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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Oct 03. 2022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

삶 #12.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1. 상대방에 대한 이해, 나에 대한 이해


평소 눈치가 빠르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뉘앙스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금세 해석이 되는 편이다. 눈치가 빠르면 살다 보면 편한 점이 많다. 이 상황에서는 이런 말을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말하면 상황이 더 커지겠구나 하는 촉이 잘 와서 갈등을 잘 회피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집단 내에서 갈등이 생기면 내가 중재를 하게 되는 편이다. A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B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그러다 보니 A한테는 B는 요런 것 아니었을까? 하면서 에둘러 전달하고, B한테는 A는 요런게 속상했나봐 하면서 달래는 식으로 중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괜히 중간에 껴서 오지랖을 부리는 걸수도 있기는 하지만, 둘 다 맞는 것 같은데 어떡해? 서로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해가 간다.


하나 더. 나는 장난기가 어릴 적부터 정말 많은 편이었다. 하루 종일 장난 칠, 드립 칠 각만 노린다. 엄마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항상 너는 말썽으로는 동네의 전설이었다. 지나가다 다른 학부모가 아, 주동이 어머니세요? 하고 슬쩍 보고 가더라는. 맨날 장난치고 사고치고 싸우고. 마치 야 내가 너 키우느라 이렇게나 고생했다 하는, 난이도 최상의 애를 키우는 퀘스트를 해결했다는 과시로 들리기도 한다. 나같은 자식 키워보라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으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부모님이 학교로 불려 오셨으니까. 니가 이모 생일에 대야에 식혀둔 소고기미역국에 들어가 첨벙첨벙 발장구를 쳤다든가, 제주도 내려가는 비행기에서 고래고래 떴다떴다 비행기를 불렀다든가, 뭐 그런 구전설화들의 수많은 레파토리가 정해져 있다. 지금이야 장난쳐서 부모님이 회사에 불려 오는 불상사는 없기는 하지만, 그 장난기가 내가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많은 대화를 하고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어떤 드립이 웃길지, 뭘로 놀리면 더 타격감이 있을지 아주 잘 안다. 언제나 드립칠 각만 보고 있는다.


또, 살다 보니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자의 위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위로와 조언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에 대한 고민이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든, 직장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든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심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고, 근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도움이 되더라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해결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집에 오고 나면 가끔 주제넘은 조언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상대방의 상황을 내 상황에 끼워 맞춰 해석한 것일 뿐 아닐까. 과연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을까?


2.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 진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볼펜을 이리저리 돌릴 때 미주는 자신이 진희를 안다고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 196pg, 고백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은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은, 5번째로 수록된 작품인 '고백'에서 미주가 예민하고 섬세한 친구였던 진희에 대해 정의한 단어이다. 미주와 진희, 주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 만나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가 된다. 미주에게 진희는 자기 감정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해서, 마음이 편하다면 내가 불편해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감정을 숨기는, 어떻게 보면 배려 깊은 친구였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미주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어주는 친구. 반면 주나는 직설적이고 조금은 거칠게 행동하지만, 언제나 미주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주나는 추운 바들바들 떠는 미주에게 '난 추위 안 타니까'라며 자기 목도리를 목에 매어주는 온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셋이었다고 미주는 기억한다. 2학년이 되고 반이 달라지며 주나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자 미주와 진희가 장난스레 걔네냐고, 우리냐고 묻자, 주나는 "너흰 그냥이 아니야. 그냥 친군 아니잖아, 우리가."라고 답한다. 진희가 말한다. "그냥 친구가 필요해서 만나는 아니잖아. 우린 서로 정말 좋아하는 사이잖아."


열여덟번째 생일에 진희는 주나와 미주에게 오래간 마음에 담아둔 고백을 한다. 이런 말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너희는 이해해주리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며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백한다. 하지만 미주와 주나는 진희의 용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주나는 역겹다며 자리를 뜨고, 미주는 진희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리 없다고, 자신에 대해 잘못 판단했으리라고 생각하며 근데 너 그 말 정말이냐고 묻는다. 다음 날, 진희는 유서를 남기지 않고 떠난다.


시간을 되돌려 어느 한 순간으로 갈 수 있다면, 그때로 가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나는 너의 편이라고 말할 거라고, 너를 그렇게 외롭고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때의 미주는 더듬거리다 끝내 아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수년이 지나서야, 진희가 받았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얼마나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을 했을지, 그때 자신과 주나가 했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짓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둘만 남게 된 주나와 미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다.


수년 뒤 주나와 미주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친구로 지내지만, 진희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관계를 계속할 수 있는 계약인 것처럼. 그리고 진희에 대해 마침내 얘기하게 된 날, 진희의 죽음이 서로의 탓이라며, 할 수 있는 가장 모진 말을 서로에게 퍼붓고 갈라선다. 그날 미주는 깨닫는다. 미주는 눈빛으로 주나가 진희에게 했던 말보다 더 가혹한 말을 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은 진희의 고통에 대해 철저히 무지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다. 진희의 고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진희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안도한 미주의 진희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와 무딘 눈빛이 진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3. 인간에 대한 쉬운 이해

...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도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 324pg, 작가의 말


밤이 어두워지면, 눈치가 빠르다는, 장난기가 많다는, 고민을 잘 들어준다는 듣기 좋은 말이 나에게 비수로 돌아온다. 그런 말들에 숨어 내가 무디게 했던 말들은 없었을까? 나는 눈치가 빨라, 라는 말로 상대방의 상황을 지레짐작한 것은 아닐까? 장난기가 많아서, 친해서 웃자고 하는 소리로 사람들 앞에서 상대방을 민망하게 하고 상처 준 행동은 없었을까? 고민을 상담해준답시고 내 상황에 빗대어 단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상대방을 잘 안다고 생각해서 말했던 말들이,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와 무관심에서 온 말은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날, 그런 밤이면 친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지 두려워진다.


인간은 외롭다. 상대방으로부터 이해를 받고자 한다. 사랑하는 인간에게는 더더욱. 그만큼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한다. 너는 이래서 그렇구나, 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이제 좀 알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내가 하는 행동에 어떤 반응을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이해에서 오는 대체할 수 없는 애정과 따뜻함에 취한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서로 다른 말로 대화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모래사장 위에서, 잃어버린 작은 퍼즐조각을 찾아 단단히 맞췄다는 뿌듯함이 든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퍼즐이 아니다. 관계의 균열은 상대방에 대해 진정 이해했다고 안도하는 순간에 온다. 인간의 마음은 퍼즐조각처럼 움푹 패이고 튀어나온 서너가지 패턴으로 생긴 것이 아니어서, 서로 맞대었을 때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그저 원에 가깝다, 네모에 가깝다, 별 모양에 가깝다 추측하여 맞닿아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서 자신의 렌즈로 상대방을 해석한다. 나도 이랬으니, 너도 이럴 거야. 너는 저번에 이랬으니, 이번에도 이럴 거야 하고 내 기준으로 지레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여부는 사전적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는 데에 그 지레짐작의 위험이 있다. 이미 무딘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서야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무지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네가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는 느슨한 이해 이상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닐까. 다른 마음에 대한 몰이해 앞에 겸허해지고 싶다.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함부로 웃지 않고,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일정 거리를 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곁을 내주는 배려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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