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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랑 동동 Sep 14. 2020

엄마도 퍼스널 브랜드가 필요해

"동동이 차례"

"네"

"동동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들어보자"


짙은 초록색 칠판에 등이 닿을락 말락 기대선 문학 선생님이

아이들의 시선을 나에게로 유도했다.


"저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건 잘 할거 같은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건 없어?"

"저는 현모양처가 되고 싶어요."


시골 읍내 유일한 여고 문학교실은 일순 조용해졌다.

저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서른아홉 개의 입술이

바닷물을 벗어난 조각지 처럼 꽉 다물렸다.


국회의원, 과학자, 교사가 꿈인

공부 좀 하는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그저 엄마가 되고 싶다던 내 꿈은

꿈이 아닌 것으로 들렸던 걸까?

나는 진심으로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어

편안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게 가장 크고 힘든 일처럼 느껴질 만큼

우리 집은 늘 폭풍의 언덕처럼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작고 소박한 꿈을

마치 가장 이루기 힘든 일 마냥 말하는 열아홉 살.

여리고 지친 아이를 위로라도 하듯

작은 시골 학교 유일한 여고의 졸업식날

나는 현모양처를 대표하는 신사임당상을 받았다.


10년이 지나 한 남자를 만났다

내 손은 오랫동안 아토피를 앓고 있었다.

병증으로 삭은 손은

맨손 농사를 30년쯤 지은 시골 할머니 손과 닮아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가 두 번째 만난 날 양손으로 치료하듯

나의 거친 손을 감싸 준 남자였다.

세 번째 만난 날부터는 손을 낫게 해 주겠다며

천연 보습제를 가져와 알람이라도 맞춰 둔 듯

시간 단위로 로션을 챙겨 발라주던 남자였다.

내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한 듯

그이는 거친 내 손을 치료하고 말겠다는

의사의 마음으로 내 손을 보살펴 주었다.


그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어렵게 귀하게 오래 기다려 아이를 낳았다.

나는 간간히 백만 원 미만 돈을 벌어오며

부업을 하기도 했고

최근 3년간 워킹맘이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한 많은 날들을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결혼 11주년을 맞이하는 12월 31일 밤.

아이가 나비잠을 자는 사이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았다.

한 때 내게 무면허 의사였던

남보다 조금 더 가까운 이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내년에 이루고 싶은 꿈이 뭐야?"

반쯤 몸을 앞으로 구부려

오랜만에 삶아 빤 속옷을 개던 나는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같이 앉아 파란색 타월을 개던 신랑이

재차 물었다.


"왜 말이 없어?"


앞뒤로 진자 운동을 하듯

빨래를 개던 몸을 멈춰 세우고 대답했다.


"나는 여보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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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나는 지금 퍼스널 브랜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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