년에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고, 졸업식은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나만 이런 성공적인 변환을 이뤄내지 않았다.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설파하는 마이클 펠프스는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심리 상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거머쥘 때보다 더욱 평온하다"라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은 운동 경기 규칙과 인생 규칙에는 서로 상반되는 점이 있다고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 매일, 매일 노력하면서 단 하나의 커다란 과제를 이룬다면 당신에게는 끈기(grit), 결단력, 그리고 회복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운동 경기처럼 단일 경쟁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하나로 묶어 극단적으로 나가는 능력은 앞으로 당신을 다가올 여러 인생의 도전들과는 궤가 다르다.


그러니까 운동선수로 은퇴를 하고 나면 여행을 가거나, 시를 쓰거나, 당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거나, 늦게까지 밖에서 놀든가, 잠시나마 두루뭉술한 일에 전념해보는 건 어떨까. 간단히 말해서, 훈련을 받을 때 하지 못했던 것을 한번 해보라는 얘기다. 올림픽 이후의 삶에서 목적과 의미를 찾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그저 당신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면 된다. 결과에 맞춰 짜인 방식이 아닌, 그저 과정만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배워보라. 마치 당신이 아주 어렸을 적에 재미로 운동을 처음 접했었을 때처럼. 


-끝-


사샤 코언은 현재 금융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 은메달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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