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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Dec 17. 2023

사랑받고 싶던 사람이 선택하는 차선은 사랑하기이다.

삶 #20. 공룡의 이동경로 &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지난 글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세우는 내 마음속의 흐린 벽이 사람에 대한 신뢰의 부재에서 온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신뢰의 부재는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과 좋은 사람이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불안에서 온다. 그리고 이런 유기공포와 불안은 누군가에게는 벽을 세우고 마음을 주지 않거나, 그 막에 들어온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많은 마음을 주도록 나를 몰아간다.


1. 기대와 과도한 낭만화

...우리는 낭만적 사랑에 관한 환상을 끊임없이 보고 듣습니다. 이런 환상은 낭만적 파트너만이 우리에게 안전과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죠... 물론 친밀한 관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함께하는 행복은 우선 자기 자신과 친밀해지고 나서, 진짜 애정 어린 관계란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이해한 다음에야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껏 반대로 배웠죠. 키스로 다시 살아나는 디즈니 공주부터 시작해서 여주인공이 하나뿐인 운명적 사랑을 찾는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사회는 우리에게 이 두렵고 외로운 삶에서 낭만적 관계가 어떻게든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결혼이란 최고의 헌신이자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가르칩니다...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충족감을 주는 경험이 될 수 있지요. 문제는 사회가 결혼을 궁극적 목표 또는 해결책으로 여기며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법적 계약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외주를 맡겨 안정감을 찾으려는 태도는 스스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탄탄한 기반을 쌓아 가는 노력을 되레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곤 하죠. -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제시카 바움


나에게 사랑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이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직업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이를 나눌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의 곁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 이상으로 행복에서 중요한 부분은 분명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나의 삶의 우선순위로 인해 사랑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이다.


"키스로 다시 살아나는 디즈니 공주부터 시작해서 여주인공이 하나뿐인 운명적 사랑을 찾는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사회는 우리에게 이 두렵고 외로운 삶에서 낭만적 관계가 어떻게든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가르쳤습니다." 마치 내가 너를 만나면 나의 모든 문제와 모든 외로움과 모든 불안 다 해소될 거야. 그런 사람을 찾아야만 해, 이런 식의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 연애에서 나는 종종 상대방을 너무 크게 키우고 나는 너무 작게 낮추었다. 물론 사랑하게 되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나아가서 기본적으로 나는 사랑은 희생에 기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내가 섭섭하더라도 참는 것을 넘어 그것을 느끼지 않으려 눌러두었던 것 같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렇게 조금씩 서운함을 눌러두다가, 참을 수 없을때 서운함을 토로하기보다는 조금씩 마음을 떼어가는 식의 패턴을 종종 보였다. 연애에서 만나며 맞춰가는 것이 중요한걸 알긴 아니까, 내가 느끼는 불만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돌려서, 좋은 말로 이야기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심각함을 정확히 느낄 정도로 강한 표현을 한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화를 낸다거나, 짜증을 내는 일도 당연히 없었다. 그렇게 화를 내서, 상대방이 맞춘다고 하자. 그게 의미가 있는 걸까? 애초에 이 사람이 나와 맞는 사람인 걸까?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모든 멀어짐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뒤에 숨어있는 내 마음의 작동방식을 들여다보고 싶다.


