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우린 이걸 명상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모래시계를 모티프로 만든 샌드아트 액자를 처음 보자마자 떠오른 문장이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너는 그걸 보고 그런 고상한 문장을 떠올리니, 하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하지만 나는 물결을 타고 휘몰아치며 가라앉는 모래를 보며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인테리어의 세계는 참 넓고 빨라서 언제부터 이런 물건이 유행했는지–유행을 하긴 했는지–도 모르지만 인테리어와 관련된 선물 랭킹 10위권 안에 있는 걸 보니 유행은 유행이구나 생각했다. 사진으로 볼 때는 전혀 예쁜지 모르겠던데 막상 눈앞에 있으니 계속 시선이 가는 걸 보니 이런 게 마음을 빼앗는다는 걸까 싶었다. 예쁘고 신기하긴 한데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는 몰라 찾아봤더니 불멍도, 물멍도 아닌 모래멍에 쓴단다. 모래멍이라는 신조어에 당황스러울 여러분을 위해 짧게 소개하자면… 불이나 물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모래 앞에서도 똑같이 하면, 그것이 바로 모래멍 되겠다. 멍 때리기 대회도 열리는 세상에 모래멍이라고 이상할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모래시계를 모티프로 만든 이 샌드아트 액자. 모래시계가 호리병 모양 유리 위쪽에 모래를 넣고 작은 구멍을 통해 아래로 떨어트리는 것이라면 샌드아트 액자는 둥글고 납작한 통 안에 물을 넣고 공기를 주입해 모래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모래시계는 중력과 작은 구멍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활용한다면, 샌드아트는 작은 구멍 대신 물을 이용해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랄까.
모래시계는 더 이상 사우나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작 물속에서 떨어지는 모래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면 지금부터 눈을 크게 뜨고 보자. 모래멍이라고 했지만 사실, 사회적으로는 이것을 명상이라 부르기로 약속했다. 어떤 소리에, 어떤 사물에, 어떤 존재에 집중해 잡생각을 없애거나 정리하는 행위. 아주 어릴 적에는 멍을 때리고 있으면 딴생각한다고 타박이나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멍 때리기가 뇌의 수행 능력을 높여준다느니, 세상을 바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준다느니 하는 연구 결과도 넘쳐난다. 어떤 학자는 명상, 그러니까 멍 때리기는 자연에 몸을 맡기는 산림욕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는 주장도 했다. 샌드아트 액자는 명상의 효과는 물론 떨어지는 모래를 통해 다른 세계로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떨어져 매번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는 액자. 그 액자 속 세상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로 끌고 가기도 하고, 모래가 은빛 별처럼 보이게도 한다. 바람에 휘몰리듯 날아다니게도 하고 저 깊은 심해의 끝으로 가라앉게도 한다. 샌드아트 액자에 대해 쓰기 위해 샌드아트 액자를 앞에 뒀더니 떨어지는 모래에 별별 생각이 또!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바로 이렇게.
모래시계 발명가는 기원전 150년경에 발명한 자신의 모래시계가 2023년쯤에는 사우나나 요리할 때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까. 모래시계를 모티프로 한 인테리어 소품이 나온 것은? 더구나 그 소품을 보며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넋을 놓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을까. 그렇게 돌고 돌아 모래시계 발명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이런 생각이 그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시작일까….
글과 사진.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