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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바닥 Oct 13. 2023

내가 스타트업 초기 멤버라니

공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퇴사, 이직을 고려할 때 생각했던 것들.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인 일을 한지는 4년을 넘겼다. 제대로 된 회사를 다녀본 경험이라 함은, 얼마 전 퇴사한 신용평가회사가 처음이다. 이전 직장까지는 짧게 다녔고 그다지 기억에 남을 만한 업무를 한 적이 없다. 


꽉 막히고 보수적인 신용평가회사, 회사가 공기업이 모토였기에 사기업화되고 나서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기업에서 하나뿐인 디자이너로 생활하며, 파견을 거쳐 계약직으로 그리고 정규직 전환이 된 지 1년 후 나는 결국 퇴사를 했다. 


퇴사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1. 보수적인 조직에 대한 갑갑함.

2. 제대로 된 업무를 해볼 수 없음 (파견-계약-정규 루트, 차별 속에서 업무를 온전히 맡기 어려움)

3.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더 이상 진급이 불가능함.

4. 사내에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 부족 ( 업무에 대한 존중 없음 )


퇴사를 머뭇거리며 4년을 다닌 이유도 있다.


1. 안정적인 직장

2. 높은 연봉

3. 하루종일 놀아도 될 만큼 여유로운 업무 강도 (조용한 사직 씹가능)

4. 꽤나 좋은 복지들


퇴사를 하고 싶은 이유보다 퇴사를 하지 않을 때 돌아오는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업무강도가 세지 않으며 높은 연봉을 주고,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모나지 않았다.(하지만, 윗분들은 아니었다.) 그렇게 1년 2년 다니다가 3년쯤 됐을 때 퇴사를 한번 말하고 잡혔다. 그렇게 1년 하고 10개월을 더 채우고 결국 나는 퇴사한다. 


사회생활을 길게 하지 않았을 때는 '어떤 회사를 다녀야 하지?'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보통 주변에 물어보면 '1. 사람이 좋거나, 2. 연봉이 마음에 들거나, 3. 일이 나에게 맞거나'를 기준 삼아 2개만 맞아도 다닐만하다고 했다. 


내 친구는 기준이 2번과 3번이었다. 그래서 20대에 2번의 이직을 했다. 2번째 회사에서 사람에게 크게 데인 후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1번과 2번으로, '더 이상 일을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라는 친구의 말에서 얼마나 힘들게 닳고 닳아버렸는지 실감했다. 그리고 2번은 충족되지 못했지만 완벽히 1번에 가까운 회사로 옮겨갔다. 연봉을 좀 낮췄다는데, 얼마나 내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인다.


내가 지금껏 다니던 공기업은 1번과 2번이 충족되는 회사였다. 사람이 좋았고, 대부분 '워라밸'에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심지어 부장님 조차 휴가를 쓱 내고 일주일씩 없어지는 게 일상인 일이었다.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갔다. '다들 왜 열심히 일하지 않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나를 갈아 넣으며 일을 했다. 그래서 파견에서 계약으로 계약에서 정규로, 누구보다 빠른 루트로 달려갔다. 아마도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 회사에서' 열심히를 쫒았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였는지 모른다. 


한 번의 발령이 있었다. sns 마케팅을 위해 디자이너인 내가 타 부서로 가게 되었다. 몸담고 있던 부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의 시작이었다. 첫 6개월은 괜찮았다. 하지만 일이 턱없이 줄어갔다. 회사에 왜 앉아있는지 모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긴 시간을 앉아있으며 병들었다. 아무것도 않아며 월급루팡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시들시들 말라갔다. 일이 재미가 없으니, 점점 더 예민해져 갔다.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4년 만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이곳저곳을 면접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조금씩 죽은 꽃을 뽑아내고 다시 한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밭을 가는 기분이었다. 면접을 보는 건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 회사보다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해 보고, 면접 본 회사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글 - 면접을 봤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다. 스타트업 4곳, 안마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 1곳, 데이터 시각화를 하는 중견기업 1곳, 그밖에 유명한 대기업 3곳 이상, 이렇게 적어보니 생각보다 많이 냈다. 그중에서 중견기업과 스타트업에서 각각 면접을 보자고 불렀다. 


중견기업 면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불편했다. 내 시간과 열정을 더 회사를 위해 사용해 달라는 식의 면접에, 약간 대답을 에둘러서 했다. '업무에 필요한 수준이라면 일정정도 하겠지만,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불필요게 소진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서류 탈락 통보를 받았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도 많이도 탈락됐다. 사실 스타트업정도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내 자만에 크게 반성한다. 그래도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봤다. 생각보다 세세하게 포트폴리오를 보고 질의를 하는 모습에서 '꽤나 진중하고 열정적인 회사'라는 인식을 받을 수 있었다. 앱설계를 왜 이런 식으로 했는지 대화를 주고받으며, 살짝 기분이 들뜨는 느낌이었다. 회사에서는 전혀 받을 수  없던 업무 피드백을 면접을 통해 받았다. 면접 마무리 시점에 '좋은 피드백 감사하며, 주신말씀을 토대로 더 나은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피드백에 부정적인 부분들도 많아서 나는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스타트업 팀장과 여러 차례 통화 끝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입사를 결정하기 전까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기업정보가, 이제야 눈에 띄었다. 퇴사율 55%


20명 안팎의 스타트업에서 8명 정도가 최근 입사를 했고 그중 7명이 나갔다는 통계였다. 덜컥 겁이 났다. 나도 저 7명 중 1명이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걱정을 현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디자인 직무를 더 잘 소화할 수 있게 몇 년 만에 '디자인 인강'을 듣는 중이다. 하하 


물론 이런 식으로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항상 내게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사를 하기 전까진 그 회사가 나에게 얼마나 잘 맞을지 알 수 없다. 그건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적인 부분이다. 다만, 내가 '스타트업에 더 잘 녹아들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다잡을 수밖에 없다. 


스톡옵션도 받았다. 스톡옵션이 뭔지도 잘 모르는데, 내 연봉을 듣던 대표님이 적정한 수준에서 스톡옵션을 나눠주셨다. 회사를 2년 근무하면 온전히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2년 근무를 조건으로 400주, 2천만 원이 좀 넘는 수준을 제안했다. 셈에 약한 난, 좋은 제안을 받았겠거니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애초에 돈을 많이 받기 위해 이직을 하는 게 아닌 것도 한 몫했다. 


갑작스럽게 선택지에도 없던 스타트업을 가게 됐다. 사실 나는 내가 공기업에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이직하게 될 줄 알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갔다. '아마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일 욕심'이 나를 스타트업으로 끌어당긴 것 같다. 


20대만큼 열정으로 반짝거리며 일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번아웃과 30대를 겪고 있는 시기에 스타트업에서 '더 나은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나를 얼마나 더 소진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지금 이직하지 않으면 40대에 공기업에 남은 걸 후회할 거란 확신이 있다. 그곳은, 커리어의 무덤이었고 나는 3번(일이 나에게 맞거나)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불안들은 나를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불안이 있기에 나는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불안을 믿어보려고 한다. 이 불안들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 것이며, 종래에는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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