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고 있는 지식의 타당성을 검증하게 하는 학문
돌고 돌아 또
철학이다. 정치 철학, 경제학, 법(철학), 언론학, 예술사, 종교학, 문화학, 교육학, 심리학, (우주) 물리학, 화학이나 생물학, 뇌과학, 인공지능 등은 결국 각각의 분야와 그 분야에서 일이 일어나는 작동 원리나 방식, 그리고 그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 그리고 그 일들이 어떤 방향으로 설정돼야 하는지를 다룬다.
그러니 각 학문은
우리 삶의 특정 부분만을 다룬다. 전체가 아닌 부분의 지식과 진실만을 담는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사회에서 돈만 벌고 산다면, 모든 것을 경제학이나 경영학만 공부하고, 그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만 살면 될 거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답을 경제 관련 지식이나 전문가에게서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돈과 경제하고만 관계가 있나?
우린 경제생활도 하지만,
정치, 문화, 교육, 언론, 종교, 예술, 자연•응용과학, 기술 등의 분야에 조금씩 다 참여하며, 제 분야와 일정 부분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철학 즉,
각 분야의 지식을 종합하고, 그 분야가 말하는 삶의 측면 일부를 인식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과 또 그것을 융합하는 지적인 혹은 사고의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분야와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종합해 사회와 삶 전체, 그리고 나를 온전히 파악하게 하는 생각의, 인식의, 판단의 기술이 필요하다.
지식과 여러 오류, 그리고 인식의 여러 편향(bias)을 걸러내는 일, 그리고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종합해 내 삶과 사회에 적합하게 적용하는 것은 철학적 사고를 통해 가능하고, 더 정교해질 수 있다.
모든 분야의 지식과 사실을
융합함과 동시에 일부의 진실과 거짓을 걸러내 세계와 나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철학이, 그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 철학으로!
철학이 인식해서 파악하는 사고의 기술을 연마해 주는 학문이니까.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 만을, 그 분야도 한 측면만을 말하고, 일부의 원인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 혹은 사태 전체를 일으켰다고 호도할 때, 철학하는 사람 만이, 그리고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보고,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기만당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다시 또
철학이다. 물론, 각 분야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노력도 함께.
제너럴리스트(a generalist)든 폴리매스(a polymath)든, 그 누구에게도 철학적 사고 훈련이 제 분야를 연구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난 아래 책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철학 혹은 철학적 사고가 내가 흡수하는 지식을 걸러주는 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늘 생각했었다. 그러다 독일 본 대학 철학 교수인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저서들을 읽게 되면서, 인식의 체 역할은 역시 철학이구나란 생각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이 글의 작성자
엄윤진
대안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생각공장
정치 철학서인 <거짓 자유>(갈무리, 2019)와 실존주의 관련 책 <좋아서 하는 사람, 좋아 보여서 하는 사람>(도서출판 흔, 2021)을 썼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필진(문화평론가 2023~).
나 엄윤진은 개인의 고유성과 공동체란 가치 둘 다를 중시하는 자유 사회주의자(a liberal socialist)다. 헤겔이 말한 역사의 목적인 모든 이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