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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바닥 Sep 05. 2023

면접을 봤다

20대의 면접과 30대의 면접은 조금 달랐다.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오늘은 <이직 연봉을 잘못 불렀다 아차차!>에서 언급했던 회사의 2차 면접날이었다.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입구에 들어선 순간 그 차가운 공기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면접 10분 전, 대기실에 앉아서 웅성거리는 회사를 문틈 너머로 지켜보았다.


'이곳이 앞으로 일하게 될 회사일까?'


순간, 지금 근무하고 있을 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참고로, 나는 재직 중인 상태에서 이직을 할 곳을 알아보고 있다.)

 

차가운 표정에 별 관심 없는 말투를 하고, 연신 코를 훌쩍거리며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던 그의 얼굴.


어쩐지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했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헛웃음이 났다. 그는 내가 면접을 보기 위해서 휴가를 낸 줄 모른다. 어제만 해도, 내게 잘 쉬고 오라는 인사를 건네었으니까. 괜히 긴장이 풀려갔다. 돌아갈 회사가 있어서라기보단, 어차피 저기에 앉아 면접 보는 저들도 우리 팀장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면접을 봤다. 회사가 준 인상은 굉장히 젠틀했다. 받았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면 '야근이 괜찮은지', '여러 업무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이었지.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정작 회사가 어떤 근무환경을 가지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편인지에 대해 듣지 못했다.


이어, 나에게 회사에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근무하게 될 팀의 디자이너 유무와 앞으로의 회사 비전, 그리고 고객사의 불합리한 요청때문에 사내 불화가 생겼을 때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답변은 '우리는 상식선에서 움직이는 회사'라는 내용이었다.


별것 아닌 대답 같지만, 순간 저 대답에 "저 여기 입사하고 싶습니다!"라고 외칠 뻔했다. 느낌표가 머리에 뜨는 답변.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상식적이지 못한 순간이 많다. 비상식의 순간에 서서 업무를 해야 할 때면 일의 효율은 물론, 삶의 가치까지 떨어진다. 회사에서 모든 일이 상식선에서 돌아갈 순 없지만, 최소한 상식을 위해 구성원 모두가 노력한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사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지금 재직중인 회사는 신용평가를 업으로 삼고 있다. 나는 그 회사에서 한 명뿐인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온갖 업무들을 다 떠맡아서 했어야 했다. 회사에서 공공사업을 할 때면, 외부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구닥다리 실적 쌓기용 업무도 했었고, 외부 프로젝트가 엎어지진 않을까 팀원들과 불안에 떨어야 했다. 외부 고객에게 맞춰주기 급급하다 보니, 정작 내부 직원들은 말라갔다. 그렇게 3년을 넘게 일하다 보니, 다들 떠나고 회사엔 나만 남았다.


이번에 면접 본 회사도 외부 고객사를 상대하는 일을 한다. 지금 직장과 다를 것 없는 일을 하는 회사, 이번에도 같은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상식적인 회사라고 했지만, 그 상식이 정말로 잘 통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참고로 면접을 본 회사에도 따로 디자이너가 없다. 또 회사의 한 명뿐인 디자이너가 되는 길을 선택할 자신이 없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없다는 건, 너무 쓸쓸한 일이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질문을 했을 때 썩 좋은 답변을 듣지 못했다. 나는 회사의 비전에 대해 물었고, 면접관은 회사의 산업분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안에서 회사가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 건지가 잘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외주용역이 주 분야가 되는 회사이기에, 내부 서비스를 개발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을 때도 그리 기억에 남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머릿속에서 이미 그 답변이 휘발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질문 시간을 십분 활용해 회사를 조금이나마 들춰볼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말로, '오랜만에 면접이라,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잘 부탁드린다'라는 말을 남기고 면접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왜 사람들이 면접은, 나만 평가받는 게 아니라 회사도 평가받는 자리라고 했는지를. 20대 때 보던 면접은 '제발 나 좀 채용해 주세요!' 였다면, 30대가 돼서 본 면접은 '이 회사가 나에게 어떤 미래를 그려줄 수 있는지'였다.


그 회사와 나는 뜻듯미지근한 채로 면접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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