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참 돈이 없었는데."
"그러니까 만 원이면 밤새 놀 수 있었는데."
"그래도 참 재밌었지."
"지금은 10만 원을 가지고 놀아도 그 때 만큼 재미없는 것 같아."
"100만원 정도면 재밌지 않을까?"
"어쩌면?"
요새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물가가 오르는 것 처럼 매 년 행복의 값도 올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같은 맥주였는데 그 때 맥주보다 맛이 없어진 건 분명 맥주회사의 잘못은 아니다. 맥줏값이 오른 것처럼 우리 행복의 값도 올라간다. 이건 필연적 불행이다.
모든 자유가 제한된 청소년에는 제한된 자유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습게도 자유가 허용되면서 고갈되었던 자유를 더욱 갈구하게 된다. 그런데 실질적인 문제에 금방 깨닫는다. 그 자유는 돈이 필요하다.
그 자유를 행복이라는 말로 동치시킬 수 없지만 그 당시 얻은 자유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경험들로 오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에 행복이라 해보자.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숨어먹던 맥주를 당당히 술집에서 먹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기숙사에서 행복의 값을
불행의 씨앗은 가진 것에서 생긴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어느 유명한 스님의 말씀이다. 무소유를 주장했던 그 스님의 말처럼 점차 가진 것이 많아질 수록 조금 더 불행해지는 것 같다.
지금도 물론 새로운 행복들이 찾아온다. 다만 지불해야하는 값이 점점 더 커진다. 내가 이미 겪었던 행복은 이미 당연한 것이 되었고 또 되어가고 있다. 물론 당연하다고 행복하지 않진 않지만 행복감은 분명 줄어든 것이다.
행복은 새로운 것에서도 오지만 경험한 것들의 수준에서도 온다. 이게 진짜 불행이다. 롯데리아만 먹던 남원 촌놈이었던 나는 맥도날드 빅맥을 먹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은 버거킹으로 다시 수제버거로 행복의 기준은 올라갔다. 그에 따라 지불해야할 값도 올라간 것은 당연하다.
행복의 값이 비싸지는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19. 06.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