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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Feb 29. 2016

세 번째 롤

여행

세 번째 롤에는 내게 익숙한 장소는 담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많지 않은 장소를 찾게 됐다. 지겨운 출퇴근길 지하철, 사람들로 꽉 찬 점심시간 음식점까지.

내가 마주하는 일상은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루도 편하게 멍 때릴 곳 없는 일상이 날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교외로 많이 나가게 됐다. 우리나라를 돌면서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갈증을 해소했다. 그럴 때 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 해외에 나가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밖을 나가면 더 새롭고, 설레는 감정이 가득해질까.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앞으로도 많은 곳을 필름에 담고 싶다.


1. 서울 골목

종로구 익선동 골목. 최근 독특한 동네 분위기와 음식점 등으로 인기가 많아지는 장소란다.

익선동은 1920년대 개량 한옥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다. 돌아보니 여전히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도 많아 보였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동네인 만큼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많다. 벽에 기대어 잠시 쉬다가 고개를  돌리니 스티커가 겹겹이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처음 저곳에 붙은 스티커는 무엇이었을까.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 빌딩숲 속에서 2차선 도로만 건너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곳.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개발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건 우려스러운 점. 한옥이 가득한 이 동네가 국적불명의 음식점에 훼손되지 않길...


2. 세월을 품은 한옥

현재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아닌 듯 했다. 현관문에 걸린 자물쇠도 꽤 오래되어 보였다. 세월을 품으면 모든 것들은 세월을 품으면서 각자의 느낌을 극대화하는 것 같다. 이곳도 곧 상업공간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을까. 동네와 잘 어울리는 곳으로 다시 태어나길.


3. 용산에서 만난 건담

나는 어린 시절 장난감이 거의 없었다. 형은 레고를 갖고 이것저것 만들면서 놀았지만, 나는 장난감에 욕심도 없었고 즐기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미니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니카를 갖고 있지 않았고, 사달라는 말도 안했었다.

하루는 집 앞에서 친구를 만나 놀러가는 길에 베란다에서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인아! 미니카 사줄게!"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바로 뒤돌아 친구에게 뛰어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 날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니 울컥했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갖고 노는 장난감을 아들만 갖고 있지 않으니 미안한 마음이 크셨던 것 같다. 정작 나는 별생각 없었는데.

용산역에서 만난 초대형 건담을 보니, 장난감 가게에서 부모님을 조르는 아이들을 보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카메라를 들었다.


4. ITX 청춘열차

기차. 단어만으로도 낭만이 느껴진다. 기차를 타면 멀지 않은 곳을 가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이 기차는 ITX청춘 열차. 쉽게 말해 경춘선 기차.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다. 이름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춘천하면 청춘과 낭만이 떠오르는데...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이름 뿐만 아니라 이 기차로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가평, 강촌, 춘천까지 갈 수 있는.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기차이기 때문이다.

마침 사진을 찍을 당시 강촌역 인근을 달리고 있었네. 대학생 때 많이 갔었는데.


5. 기차, 그리고 나

"기차를 타면 무조건 바나나우유를 마셔야지!"

이렇게 외치며 바나나우유를 두 개 구입해 기차에 올랐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가면 컨피던스와 맥반석 달걀을 먹고, 기차를 타면 바나나우유와 삶은 달걀을 먹었다. 늘 같은 메뉴를 먹었지만 한 번도 질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음식 궁합은 요리의 상성도 있지만, 이처럼 특별한 상황에 먹는 것이 더 좋은가보다.

사실 나이먹고는 기차에서 주로 맥주를 마다.


6. 옛 김유정역

가장 인상 깊었던 옛 김유정역.

현재 운영되고 있는 김유정역은 이 모습이 아니다. 현대화 작업을 마치고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로 변했다. 그럼에도 옛 김유정역에 눈이 간 이유는 '보존'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은 365일 공사 중'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공사판은 익숙한 풍경이다. 이는 도시의 풍경이 금방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 새로운 건물 전에 있던 건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면 그 이전의 것들은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인지. 문화재 만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도 곧 역사이고, 미래를 보는 창이 될 수 있다.

옛 김유정역을 보면서 옛 건물을 남겨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공간의 품격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뭐 딱 보면 알겠지만. 멋있다.


7. 기차는 곧 기다림

김유정역 근처에 있는 조형물. 잘 꾸며져 있네. 멋지고.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 있다고 생각했다.

'기차는 기다림.'

김유정역을 오면서 기차에 대한 수많은 연관어들을 알게 됐다. 역시 사람은 많이 돌아다녀 봐야 한다.



8. 춘천의 한 소년

김유정역 레일바이크에 있는 조형물. 혼자 있으면 안 외롭니.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즐겨하더라. 그래서 안 외롭나보구나.


9. 휴게소 소고기 국밥

덕평휴게소 인기 메뉴 소머리국밥.

최근 기사로 접했던 메뉴이기도 하다. 2015년에 덕평휴게소에서 이 국밥만 35만7000그릇을 팔았다지.

덕평휴게소는 이 기사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았다. 계산대 옆에 큼지막하게 '최고 인기 메뉴', '35만 그릇 팔린 메뉴' 라는 식으로 홍보하니 소머리국밥을 고를 수 밖에.

그래서 음식 준비도 정말 빠르다.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왔다. 이것이 진정 패스트푸드인가 싶었다.

맛은 평범했다. 익숙한 그 맛. 언젠가 용인 민속촌 장터에서 먹은 소고기국밥 맛이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국밥이 주는 따뜻함은 일품이었다. 또 휴게소라는 공간과 국밥의 조화는 생각 보다 좋았다.


10. 막국수

충북 진천군에 있는 진천막국수. 친구의 추천으로 이 곳에 들렸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내가 먹어본 막국수 중 최고였다. 메밀새싹이 올려져 있어 식감이 아삭아삭하고 면은 쫄깃하다. 국물도 자극적이지 않고 개운해 입맛에 딱 맞았다.

춘천, 인제 등을 다니면서 막국수를 많이 먹어봤는데, 그럴 때마다 실망이 커서 더 이상 막국수를 먹지 않겠노라 선언했지만 이 막국수로 생각이 싹 바뀌었다.

다음에 꼭 한번 찾아오고 싶은 집.

 

11. 오랜 친구

나를 진천막국수집으로 안내한 친구. 웃는 모습이 유쾌하다.

이 친구는 성실하고 참 착한 친구다. 내 주위에 몇 없는 그런 스타일의 친구. 농담도 잘하는 편이라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엄청 깔끔떠는 것만 빼면 뭐... 오래 보자.


캐논 AE-1 / Fuji Color C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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