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바닥 Sep 05. 2023

아직은 창피한, 나의 글쓰기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노동을 낭비 중인 30대

면접이 끝나고 마침 근처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친구를 보러 강남역으로 넘어왔다. (이전 글 <면접을 봤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반바지 차림과 청색 그래픽 셔츠에서, 이번에 이직한 회사는 '꽤나 자유로운 분위기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한 회사에 4년을 근속할 동안, 그는 직장을 4번이나 바꿨다. 옮긴 직장마다 연봉을 높였고, 이번 회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지금껏 뭐 했을까?' 싶어졌다. 하지만 이내, '인생의 가치가 돈이 전부는 아니지'라는 자기 합리화로 내 부끄러운 열등감을 숨겼다.


친구는 유명 스타트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이직을 연신 말렸다.

 

"지금 다니는 회사, 괜찮지않아? 그냥 계속 다녀. 힘들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까지 됐잖아"


"글세, 모르겠어. 계속 다니면 좋겠지만 이 회산 미래가 없는걸"


적당한 답변을 달고 그에게 결혼계획을 물었다. 아직은 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와 함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미래엔 무슨 일을 할지'로 넘어갔다. 그에게 '나 사실 요즘 다시 글 써. 그리고 전시도 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저 문장은 나오지 못했다.


'나 글 써'라고 하면, 무슨 글을 쓰는지 물을 테고 '나 전시해'라고 하면 그림을 팔았는지를 물어볼 테니.


내게 글쓰기는 나를 온전히 나로 서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당당히 남들 앞에서 글을 쓴다고 말하지 못한다. 일단 부끄럽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게 너무너무 부끄럽다. 인터넷의 불특정 다수가 읽는 것과 가까운 측근이 글을 읽는 건 전혀 다르다. 가끔 글을 읽은 친구들이 '이 글 무슨 생각하고 쓴 거야?'라고 물으면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내 마음속 깊이 숨겨왔던 감정을 풀어낸 글을 친구가 읽는다는 건 수치플(?)에 가깝다. 감정은 글이 되고, 글은 읽히고 머릿속에 새겨진다. 친구에게 내 감정이 새겨지는걸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후부턴 대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글을 쓴다'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글을 보여주긴 싫어'라는 이성이 만나 내 속은 이미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가 돈이 되냐는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았다. 글쓰기는 돈이 되는 취미가 아니다. 내 지식과 감정, 손가락의 노동이 들어가지만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을 할애하고 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을 쓰는 건 분명 멍청하게 비칠 수 있으닌깐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애써 감춘 자격지심이 튀어나와, '돈은 못 벌지만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어!'라고 외칠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욱이 나는 글쓰기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지 않았다. 딱히 책을 내고 싶기도, 그렇다고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편의 글을 적어낼 마음도 없었다. '나중에 출판하게?'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아직은 창피한 나의 글쓰기, 나는 오늘의 헤어짐이 다가올 때까지 그에게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직은 창피한, 나의 글쓰기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노동을 낭비 중인 30대


작가의 이전글 면접을 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