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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식 May 23. 2021

긴긴밤

<루리_ 긴긴밤>을 읽고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 심사평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나 적확한 말이다. 


잠들지 못하던 밤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 많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친구들과 진학을 고민하면서 독서대 앞에서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고민들을 하고 있었고 느끼는 정도야 달랐겠지만 같은 느낌의 고통을 나누며 각지고 네모난 공간에서 둥그렇게 모여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뒤늦은 사춘기에 몸살이 났다. 사실 아직도 그 연장선에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어떤 대학에 들어가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지를 고민했다면 대학생이 되어서야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고민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고 인간관계의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긴긴밤은 계속되었다. 그 시절 긴긴밤을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주문처럼 되뇌고 읊조리며 그때의 밤들을 지새우곤 했다. 그리고 그 긴긴밤들이 모여, 그 시간의 고민들이 쌓이고 흩어지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황현산 선생님의 말처럼 분명 밤이 선생이었다.


나의 긴긴밤은 대부분 혼자였지만, 때때로 함께였다. 황현산 선생님이 말씀하신 선생인 밤은 혼자 보낸 밤들이지만 함께 나눈 긴긴밤은 위로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을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가끔은 객기도 부리고. 다음날 일어나 뜨끈한 국물을 나누기도 했다. 모든 고민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고민의 시간의 느낌만 남아있다. 그때의 조명... 온도.... 습도..... 쩝쩝... 같이 먹었던 웰빙꼬꼬...


지금은 잘 잔다. 간혹 긴긴밤에 빠질 때도, 빠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조금 더 어른이 된 나는 금방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긴긴밤을 보낼 자신도 요즘엔 없다. 긴긴밤도 시간과 체력이 허락해 줘야 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때처럼 시시콜콜 긴긴밤을 같이 보내고 싶을때가 있다. 다음날 조금 힘들더라도 그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사는 동안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긴밤을 자주 오래 보낸 친구들을 보면 남다른 애정이 생긴다. 아무리 직장 동료들을 자주 마주치고 밥을 많이 먹었어도 긴긴밤을 한 번 보낸 친구를 넘는 애정이 생기긴 쉽지 않다.


나와 같이 긴긴밤을 보낸 모든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나에게도 그랬 듯 가끔은 우리가 나눈 그 밤들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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