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듯이 사랑하는 것
삶 #13-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1. 인간에 대한 범주화
지난 글 <Nothing Matters, 그러나>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물고기, 즉 자신에 대해 스스로 세운 편견과 고정관념으로서의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삶을 해석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범주화하고 정의한 것은 그 대상의 본질을 모조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혼돈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해석하는 우리의 시야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편협하며, 스스로를 짓는 자유를 누리고 자신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기 스스로 정의한 언어들로부터 자유로워야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관계와 사랑에서도 우리는 물고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고기로 본다면. 그러니까, 너는 이런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의 틀에 한 인간을 끼워 맞춘다면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을 범주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위험성이다.
2. 인간의 보편성과 고유성에 대한 이해
인간을 물고기로 대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의 보편성과 고유성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비슷하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 다르다. 인간과 삶에 대한 90%의 진실은 보편성에 있다. 우리는 모두 눈 떠보니 한국에 태어났고, 대충 팔구십년정도 학업, 취직, 사랑, 결혼, 죽음, 그런 흔한 행복과 고통을 겪는다. 우린 모두 어느 여름날 스크류바를 먹으며 선풍기 앞에 땀을 흘렸고, 함박눈이 내린 하루는 쌓인 눈을 밟으며 길을 걷는 촉감과 청각을 기억한다. 행복을 위한 어느 정도의 보편적인 진실은 그런 순간들 사이에 숨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삶에 대한 나머지 10%의 진실은 모든 인간은 고유하다는 것에 있다. "사람들이 보통 그러니까" 이렇고 저렇다고 하는 말은 그 범주로서 인간을 묶는 족쇄이고 개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MZ세대는 보통 싸가지가 없고, 남자들은 보통 잘 안 울고, 여자들은 보통 섬세하고,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게되고, 사랑하면 연락을 보통 잘하고, 책 읽는 사람은 보통 어떻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 어떻고.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런 말들은 인간을 일종의 물고기로서, 범주화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틀에 가두는 것이다. 인간을 가두는 이런 평균과 분류가 적당히 맞을 수는 있다. 90%의 확률로는. 하지만 사람은 정말 다 다르니까, 필연적으로 10%의 오차를 가진다. 심지어 그 범주화의 대상이 나라도,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또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다는 관념과 분류에 인간을 지나치게 끼워 맞추게 된다면 그 오차가 나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범주화의 능력은 처참할 정도로 한심하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심지어는 나에 대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3. 결
그러니 인간의 '결'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씩 지니고 있는 우주와 혼돈에 대한 겸허함과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을 해석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범주들은 인간을 비스무레하게 모사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범주화는 언제나 오차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설령 아무리 가깝고 잘 아는 사람일지라도 그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겸허함을 종종 잊곤 한다.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어떤 물고기로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을 외롭게 한다. 그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을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이니까. 나 역시 상대방의 본질을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바라는 상대방의 모습을 투영하곤 한다. 그러고는 거기에 맞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맘대로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일까.
인간의 결이라는 것은 총체적인 것이다. 그 인간의 가치관, 취향, 지식, 경험, 어떤 하나의 단어만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그 무언가다. 그 인간이 평생동안 느껴온 것의 누적, 평생동안 사랑해 온 것의 누적, 평생동안 아파해온 것의 누적. 그 고유한 10%.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존재함만은 알 수 있는, 어쩌면 그 인간의 본질.
4. 사랑의 재료, 이해.
사랑이란 그러한 결에 대한 이해에서 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인간의 결을 온전히 이해한다면, 같은 결을 느낀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상대방 역시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애쓰지 않아도 나로부터 스며나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 인간을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멀리서는 완전한 원형인 것으로 보이는 달처럼 단단하고 온전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견고한 껍질 사이 수많은 틈으로 갈라져 있다. 그 수많은 틈들이 그 인간의 결을 이루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틈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만 보이는 그 틈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틈 사이로 정말 조금 드러나는 그 인간의 본질을 아는 것이고, 나에게 존재하는 불완전함, 그 틈에서 스며나오는 애정으로 상대방의 틈을 메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불완전함으로써 서로가 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온전하고 싶기에 자신의 틈을 틀어막는다면, 스스로에 대한 물고기에 갇혀 있다면, 서로의 결을 느낄 수는 없다. 그것 자체가 외로운 일이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이란 그저 흘러나오듯이 애정을 나누는 것이다. 나의 틈이 아닌 상대방의 틈을 메우는 것이다. 서로의 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이란 그 대상을 완전히 아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너무도 자유로운 것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물 흐르듯이 꾸미지 않아도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바다 깊은 곳 해류를, 그 물결을 느끼며 매일을 보내는 물고기들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