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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May 16. 2023

교수님의 피드백을 15년만에 다시 읽으며

(스승의 날 기념) 대학 시절이 내게 남긴 것 : 초심과 열정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중2때부터 내 꿈은 신방과에 가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TV에 빠져 살았던 어린아이의 당연한 결과였다. 중2즈음, KBS에서 PD들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를 방영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부터 어렴풋이 'PD가 되어야겠다' -> '신방과에 가야겠다!'로 인생의 목표가 정해졌다. 학창시절에 방송국, PD, 라디오, 신문 등의 명사가 내 생활기록부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신방과에 입학하고 나니 수업은 재밌었고, 친구들은 더 재밌었다. 대학교 OT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대가 없는 학교에서 가장 끼가 많은 친구들은 단연 신방과 동기들이었다. 친구들은 만나면 "어제 드라마 봤어?" "어제 그 라디오 들었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을 못/안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수준 높은 연극을 보러가는 수업을 듣고, 2학년 쯤에는 배우와 스태프를 겸임하며 연극 무대에 섰다. 뉴스도 공부했고, 방송도 공부했고, 디지털 미디어도 공부했고, 영화도 공부했다. 그렇게 시간이 무르익으며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 PD와 기자 말고도 할 수 있는 직업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그렇게 졸업 후 거의 8~10년이 흘렀다. 신문방송학이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친구들이 각기 걸어온 궤적은 이제 많이 달라졌다. 나 또한 의외로(?) 데이터와 숫자, 통계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저번의 글에서 이직을 하고 싶다고 썼는데, 결론적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5년 넘게 한 데이터와 통계 일을 기본으로 한, 언론 관련 일을 다루는 곳으로. 23년 스승의 날 시점으로 정식 오퍼 메일을 기다리는 중이고, 메일을 받으면 지금 회사에는 사직 의사를 밝힐 예정이다. 회사를 옮긴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다시 '신문방송학'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진실로 나를 설레게 한다. 아직까지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지난 몇 년 잊고 살았지?할 정도로. 


  지난 주말, 본가에 갈 일이 있어 맘 먹고 대학교 시절 공부했던 자료를 뒤적였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었는지를 톺아보며 이렇게까지 설레고 기대해도 되는지 나 자신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서였다. 친구들끼리 조를 짜 각자 맡은 부분을 번역하며 만들었던 <방송원론> 참고자료가 남아 있었고, <디지털미디어개론>, <매스컴효과론> 등의 강의안 등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영화라는 장르에 눈 뜨게 한, <세계영화사> 수업 때 제출한 paper들이 교수님의 정성스러운 코멘트와 함께 였다. 2010년 2학기에 강의를 들었으니 무려 13년만에 에 만난 활자들이었다. 100명 이상 수강했던 넓은 강의실의 왼쪽 뒤 쪽, 친구들과 멀찍이 떨어져 혼자 수업을 듣던 그 때의 나도 그대로 있었다(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닙니다).



"글 속에서 약간 에세이의 느낌이 나므로 조금 감정은 빼시고 오로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인과적 논리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글쓰기 방법이 될 것입니다."


"텍스트를 통해 증거를 대시면서 강하게 주장하십시오. 비평문 클리닉에 제시한 것을 꼭 참고하세요."


"이번 학기 페이퍼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따뜻한 겨울 되시길 바랍니다." (50점 만점에 50점을 받다니)


  내가 paper에 쓴 칼리가리나 독일 표현주의 사조, 파솔리니의 영화 등은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리포트 하나 하나에 남겨진 교수님의 정성스러운 코멘트를 읽으며 정말 너무나도 너무나도 마음이 충만해졌다. 교수님이 한 자 한 자 눌러쓰신 내용들.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떤 점은 좋았다는, 분명 글을 여러번 들춰보며 장단점을 찾았을 정성. 무엇보다 스물셋의 내가 <세계영화사> 수업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교수님의 코멘트로부터 받은 영향력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나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수업 이후 사람들이 왜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뼈저리게 알게 되어 그 어느 방학에는 매일 영화를 보는 기염을 토했고, 대학원 재학 때는 신촌 아트레온에서 조조 영화를 보고 수업을 가는 낭만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나의 영혼을 얼마나, 정말 얼마나 살찌우게 했는가-.



  

   본가에 가서 거둔 수확은 <세계영화사> paper를 찾았다는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21살 직업특강에서 내가 썼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 다섯 가지'가 이직을 앞둔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어렸을 때 이런 일을 하고 싶어했지? 그래서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니?
잘 모르고 방황하고 있다면 길잡이로 삼도록 해.
앞으로도 이런 일을 하려고 노력하자.


2008년 21살의 내가 2023년 36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


   또 일하다보면 실망하고, 지루하고, 화가 나고 - 할테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해 여기까지 왔는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세상은 <세계영화사> 코멘트처럼 친절하지 않겠지만, 그런 가혹함에 대항하기 위해 내가 아주 오랫동안 좋아한 것을 간직하리라, 배운 것을 써먹으리라, 또 배워가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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