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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May 12. 2024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

 에세이『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코코의 풀네임은 코코 샤넬이다. 나는 코코에게 최대한 고급스러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코코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새끼 고양이를 통틀어 가장 귀엽지 않았다. 길고 뾰족한 주둥이에 묻은 시꺼먼 검댕이 여러 번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꼬리 두 마디가 기형으로 꺾여 있었고 얼굴 생김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과 비슷했다. 매서운 눈빛에 절대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라 밖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면 우두머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코코는 낯선 이의 쓰다듬을 당하느니 돌바닥으로 떨어지는 쪽을 택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치지 않는 청소년 포유류와 같이 살게 되면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진다. 코코가 나타나면서 그동안 돌보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이어가던 식물들이 모조리 생을 마감했다. 코코는 자라는 이가 간지러웠는지 입에 닿는 건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않고 물어뜯었다. 특히 식물의 잎사귀와 질긴 줄기가 먹음직스러웠던 것 같다. 수려하게 자란 팔카투스 화분이 통째로 뽑혀 나갔다. 

코코는 깡충깡충 걷다가 앞발을 크게 벌리고 뛰어오르면서 공격하길 좋아했다. 나와 카버, 특히 카버가 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 코코보다 두 배 정도 덩치가 큰 카버는 코코가 잠든 후에야 비로소 쉴 수 있었다. 

코코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똑같이 검정 얼룩무늬를 가진 두 마리 고양이는 서로 엇비슷하게 보였다. 코코가 훨씬 가냘팠지만, 조만간 카버보다 더 크게 자랄 것이다. 코코 샤넬은 한 살이 채 되지 않은 수고양이고 암고양이 레이먼드 카버는 여덟 살이다. 


코코가 우리의 일상에 가져온 변화는 긍정적이었다. 가장 먼저 집을 청소하게 되었다. 요란한 소리에 뒤돌아보면 마룻바닥이 온통 깨진 화분 조각과 흙투성이였고 코코가 그 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굴러다녔다. 치우지 않고는 버틸 방도가 없었다. 코코는 악질 상사가 부하직원 얼굴에 서류를 던지듯 바닥 널린 물건들을 사방팔방으로 내동댕이쳤다. 하는 수 없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눈에 보이는 물건을 정리했다. 

긴 시간 방치되었던 공간이 조금씩 말끔해지기 시작했다. 탁한 어항 같은 냄새를 풍기던 창틀의 곰팡이와 냉장고 밑으로 들어간 먼짓덩어리들, 원래 어디에 속했던 부품인지 모르겠는 잡동사니를 전부 쓸어냈다. 쓰레기로 덮여있던 탓에 마룻바닥과 조리대에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남았다. 표면이 일어난 붙박이 가구가 낡아 보였다. 처음 이사했을 때 신축이었던 오피스텔 곳곳에 시간의 때가 눅눅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간신히 굴러가던 일상이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춰 선 상태였다. 가족과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온종일 누워 쇼츠를 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했다. 생존에 꼭 필요한 활동을 제외하면 어떤 것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겠지만, 놀랍게도 그런 삶이 가능했다. 

요가를 가르치는 일도 그만둔 지 오래였다. 명상이나 독서처럼 집중력이 필요한 활동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밤늦도록 잠들지 못해 머릿속이 안개로 뒤덮인 듯 멍했다. 사람들은 우울할수록 몸을 움직여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울증이란 바로 그런 일들을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상태를 뜻했다. 우울한 감정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실재하는 것들을 소진하거나 북돋는다.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카버가 내 머리맡으로 다가와 등을 돌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이 조금 부스스해진 것 같았다. 이듬해 팬트리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요가 매트를 꺼내 거실 바닥에 폈다. 




기원전 인물 파탄잘리는 구전으로 내려오던 요가를 『요가수트라』라는 경전으로 체계화했다. 그는 요가를 통해 진리에 이르는 길을 여덟 단계로 제시했는데 첫 번째 단계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야마’였고 두 번째 단계가 해야 하는 것 ‘니야마’였다. 사람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 둘 중 어떤 것이 먼저냐고 물어보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지금과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요가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먼저였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이다. 건강 전문가들은 술, 담배, 약물, 설탕처럼 몸에 해로운 것을 절제하지 않으면서 수십 가지 영양제를 복용하는 행동은 건강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이란 상대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그것들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마와 니야마를 공부하면서 인간답게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범용적으로 적용되는 윤리가 아니라 그저 개인의 생활 루틴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도덕과 태도가 아닌 현실적인 행위로 한정해서 나에게 인간다움이란 청소와 요리라고 결론내렸다. 

청소는 요가의 두 번째 단계, 니야마 중에서 ‘사우차(청결)’에 해당한다. 사우차는 주변과 자신의 몸은 물론 신체 내부까지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외부의 청결은 청소와 목욕이고 내부의 청결은 음식이다. 공간을 청소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다면 그건 비인간적인 삶이다. 청소와 요리는 곧 내 일상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주변을 정돈하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있다면 이미 잘살고 있으므로 사는 것에 대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쉽게 감정이 동요했고 일 처리도 허술했다.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서 가구와 물품을 차분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요리 재료 등 물질의 낭비도 심했다. 요가를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삶의 규칙을 하나씩 만들고 주변을 정돈할 수 있었다.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늦은 시간에 폭식하는 습관과 근육과 관절을 망가뜨리는 노동 그리고 쓸데없는 상념까지,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이제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 오랫동안 반복했던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짐작했지만 내 몸은 훨씬 더 엉망이었다. 녹슨 허리와 골반에서 쇳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근육은 사라졌고 대신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방이 배와 등을 뒤덮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몸이 둔하고 무거웠다. 내 나이와 체력을 고려했을 때 통증을 관리하고 균형을 되찾기까지 최소 일 년 이상 걸릴 것 같았다. 어쩌면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계속>





“줄곳 찾고 있었던 것, 막연하지만 절실했던 것,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존재로서의 충만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따라가는 소설 같은 에세이『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출간 기념 브런치 연재는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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