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우리 견적 and 고객 예산
미팅을 하다 보면 가끔 귀에 쏙 들어오는 한 문장, 한단어가 있다. 얼마 전에는 데이터 컨설팅을 하시는 실무 담당자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했다
“데이터는 경험재이기 때문에 보고 나서야 가치를 아실 거예요 “
돈이 되지 않는 데이터는 가치가 없다는 둥, 데이터가 석유보다 귀하다는 둥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데이터와 관련한 이야기들은 많이 들었지만, 데이터가 경험 재라는 표현이 새로웠다.
데이터의 적정가격에 대해 고민이 많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최종적으로 데이터 가격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데이터 공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데이터상품 가격은 천만 원입니다’ 정하는 데 있기보다, 데이터 자체의 가치를 일으키는 데 있다. 가격을 정하기는 상대적으로 쉽고 가치를 일으킨다는 건 추상적이다. 데이터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데이터를 잘 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고 데이터 가치를 모르는 자들에겐 수요 자체를 불러일으켜 줘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데이터의 적정 가격’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데이터를 거래할 때 내가 받고 싶은 가격이 있고, 고객이 내고 싶은 금액이 있는데, 두 금액이 만나는 지점이 가격이 됩니다”
(적고 보니 이 무슨 뻔한 말인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데이터 적정가격을 내부적으로 정해두는 것이, 실제 거래 시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데이터 가격체계는 분명 필요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격 체계를 현실화해야 되고, 서비스 유형별로 다양하게 설계를 해야 되고, 그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지만 우리가 내부적으로 투여한 금액, 들어가는 인건비 등으로 산정한 이 가격체계가 시장에서 통용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우리가 정한 금액대로만 팔고, 그 외에는 공급을 안 한다는 강력한 방침이 있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인바운드로 들어온 계약들을 아주 최소한의 인력으로 유지만 한다는 사업의 방향이 명확할 때 가능한 게 아닐까? 작은 계약에도 다양한 사연과 사정이 있다, 오히려 작은 계약들에 더 복잡한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시장에서 가장 낮은 금액으로 상품을 공급한다면 못 파는 게 이상할 것이다. 우리는 높은 가격에 상품을 팔고 싶고, 고객은 반대로 낮은 가격이 사고 싶을 텐데, 어디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데이터 사업을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고객이 지불가능한 최대 금액에 가장 가까운’ 금액으로 공급을 할 수 있으면 베스트다. 고객과의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고객이 지불가능한 최대 금액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여기서는 더 밀릴 수 없다는 마지노선이 필요하다. ‘이 금액 이하로는 공급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다. 어느 선에 선가는 끊고 가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듯이 모든 고객을 다 잡을 수도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역마진이 아니니까 그냥 하고 싶은, 껄끄러운 대화를 나누느니 그냥 줘버리고 싶은 마음이 늘 한편에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격이 떨어지는 상품에 고객은 매력을 쉬이 잃고, 가격을 맞춰졌다는 고마운 마음도 금방 휘발된다.
데이터 사업을 하면서 계약 체결까지 많은 단계를 거친다. 데이터를 소개하고, 어떤 상품이 있는지 설명하고, 어떤 필요가 있는지 듣고, 수요와 맞춘 데이터를 다시 설명하고, 데이터 요건을 정의하고 그다음에 중요한 부분이 견적을 내는 부분인데, 돈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돈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 격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돈 이야기가 제일 중요한 거 같은데? 돈 벌려고 데이터 사업하는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