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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May 13. 2024

나 편한 대로의 사랑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그 누구보다 상처를 주는 게 내 옆의 사람이니.

심지어 행복해야 할 순간조차 당신의 마음대로라면.



편한 남편


배가 애매해 간단한 점심을 먹으려 롯데리아를 갔다.

애들과 넷이서 T데이 할인하는 세트를 시켰다.

3개의 세트를 오천 원도 되게 먹었다.


난 짜고 진한 걸 좋아한다.

양념감자를 반정도 덜어내고 섞는다.

그러면 2배 진한 양념감자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반을 위한 케첩이 필요하다.

애들은 치즈스틱으로 바꿔서 이것도 케첩을 찍는다.

그런데 케첩은 하나밖에 없었다.(그마저도 처음엔 안 보였다.)


나: "저기요, 케첩을 음.. 3개 주실 수 있나요?"

직원: "... 저희는 2개밖에 안 됩니다.."

아내: (나에게) "그냥 없어도 되잖아~"


직원의 말투와 표정은 정말 별로였다.

도시의 교육된 친절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더 기분 나쁘게 한 건 내 아내다.


"야! 이걸 내가 달라고도 못 하는 거냐?

네가 말을 못 한다고 나한테도 못하게 하냐.

점원에게 부탁하는 거보다 나를 말리는 게 더 편하다 이거지?!"


아내는 말이 없었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이랬다.

반찬하나 달라는 것도 못해 내가 했다.

하다 하다 애들 교육하듯 아내를 시켰다.

지금은 아주 조심스레 "죄송한데요~"하면서 시킨다.

여전히 남들은 두렵고, 남편은 만만하다.



편한 약자


정말 반대인 집들도 많다.

오히려 직원에게 함부로 한다.

뉴스에 나오는 갑질이 멀지 않다.


"저기요~ 여기 좀 닦아주세요~!"

조금 묻은 건 닦고 앉아도 될 텐데 꼭 시킨다.

불이 약하다, 반찬이 어떻다 작은 불편도 따지고 든다.


자본주의 사회엔 돈이 권력이다.

돈을 쓰러 온 사람이 갑인 게 맞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돌고 돌아 내 위에 온다.

내가 함부로 대했던 사람이 내 직장에 민원을 넣는다.


상대방을 약자로 여기기에 막 한다.

그건 아이, 어른,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가게에서, 일터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약자를 발견한다.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자기 아이를 너무 귀하게 여겨 탈이다.

그러나 귀하게 대하는 것조차 자기중심이다.

아이가 원치 않는 옷에, 음식에, 학원까지.


아이는 괴로워하고, 공부와 담을 쌓고, 엄마와 멀어지는데 모른다.

아니 알고도 이렇게 하는 게 옳고, 본인이 맞다고 우긴다.

아이는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 들어주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은 가장 약한 자를 대할 때 나온다고 하던가.

본인이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불편한 사랑


전반적인 평은 달랐지만, 개인적으론 좋았던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자기는 이를 너무 악물고 살아서 잇몸이 다 허물어졌다 하셨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10개 중 1~2개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무부장님과는 또 갈등이 있었다.

본인은 줄였다고 하지만 그 줄인 것은 꼭 해야 했다.

말의 횟수를 줄였는지는 모르지만 말하는 태도는 바꾸지 않으셨다.


나도 아내에게 할 잔소리를 많이 줄이고 있다 생각했다.

불이 켜져 있어도 3번은 그냥 끄고 다음에 말하자.

그러나 말하는 방식은 또 내 하던 대로 했다.


왜 내가 살아나면 당신은 힘들어했을까.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많이 할수록 뭐라 하니까.

살아있는 날카로운 눈으로 이것저것 다 따지고 드니까.


그래.

나는 아직 나를 다 버리지 못했다.

당신을 탓하면서 나는 여전히 나였다.

당신이 변하길 바라면서 난 그대로 있었다.


어제도 아내와 말싸움을 했다.

옳은 말을 옳게 전달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내 평생 처음 해보는 변화가 있었다.


술도 취했지만, 감정도 격해졌지만, 그럴수록 차분해지려 했다.

피곤하고 짜증이 났지만, 예의를 지켜 존댓말을 썼다.

분노했지만,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지금까지 싸우던 방식을 조금은 바꾸려 한다.

내 말이 함부로 나오려 할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당신을 소중히 대할 때 반말을 하고, 당신을 함부로 대할 때 존댓말을 쓰겠다.

나를 위한 편함이 아닌 당신을 위한 불편함으로 살겠다.


이 글은 사실 당신을 탓하려고 시작했다.

결론이 이렇게 될 줄 나도 몰랐다.

글은 쓰면 쓸수록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글도 어렵고 사랑도 어렵다.

지금 삶이, 사랑이 편하다면 한 번쯤 돌이켜볼 시점인지 모른다.

'내 곁의 당신도, 지금 편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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