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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May 17. 2024

마음을 공부하다

에세이『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3화


여러 해 전 나는 서해의 어느 섬에서 요가를 가르쳤다. 그 섬은 육지와 가깝게 붙어있어 자동차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연륙교 입구가 북적거렸다. 

섬마을 요가원은 읍내 외곽에서 탈의실도 안내데스크도 라커룸도 전면 거울도 없이 썰렁하게 문을 열었다. 몇 년이 지나고 코로나19로 폐원을 결정했을 때 초기 비용이 얼마 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텅 빈 교실 같은 요가실에는 냉난방기 두 개와 4인용 테이블이 있었다. 창 밑으로 개인 요가 매트를 줄지어 세웠고 얇고 긴 스탠드 조명으로 구석진 귀퉁이를 밝혔다. 여러 개를 나란히 붙인 조립식 철제 선반에 붉은색 요가 스트랩과 마사지 볼이 담긴 하얀색 플라스틱 정리함, 요가 블록, 인센스 스틱, 아로마 오일과 버너, 일회용 종이컵을 비치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의 회원들과 수업이 없는 시간에 피우던 연꽃향이 갖춘 것 없는 요가실을 채웠다. 

마음이 부유했던 섬마을 회원들은 번창하라는 의미로 화분을 선물했다. 나와 고양이들은 식물을 좋아했다. 햇빛이 충분하지 못한 방을 전전하면서도 끈질기게 보로니아와 고사리와 꽃치자를 토분에 심고 우리가 사는 공간에 생명력이 싹트길 바랐다. 개업 축하 화분들은 겨울을 몇 번 보내면서 대부분 죽어버렸지만, 삼십 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녹보수는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라 화분 갈이를 여러 번 했다. 


섬에서 삼 년을 보낸 후 나는 서울과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신도시로 이사했다. 도시는 바다를 간척하면서 사라진 작은 섬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섬마을 요가실을 장식하던 손에 쥐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청동 코끼리 조각과 고양이 모양의 인센스 스틱 홀더가 오피스텔 창가에 놓였다. 요가실에서 회원들과 함께 책을 읽던 4인용 테이블도 거실로 옮겨왔다. 남향으로 통창이 뚫린 오피스텔에는 작은 방 하나와 수납공간이 여러 개 있어서 사람 하나와 고양이 세 마리가 살기 충분했다. TV도 소파도 일부러 들여놓지 않았다. 

해무가 짙게 깔린 여름날, 절반밖에 개방되지 않는 창문을 열고 하얀 안개에서 풍기는 바다 냄새를 맡았다. 고층 건물로 가려진 틈새의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 아래로 수평선과 맞닿아 흔들리는 바다의 표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도시로 거처를 옮긴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루아 선생님의 명상 워크숍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적당한 명상 수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에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접했던 명상 수업은 어쩐지 수박 겉핥기 같아서 명상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이후 여러 명상가의 책을 읽었지만, 독서가 실제 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오랫동안 위파사나 명상을 수련해 온 루아 선생님의 명상 워크숍은 요가 강사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섬마을에서 요가원을 꾸려갈 때 격주에 한 번 주말 특강을 받으려고 서울로 향하곤 했는데 당시에는 좀처럼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명상 워크숍은 매주 토요일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4주 동안 진행되었다. 요가 강사뿐 아니라 명상을 배우려는 일반인에게도 등록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등록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 사항이 있었다. 그 문구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역시나 몇몇 수강생은 명상보다는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그중 정돈되지 않은 부스스한 파마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비관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매주 수업에 나타났다. 그녀의 눈에는 세상을 향한 원망과 우리 우주에서 그녀의 불행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없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나중에 다른 명상 모임에도 참가했는데 명상 모임이란 자칫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집단 상담처럼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상은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나기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지향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하지만 나 역시 밝고 유쾌한 이유로 명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루아 선생님은 ‘명상은 곧 마음공부’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마음을 공부한다는 뜻이었다.





줄곳 찾고 있었던 것, 막연하지만 절실했던 것,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존재로서의 충만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따라가는 소설 같은 에세이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연재는 일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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