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딱한 나선생 Oct 12. 2023

끝이 다가옴을 느낄 때

더 나은 존재가 돼야 한다는 끝없는 갈망, 혹시 이렇게 쉬고 있을 때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인생이 예상보다 훨씬 짧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중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게임보다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요즘은 그 마음을 거의 놓아버린 것 같다.



효율


처음 글을 쓸 때는 완전히 빠져서 썼다.

자다가도 좋은 말이 떠올라 메모를 했다.

길을 걷다가, 아내랑 얘기를 하다가도 적었다.


책이라는 결실을 얻었지만 그즈음 풀이 죽었다.

축하와 지지가 많았음에도 악플 하나를 이기지 못했다.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글이 적힐 리 없었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은 확실치 않았다.

내 생각을 밝혀 쓰는 것이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써온 글도, 부풀었던 꿈도 모두 버려야 하나 두려움이 인다.


어떤 게임을 하든 한계가 온다.

쉽게 올랐던 레벨은 며칠이 걸린다.

콘텐츠는 버겁고, 퀘스트는 숙제같이 느껴진다.


끝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글을 발행해야 맘 편히 놀 수 있었다.

이젠 그 숙제하던 마음도 끝난 지 오래다.



노화


어렸을 땐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카악~ 퉤! 하는 게 괴물같이 느껴졌다.

아저씨들 코털이 삐져나오고, 자꾸 코를 후비는 게 더러웠다.

나도 이 그런 아저씨가 됐다.


목을 긁어서 카악~! 소리를 내지 않으면 시원하게 청소가 되질 않는다.

털들은 자기 위치의 역할과 규칙을 잊은 듯 제멋대로 자라난다.

눈썹엔 더듬이가 생기고, 코털은 코를 간지럽히고 있다.


40도 되지 않은 게 이런 말을 한다고 비웃을 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나에게 있어 가장 오래 살아온 날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 스스로 느끼는 세월이다.


물론 남은 날을 생각하면 가장 젊은 날이겠지만

그런 긍정적인 마음을 갖지 못하는 건

내 몸이 돌아갈 수는 없겠다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기대


남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맹목적인 승진은 싫었다.

그냥 교사여도 당당한 나의 길이 있으리라 믿었다.

이제는 이 말을 이루었어야 할 나이가 됐다.


남들이 인정할만한 잘난 사람은 되지 못했다.

한 분야는 자신 있다고 할 만한 무언가도 잘 모르겠다.

목숨 바친 그런 열정은 아니었고, 그냥 순간을 나로 살아왔다.


난 월등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아니다.

뛰어난 교사도, 훌륭한 아빠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 쓸모로도 남은 시간 살아가야 한다.


내 몸의 기능들이 하나하나 약해져 간다.

난 좀 더 나은 사람일 거라는 마음도 놓아야 할 것 같다.

이제 내 한계를 받아들이고, 기대를 조정해야 할 시기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불용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