2. 화성인의 사랑

사랑하면 잘 보이고 싶은 건 당연하다. 예쁜 옷을 입고 잘보이고 싶고, 잘해주고 싶고, 데이트하는 날 거울에 보이는 뾰루지 하나에 내내 신경쓰이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 관계를 지나치게 낭만화하는데 이른다면 (평생 단 하나 뿐인 사랑... 이 사람 아니면 나는 정말 안돼... 나의 모든걸 바치겠어... 나를,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서로 밖에 없어...)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 말을 검열하거나 눈치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스스로 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행동이라도, 정도가 과해지면 그것이 언젠가는 서운함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서운함. 서운함은 종종 폭력적인 감정이다. 서운함은 기대에서 온다. 상대방이 어떻게 해주면 좋겠다는. 이 관계가 어땠으면 좋겠다는. 하지만 상대방이 이러한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할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운함은 마음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구분하자. 상대방이 정말 잘못을 했을 때 느끼는 서운함과 상대방이 정말 뭘 잘못했다기보다는 내 기대와 다른 행동을 했을때 느끼는 서운함은 다르다. 나는 후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의 서운함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낭만적 사랑의 관념에 상대방이 미치지 못할 때 느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상대방을 묶어놓고, 이리저리 상대방을 재단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운함이 종종 폭력적인 감정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내가 서운함을 키웠던 가장 큰 원인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고,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관념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기공포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랑을 꿈꿨던 것은 아닌가?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상처받지 않을, 나를 완성해줄. 그럼으로써 외로움에 대한 구원을 사랑으로부터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사랑의 이상이 커다래질수록, 사랑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은 쪼그라든다. 내 모습이 부족해보이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불안해진다. 이렇게 표현해줬음 좋겠다, 연락은 어떻게 해음 좋겠다 기대가 많아지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표현하기보다는 마음속에서 서운함만 키운다. 마음에 담아두고 견디는 것이 사랑인 줄 안다. 사랑하니까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가 부족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란다. 내 평생의 사랑이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또는 돌려서 말해도 알아주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그러다 점점 마음을 떼어간다.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 이상적인 상대의 모습, 그런 관념에 상대방을 가두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부터 서운함을 느낀다. 내 외로움을 허물어줄 단 한사람을 사랑을 통해 찾고자 하지만, 사랑을 통해 더 외로워지는, 지상에 발닿지 않은 화성인의 사랑. 지상의, 현실의 사랑과는 동떨어진 관념으로서의 사랑. 행복은 매일 이 순간에 우리 주변에 있는데, 행복이 있는 땅에 발붙이지 않고 지구인이 아닌 화성인으로서의 사랑을, 지상이 아닌 우주에나 있을 법한 사랑만을 꿈꿔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3.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벌써 12월, 시간이 너무 빠르다. 벌써 올해의 책을 뽑아야 할 때가 왔다니. 아직 12월이 다 가지는 않았지만 올해는 김화진 작가의 공룡의 이동경로가 나에겐 가장 마음에 깊게 남은 책이 될 것 같다. 책을 추천하기 위해 줄거리 요약하면서 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의 사건을 겪는 솔아, 지원, 주희, 현우 네 등장인물의 결핍에서 당신의 결핍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소설 안 구석 어딘가의 글귀에서 마주해 꼭 슬프지만 자유로울 것이라고만 말하고 싶다.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 중 솔아의 시점이었다. 이런 문장들에서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과 꾹꾹 눌러담는 예전 나의 모습을 읽었다. 내가 사랑을 표현하던 방식, 사랑을 표현하던 언어를 읽었다.


왜 멀어졌나를 알고 싶지 않아서, 지원이 나를 멀리하는 이유가 나 자체일 것이 너무 무서워서, 거절당할까봐 두려워서 더욱 말을 걸지 못하고 묻지 못하다가 우리는 멀어졌다.

그러나 속에서, 목 끝까지 뜨거운 것이 끓고 있었다. 다시 새겨주겠다고 왜 얘기 안해줘요. 나는 서운했다. 언제나 그런 것이 서운했다.

좋아하는 상대가 나에게 짓는 뜨악한 표정,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그런 것이다.
- 공룡의 이동경로, 김화진


솔아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표현했다. 동의하고, 선물하고, 이해하고,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있음을 느끼기 위해 종일 생각하고... "사랑받고 싶던 사람이 선택하는 차선은 사랑하기이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한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와 구원환상.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갈구. 그렇기 때문에 나부터 나를 지우고 상대방을 커다랗게, 나를 조그맣게 만드는 희생적인 사랑. 하지만 그 목적은 나를 채우기 위한 사랑. 그럼으로써 상대방이 떠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모습의 사랑.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이, 사랑이 내겐 너무나도 크기에, 사랑이 내게 입힐 상처가 두려운 것이다. 사랑이 커질수록 마음의 균형은 무너지고 무게중심이 나에서 상대방으로 넘어간다. 나를 잃고, 상대방이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된다.


그렇다면 사랑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의 마음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누르고 다듬어야 할까. 사랑의 크기와 불안을 비례하는 것일까. 그러니 불안을 줄이기 위해선 사랑의 크기를 줄여야 하는 것일까. 또는 내가 느끼는 사랑의 100 중 50만을 표현해야 할까.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너무 잘해주면 당연한걸로 아니까, 뭐 밀당이라도 해야할까. 또는 사랑에서 갑과 을을 따져야할까? 벽을 세우고, 서로의 영역을 넘지 않도록 선을 그어야 할까. 나를 보호하기 위해 덜 줘야 하는 것일까. 다정하기를 포기하고 데지 않기 위해 차가워져야 하는 것일까. 그럼 사랑으로 인해 불안하지 않고, 사랑으로 외로워지는 일도 없게 될까. 하지만 회피 역시 사랑에서 오는 외로움의 해독제는 아니다. 사랑하면서조차 상대방을 불신하여 벽을 세운다면. 그 이상으로 외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회피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받고자 하는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기대를 너무 키워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 못지않게, 사랑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억누르는 것 역시 슬픈 일이다.


