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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Jun 18. 2023

평일에 쉬는데 번아웃이라뇨

5일간 백수로 살기

   퇴사를 했다. 전 회사에서 며칠 더 일할 수 있냐는 걸 단호히 거절하며 '이 상황에서 하루 이틀 더 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는 말을 던졌다. 나조차도 놀라운 말이었다. (대개 내가 이렇게 세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른 회사에 가기 전 5일간의 휴식이 겨우 생겼다. 


  6월 12일 월요일. 마음이 떠나 퇴사하였지만 옆 자리 신입분이 눈에 밟힌다. 그래도 나름 윗윗선배였기에 마지막 선물 느낌으로 마무리해야 할 보고서를 써주었다. 회사 일을 하며 보낸 하루.

  6월 13일 화요일. 아기가 갑자기 아프다. 그 전날부터 열이 나더니 아침까지 안 떨어지고 보챈다. 결국 가정보육이다. 하루 정도는 어린이집 안가고 같이 보내려했지만 너무 갑작스럽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컨디션은 계속 좋아 약 한 번에 열이 떨어져 오후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놀이방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아기가 행복해했다. 그거면 됐지.

  6월 14일 수요일. 그렇다. 이 이야기는 수요일에 느낀 감정에서 시작된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는데 왜 이러지


  5일간의 휴식이었다. 지난 2월의 안식휴가 2주도 있었지만 이사와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으로 정신없이 보냈기에 체감상 평일의 긴 온전한 휴식은 처음인 듯 했다. 햇수를 세어보니 대략 7년만이었다. (중간에 1년간의 출산 및 육아휴직도 있었지만 그게 휴식일까) 무엇보다 혼자 보낼 수 있는 자유시간이 생긴다는 점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혼자 어디를 가고, 혼자 무엇을 하고.


퇴사 기념 장거리 뛰기(한 20km?)

친구들과 전시 보러가기 (이미 예매 끝!)

남표니와 점심먹기

브런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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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월요일에 하고 싶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니 5개쯤 됐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장거리 뛰기를 실천하고자 했지만 일도 남았고, 게으른 마음에 내일?하며 미루고, 미뤄봤자 4일이나 있고! 다 괜찮았다. 수요일이 오기 전까진.


  그런데 수요일 아침이 되자,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우울이 몰려왔다. 눈을 뜬 순간부터 무기력했고 저 위 일정 중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안하며 그냥 놀 수 있는데도 왠지 슬펐다. 이 마음은 도대체 뭘까. 어디에서 오는걸까. 고민할 기력도 없었지만 그래도 쥐어짜듯, 이런 마음일 때 운동을 하면 나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달리기 복장으로 아기를 등원시키고 바로 뛰러갔다. 한 여름 오후가 되기 직전, 28도쯤의 땡볕이었다. 어차피 고생스러운 땡볕 달리기니 더 고생스러운 코스를 택했다. 오르막과 내리막, 계단까지 계속 이어지는 '파틀렉' 코스를 회전했다. 그렇게 5km쯤 뛰고, 계속 눈여겨본 그릭요거트집에 가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들은 더 많이 지나갔다. 나는 그때서야 슬픔과 우울에 앞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냥 쉬고 싶을 때는, 쉬자.


  7년만의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휴식이 반가우면서도 너무 반가웠던 탓인걸까. 태스크 주듯 뭘 해야겠다, 뭘 해야한다 스스로에게 주는 압박이 너무 버겁다··· 는 생각이 그릭요거트 몇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들기 시작했다. 사실 휴지기에도 갓생살 필요 없는데. 이런 쉬는 시기에에 뭘 안했다고 나에게 손가락질 할 사람 없는데. 왜 내가 나 스스로에게 '왜 안하고 있어?' 손가락질 하는 걸까?

  또. 내가 원했던 시기에 딱 알맞게 작별을 했건만 그래도 오래 다닌 회사이기에 석별의 아쉬움을 느낄 시간이 조금은 필요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입사할 때보다 매출은 100% 이상 늘고, 직원도 1.5배 가까이 늘었던 회사. 그만큼 누구는 반려묘, 누구는 반려견이 있고, 누구는 유연근무제 이용해서 대학원에 다니고, 누구는 이사를 했고 하는 시시콜콜한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 또한 (회사에는 마음 떠났어도)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했을 것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내가 좋아하는 불교 경전 문구 중 회자정리 거자필반이 있다. 회자정리는 거자필반보다 대구상 앞에 놓여있는데,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이 있다는 거자필반보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의미의 회자정리가 앞에 있는 이유는 그만큼 만남과 헤어짐이 더 자연스럽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래 기다려온 헤어짐이건만 언제나 작별은 어렵고, 나의 선택이더라도 작별은 부침이기에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하는거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22춘마 23동마 풀코스를 함께 한 뉴발 프레시폼도 보내줘야 할 시기. 왠지 시의적절한 듯하여 파틀렉 달리기 때 이걸 신었다.


아기 출산 후 처음으로 남표니와 단둘이 식사. 그럼 26개월만인가?


소중한 친구들과 전시 보러갔다. 하하호호 와! 웃으며 행복한 시간. 전시 또한 5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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