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사라진 그대

연애의 3단계

by 삐딱한 나선생
세계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낯설게 다가올 경우, 오직 이때에만 우리는 생각이란 말에 걸맞게 사유하기 시작합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 삶을 만나다>에서 인간이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난 인간이 항상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당신 곁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말이다.



곁에 두고도 사라져 버렸음에


철학자 강신주는 익숙함을 '문'에 비유한다.

아무 의식 없이 열고 닫는 문 말이다.

아무 문제없이 열리는 문은 나에게 생각을 갖게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나에게 머물러 있는 당신이 나에게 사랑을 자극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밀당을 하고 불안하게 만들라는 말은 아니다.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뿌리와 같은 것이다.

기본적 신뢰의 기반 없이 줄기는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은 평화를 믿고 방만하게 굴 때 일어난다고 하던가.

믿음의 뿌리를 갖고도 노력하지 않으면 잎은 피지 않는다.

잎이 없는 뿌리는 썩어갈 뿐이다.


당신이 곁에 있음에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여긴다면 소중함을 잃는다.

손잡이를 잡고 눈으로 보았으나 느껴지지 않는 '문'처럼 말이다.



당신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음을


철학자 강신주는 예외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생각을 한다고 했다.

당연히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는 그런 '사건'들 말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네가 내 곁을 떠날 것만 같은 불안함과 같은..


내가 문을 지나칠 때, 문도 나를 지나친다.

내가 당신을 그저 열리는 방문처럼 여긴다면, 당신도 나를 문으로 여길 수 있음을.

내가 다른 이성을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대가 자신의 발걸음으로 나에게 올 수 있었듯, 그 발걸음을 돌려 떠날 수 있기에.

이 두려움은 당신이 자유의지를 갖고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너'의 새로움이 아닌 '너'와 하는 새로움


익숙함을 극복하는 것은 무조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문으로 바꾸고, 멋지게 꾸며도 소용없다.

언젠간 또 익숙해지고, 바꾸고 싶어질 테니.


이제는 문을 넘어서야 한다.

물론 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문에 매여서도 안 된다.

문을 넘어서는 것은 그 문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문은 내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사랑의 익숙함은 당연한 것이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안정되어 가는 것이다.

익숙함에 권태로워진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문을 열 때가 되었다는 것.


서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상대를 바꾸지 않는다.

그저 함께 하고 있는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

끝없이 함께 할 무언가를 찾아간다.

그리하여 그 둘은 변함없이 그대로여도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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