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세 번째 롤에는 내게 익숙한 장소는 담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많지 않은 장소를 찾게 됐다. 지겨운 출퇴근길 지하철, 사람들로 꽉 찬 점심시간 음식점까지.
내가 마주하는 일상은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루도 편하게 멍 때릴 곳 없는 일상이 날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교외로 많이 나가게 됐다. 우리나라를 돌면서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갈증을 해소했다. 그럴 때 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 해외에 나가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밖을 나가면 더 새롭고, 설레는 감정이 가득해질까.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앞으로도 많은 곳을 필름에 담고 싶다.
종로구 익선동 골목. 최근 독특한 동네 분위기와 음식점 등으로 인기가 많아지는 장소란다.
익선동은 1920년대 개량 한옥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다. 돌아보니 여전히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도 많아 보였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동네인 만큼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많다. 벽에 기대어 잠시 쉬다가 고개를 돌리니 스티커가 겹겹이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처음 저곳에 붙은 스티커는 무엇이었을까.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 빌딩숲 속에서 2차선 도로만 건너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곳.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개발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건 우려스러운 점. 한옥이 가득한 이 동네가 국적불명의 음식점에 훼손되지 않길...
현재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아닌 듯 했다. 현관문에 걸린 자물쇠도 꽤 오래되어 보였다. 세월을 품으면 모든 것들은 세월을 품으면서 각자의 느낌을 극대화하는 것 같다. 이곳도 곧 상업공간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을까. 동네와 잘 어울리는 곳으로 다시 태어나길.
나는 어린 시절 장난감이 거의 없었다. 형은 레고를 갖고 이것저것 만들면서 놀았지만, 나는 장난감에 욕심도 없었고 즐기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미니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니카를 갖고 있지 않았고, 사달라는 말도 안했었다.
하루는 집 앞에서 친구를 만나 놀러가는 길에 베란다에서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인아! 미니카 사줄게!"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바로 뒤돌아 친구에게 뛰어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 날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니 울컥했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갖고 노는 장난감을 아들만 갖고 있지 않으니 미안한 마음이 크셨던 것 같다. 정작 나는 별생각 없었는데.
용산역에서 만난 초대형 건담을 보니, 장난감 가게에서 부모님을 조르는 아이들을 보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카메라를 들었다.
기차. 단어만으로도 낭만이 느껴진다. 기차를 타면 멀지 않은 곳을 가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이 기차는 ITX청춘 열차. 쉽게 말해 경춘선 기차.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다. 이름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춘천하면 청춘과 낭만이 떠오르는데...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이름 뿐만 아니라 이 기차로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가평, 강촌, 춘천까지 갈 수 있는.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기차이기 때문이다.
마침 사진을 찍을 당시 강촌역 인근을 달리고 있었네. 대학생 때 많이 갔었는데.
"기차를 타면 무조건 바나나우유를 마셔야지!"
이렇게 외치며 바나나우유를 두 개 구입해 기차에 올랐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가면 컨피던스와 맥반석 달걀을 먹고, 기차를 타면 바나나우유와 삶은 달걀을 먹었다. 늘 같은 메뉴를 먹었지만 한 번도 질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음식 궁합은 요리의 상성도 있지만, 이처럼 특별한 상황에 먹는 것이 더 좋은가보다.
사실 나이먹고는 기차에서 주로 맥주를 마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옛 김유정역.
현재 운영되고 있는 김유정역은 이 모습이 아니다. 현대화 작업을 마치고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옛 김유정역에 눈이 간 이유는 '보존'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은 365일 공사 중'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공사판은 익숙한 풍경이다. 이는 도시의 풍경이 금방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 새로운 건물 전에 있던 건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면 그 이전의 것들은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인지. 문화재 만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도 곧 역사이고, 미래를 보는 창이 될 수 있다.
옛 김유정역을 보면서 옛 건물을 남겨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 공간의 품격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뭐 딱 보면 알겠지만. 멋있다.
김유정역 근처에 있는 조형물. 잘 꾸며져 있네. 멋지고.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 있다고 생각했다.
'기차는 기다림.'
김유정역을 오면서 기차에 대한 수많은 연관어들을 알게 됐다. 역시 사람은 많이 돌아다녀 봐야 한다.
김유정역 레일바이크에 있는 조형물. 혼자 있으면 안 외롭니.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즐겨하더라. 그래서 안 외롭나보구나.
덕평휴게소 인기 메뉴 소머리국밥.
최근 기사로 접했던 메뉴이기도 하다. 2015년에 덕평휴게소에서 이 국밥만 35만7000그릇을 팔았다지.
덕평휴게소는 이 기사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았다. 계산대 옆에 큼지막하게 '최고 인기 메뉴', '35만 그릇 팔린 메뉴' 라는 식으로 홍보하니 소머리국밥을 고를 수 밖에.
그래서 음식 준비도 정말 빠르다.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왔다. 이것이 진정 패스트푸드인가 싶었다.
맛은 평범했다. 익숙한 그 맛. 언젠가 용인 민속촌 장터에서 먹은 소고기국밥과 맛이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국밥이 주는 따뜻함은 일품이었다. 또 휴게소라는 공간과 국밥의 조화는 생각 보다 좋았다.
충북 진천군에 있는 진천막국수. 친구의 추천으로 이 곳에 들렸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내가 먹어본 막국수 중 최고였다. 메밀새싹이 올려져 있어 식감이 아삭아삭하고 면은 쫄깃하다. 국물도 자극적이지 않고 개운해 입맛에 딱 맞았다.
춘천, 인제 등을 다니면서 막국수를 많이 먹어봤는데, 그럴 때마다 실망이 커서 더 이상 막국수를 먹지 않겠노라 선언했지만 이 막국수로 생각이 싹 바뀌었다.
다음에 꼭 한번 찾아오고 싶은 집.
나를 진천막국수집으로 안내한 친구. 웃는 모습이 유쾌하다.
이 친구는 성실하고 참 착한 친구다. 내 주위에 몇 없는 그런 스타일의 친구. 농담도 잘하는 편이라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엄청 깔끔떠는 것만 빼면 뭐... 오래 보자.
캐논 AE-1 / Fuji Color C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