사랑받고 싶던 사람이 선택하는 차선은 사랑하기이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한다.
- 공룡의 이동경로, 김화진


결국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랑을 전하던 나의 마음을 이해해야 했다. "사랑받고 싶던 사람이 선택하는 차선은 사랑하기이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한다." 나는 받고싶었던 사랑을, 상대방에게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 내가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해하는 사랑, 존중하는 사랑, 다정한 사랑, 힘이 되어주는 사랑, 조건없는 사랑을... 한때 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에 더 익숙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 자체로서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나를 이해하기 위함이듯이,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궁극적인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에 숨겨진 슬픔이 있었던 걸까. 낭만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내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바래왔던 이상적인 사랑조차 나를 옭아매는 물고기였을지 모른다. 그것에서 벗어나고서야 사랑으로써 진정 행복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4. 작은 불씨

사랑에 빠지면 완벽한 일체감을 느끼곤 하지만 나는 그 합일의 상대를 완전히 알지 못하고 그 사람도 나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적인 합일은 허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공존이다. 물론 둘이서 하나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 하나는 결코 이음매가 없을 수 없으며 차이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모든 관계는 아픔과 실망을 포함하며, 사랑이 지속되려면 그것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문제는 그러한 난관을 사랑이 시들어가는 신호로 볼 것인가, 사랑에 깊이를 더할 기반으로 볼 것인가이다. -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이제는 나를 온전히 채워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온전히 상대방과의 관계에 단단히 몰입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세우고 싶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고, 마치 상대방의 말을 경전처럼 따르거나 작은 말에 흔들리지 않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을 세우지 않고 따뜻함과 다정함을 유지하는 것.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유연해지고 경계를 명확히 세우는 것. 나를 잃지 않고 내 감정도 내 생각도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사랑으로서 구원받으리란 환상을 버리고 내 힘으로 나를 채우는 것. 그러기 위해 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


이제는 화성인이 아닌 지구인으로서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적인 합일을 허구다, 진짜 사랑은 공존이다." 나의 빈 곳을 완전히 채워줄 수 있는 단 한사람,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성인은 사랑으로부터 얻는 행복이,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완벽한 단 한사람을 찾으면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플라톤적인 합일을 꿈꾸고, 관념으로서 사랑한다. 화성인이 사랑하는 방식과 달리, 지구인의 사랑은 이러한 이상화와 구원환상에서 벗어나, 사랑을 구성하는 과정과 매일매일의 노력에 집중하는, 지상의 사랑이다. 꿈꾸고 생각하기보다는 현재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사랑이다.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조금은 내려놓고 그 순간순간 마주하는 하찮은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함께 보내는 순간들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다르지만 서로 한 발짝씩 다가가고 노력해서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가는 것이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해,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랑을 표현하는 결핍의 사랑이 아닌, 함께로서 온전히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기 위한 공존의 사랑을 하는 것. 틈을 부족함으로, 차이로 보지 않고,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랑. 상대방이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워 서운함을 꽁꽁 싸매지 않는 것. 반대로 나의 커다란 마음에 답해주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벽을 세우고 회피하지 않는, 온전히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랑. 그렇다고 나를 잃고 다 퍼붓지도 않는. 의존하지 않고 나의 중심을 지키면서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랑. 잘하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괜찮을 것만 같은 사랑. 이런 마음이라면, 시간이 지나고, 서로가 처음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도 이를 사랑이 시들어가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거라고, 그저 사랑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 뿐 여전히 아름다운 빛으로 빛나는 것이라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사랑을 불과 같은 것으로 비유한다. 모든 커다란 불은 작은 불씨에서 시작하여 번져나가는 것이다. 그 작은 불씨를 살려나가기 위해선 후후 입바람도 불고, 찬 바람은 감싸안아 가려주고, 불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장작도 구해다 계속 넣어줘야 한다. 불씨의 크기와 온도를 의심하는 사랑이 아닌, 서로의 마음 속 불씨의 온도를 믿고 예쁘게 지켜나가기 위해 이해와 공존으로서 조금씩 가꿔나가는 것. 이것이 성숙한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사랑은 기대가 아니라 실천이다. 이 작은 불씨를 보듬어가다보면 자연스레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로 우리의 마음이 선명하게 채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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