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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May 10. 2024

코코

에세이『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여름이 지나고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생후 3개월 차 새끼 고양이 코코.그해 여름, ‘땀이 눈물처럼 흘렀다.’라는 어느 에세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혼자였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여름이 끝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황량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갑작스럽게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그날 밤 코코를 만났다. 코코는 오피스텔 상가 1층 난간 끝에 웅크려 울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삭막한 느낌을 주는 신도시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와 하천이 흘렀다.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인공 냇물 양옆으로 산책로가 이어졌고 그 길을 따라 주상복합건물이 지어졌다. 


코코가 위태롭게 앉아 있던 1층 난간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블록이 깔린 산책로에서 5미터 정도 위였다. 사람이 뛰어내리면 십중팔구 다치는 높이였다. 나는 코코에게 손을 내미는 어느 젊은 남자의 미덥지 않은 등판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저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남자가 오기 전, 이미 나는 고양이 참치 파우치로 코코를 유혹해 보았다. 우리집 고양이 카버가 밥투정할 때 주는 간식이다. 코코는 고집이 몹시 셌다. 맛있는 참치 냄새가 풍기자 잠깐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사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사납게 하악거렸다. 참치를 플라스틱 용기에 조금 덜어 코코 앞에 두곤 물러났다. 섣불리 잡으려고 했다가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코코의 작은 몸이 절반쯤 난간 밖으로 몰려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 코코는 꼼짝 하지 않았다. 그때 지나가던 젊은 남자가 쭈그리고 앉더니 코코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여자애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얘 또 여기 있네. 어제도 봤는데.”라며 일면식이 있다는 듯 아는 체를 했다. 물론 친한 척 해봤자 소용없었다. 


한참 코코를 달래던 남자는 조바심이 났는지 코코를 잡으려고 경솔하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코코가 돌바닥 아래로 뛰어내렸다. 남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1층 상가 편의점과 치킨집, 주점에는 밤늦도록 사람이 오갔다. 인적이 드물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최선을 다해 남자를 노려보았다. 


산책로 돌바닥으로 내려갔지만, 코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리를 움직여 도망친 걸 보면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코코의 울음소리가 냇물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여자애는 사라졌고 남자와 내가 그곳에 남아 코코를 찾았다. 


처음 집에 왔을 때 코코는 잘 울지 않았다. 나중에 중성화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도 입을 꾹 닫은 채 불안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그날 밤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렇게 울어댔을까. 새끼 고양이는 자신의 울음소리가 포식자를 불러들인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운다는 건 그보다 더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까지 남자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남자였다.


“저기에 있어요!”


냇가 어두운 수풀 사이에 코코가 숨어있었다. 남자는 멀찍이 떨어져 내 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둘 중 코코에게 먼저 손을 댄 바로 그 사람이 집사가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고양이 데려가실래요?”


내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은 개를 두 마리나 키우고 있어서 곤란하다고 했다. 개를 두 마리나 키우고 있다면 사는 형편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다시 한번 남자를 노려보면서 눈으로 욕을 했다. 


품에 안긴 코코는 냇물을 가로질러 도망가는 바람에 흠뻑 젖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수구 냄새가 올라왔다. 남자의 말에 의하면 코코는 어미 없이 1층 상가에 나타났고 벌써 일주일 넘게 숨어다니는 중이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코코를 두고 가기엔 너무 추웠던 겨울의 초입이었다. 


다음날 코코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귓속 진드기를 없애고 목뒤에 구충제를 붙였다. 수의사가 물었다. 


“키우실 거예요?”

“아뇨, 입양처를 찾아봐야죠.”


연일 치솟는 물가와 경기침체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팬데믹 이후 끝나지 않는 불경기에 키우던 반려동물도 내다 버릴 것 같은데 추레한 몰골을 가진 길고양이 새끼를 입양할 사람이 나타날 리 없었다. 수의사는 꽤 무게가 나가는 새끼 고양이용 사료를 건네며 예언자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모두의 예상대로 코코는 나와 살게 되었다.


<계속>




“고통이란 갈망과 혐오를 오가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따라가는 소설 같은 에세이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기념 연재를 시작합니다. 총 4회 연재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알라딘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예스24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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