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진실하게 바라본 최초의 화가
프라도 미술관 투어를 진행하면서 각별히 신경을 써서 설명을 하는 그림이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그림과 관련된 여러 논란과 의문점을 이야기 할 때면 어떤 관람객은 너무 과도하게 해석하고 의미를 붙이는 게 아니냐 하는 불만을 토로하는 분도 계신다. 그림도 취향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평생 그림을 연구해온 학자들 그리고 화가들이 그토록 이 그림에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린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그림을 두고 너무나 많은 정보들과 해석이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상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화가와 이 그림이 가지는 미술사적 큰 의미와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먼저 벨라스케스가 가지는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스페인은 외적으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럽의 패권을 가져온다. 그와는 모순되게 문화적으로는 가장 폐쇄적인 나라가 스페인이었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아 낙후된 흔적은 미술에서도 발견이 된다.
엘그레코와 벨라스케스 이전의 스페인의 그림을 보면 여전히 중세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림들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라파엘, 미켈란젤로, 다빈치 등의 화가들이 유럽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세련된 고전주의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과는 반대로 당시 스페인의 화가들의 수준은 형편이 없었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톨레도의 '산타크루스' 미술관이다. 미술의 변방에 불과했던 스페인의 미술사에 엘그레코와 벨라스케스는 축복이었다. 특히 벨라스케스의 경우엔 더욱 특별하다. 스페인이 배출한 진정한 Made in Spain 궁정 화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있기 이전 16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화가를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페인 사람이 아닌 세련된 외국 용병 티치아노, 소포니스바 같은 이탈리아 화가들이었다.
그전까지 화가들은 귀족이나 왕족의 입맛에 맞게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특히 정통 카톨릭을 신념으로 삼는 스페인에서는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런데 국왕 펠리페 4세의 절대적인 총애로 당시 보통 화가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 이런 권리는 그의 회화적 실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주요 고객인 귀족, 성직자, 왕족 뿐 아니라 왕궁에서 항상 주변 인물에 불과했던 미천한 일꾼들을 주인공으로 그린 그림이 상당히 많다. 이 전까지 그림은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만의 특권이었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전까지 르네상스식 고전주의적 회화는 화가들이 현실 세계를 관찰하고 모방하여 평면 캔버스에 똑같이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진실 된 현실의 모방이 아닌 이상화된 세상이었다. 라파엘 같은 천재의 그림 속 인물들은 잘 그려지긴 했으나 진짜 사실 같다는 느낌보다는 삽화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주제도 실재가 아닌 주로 신화나 종교 같은 가상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실재를 그렸다고 해도 신화 속 인물처럼 우아하게 판타지 적으로 묘사를 한 것이다. 비너스, 천사, 성모마리아를 실제로 본적인 없는데 화가들은 주로 그런 것들을 그렸다.
그런데 벨라스케스는 그런 비현실이 아닌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집중을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판타지가 아닌 실제 살아있는 현실의 사람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초기 작들을 보면 카라바조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 보인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연출된 빛이라면 벨라스케스의 빛은 억지로 연출되지 않은 현실 속 자연스러운 빛처럼 보인다. '시녀들'을 멀리서 봤을 때 마치 3D 안경을 낀 듯하며 실제 그림 속에 공간이 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시녀들은 반드시 멀리서 오랫동안 이 묘한 느낌을 감상해봐야 한다. 화가의 작업실에 살아있는 마르가리타 공주, 양옆에 두 시녀들, 그리고 강아지 쪽의 두 명의 광대들의 일상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화가는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다. 언뜻 보기에 너무나 진짜 같은 현실을 그린듯하지만 그림을 보면 볼수록 이상한 점이 있다. 그럼 지금부터 이 그림의 모순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그림의 정중앙에 국왕 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이라고 하기엔 혼자 어색할 정도로 밝다. 게다가 저런 구도의 초상화는 당시 어느 누구도 그린 기록이 없다고 알려진다.
그럼 분명히 거울일 것이다. 화가는 정면에 서 있는 왕과 왕비를 그리기 때문에 반대쪽 작은 거울에 국왕 부부가 거울에 비치는 것이다. 그런데 국왕 부부의 위치는 당시 왕실의 예법에 모순이라고 한다. 예법에 맞게 거울에 비치려면 국왕부부의 위치는 반대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혹시 화가와 등장인물들은 대형 거울 앞에 서 있고 화가 자신을 포함한 비추어진 거울을 캔버스에 옮겨놓은 게 아닐까? 그림 속 화가가 그리는 것은 결국 지금 우리가 보는 큰 캔버스의 그림인 것이다. 거울을 카피한 그림이니 좌우가 반대로 된 그림인 것이다. 그림 속 인물들의 실제적 모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시 손거울을 대고 좌우가 바뀐 작품을 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다시 좌우가 반대가 되어 원래 위치대로 오기 때문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인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상한 점이 있다. 왕과 왕비가 뒤에 비치는 작은 거울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당연히 캔버스와 대형 거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테고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우리가 보는 그림의 가장 가까운 쪽에 왕과 왕비의 뒷모습이 있어야 한다. 가장 가까운 쪽에 국왕부부를 그리지 않는다면 절대로 작은 거울에서 그들은 등장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정체 모를 작은 거울의 주인공은 유령이라는 말인가? 결국 이 가정도 모순이 된다.
'시녀들'은 사진을 뛰어넘는 3D효과를 구사한 사실주의 그림이다.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인 그림이기도 하다. 거울이라는 신비로운 물체를 이용해서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 이 그림의 진정한 매력 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그림들은 정해진 종교, 신화 따위의 상징이 있었고, 이미 정해진 답안지가 있었다. 그런데 '시녀들'은 수수께끼 문제지만 남겨두고 정답지를 주지 않았다. 해결의 주체를 감상자에게 맡겨버리고 그 스스로도 현실이 아닌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 공간을 초월해서 17C 과거 그림 속에 영원히 갇혀버린 화가는 현재의 우리 감상자에게 과연 이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허구의 세상인지 되묻고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사진 이상의 현실감 있는 3D 효과를 느끼게 하는 그림을 다시 가까이서 보면 당연히 디테일하게 잘 그려져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그린 것이 하나도 없다. 투박하고 성의 없게 그려진 터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 우연히 실수로 나오는 붓 터치들을 정교하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마무리한다. 억지로 다듬지 않고 거친 터치 자국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리가 안된 이런 난잡한 붓 자국들이 멀리서 보면 어떤 그림들보다도 더욱 현실 같은 느낌으로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놀라운 기법이 그를 신격화하는 추종자들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일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멀리서 보았을 때의 시각적 착시 현상을 이미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 봤을 때의 효과를 그리고자 특수 제작한 길쭉한 붓으로 표현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을 배우거나 그려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잘 다듬어진 세밀한 그림을 보면 그것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림을 배우거나 직접 그리는 사람들 입장에서 그런 테크닉적인 효과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진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화가의 놀라운 기법이다. 그가 구사하는 마법과 같은 기법은 19세기 이후 쿠르베, 존 싱어 사전트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에 의해 계승된다.
마지막으로 벨라스케스를 두고 왜 사실주의 화가라는 말을 하는지 이야기해보겠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한 번쯤은 그려봤을 원기둥 소묘다. 빛의 교과서적인 원리를 배우기 위한 기초 소묘로 그리게 된다. 필자 역시 수 없이 그려봤고 이 원리에 대해 제자들에게 많이 가르쳐 왔다. 이런 기초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공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르네상스 때 3차원을 2차원 화면에 구현하기위해 어떻게 하면 실제처럼 보이게 할 것인가가 화가들의 가장 큰 숙제였다. 그 결과 빛의 이론 그리고 원근법이 탄생했다. 이 원기둥을 보면 실제로 손에 잡힐 것 같은 입체감을 주고 있다. 착시 현상인 것이다. 밝음, 중간, 어둠, 반사광, 그림자의 공식을 알면 그 뒤로는 눈으로 보지도 않고 실제 원기둥을 쉽게 그릴 수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르네상스 화가들은 3차원이 2차원에서 실제처럼 보이도록 여러 가지 방식의 응용된 공식들을 더욱 다양하게 응용하였다. 실제로는 보기 힘든 이상적인 비례, 근육 표현도 더욱 진화되게 된다. 그런데 실제 원기둥을 관찰해본 적 있는가? 이런 교과서적인 빛은 스튜디오의 연출된 빛에서만 가능하다. 실제 현실에서는 매우 다양한 자연 채광 때문에 저런 이상적인 빛은 볼 수가 없다. 이론과 현실은 다른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이런 틀에 박힌 고전주의적 화풍에 의문을 던졌다. 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실제와 다르게 보이는 것들을 억지로 만들어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비현실적인 공식을 뒤집고 진실만을 그리려 하였다.
광대로 알려진 파블로를 그린 초상이다. 배경을 그리지도 않고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당시에는 신선한 시도였다. 지금의 스튜디오 같은 느낌의 배경이다. 단지 그림자 하나로 공간을 표현하고 있는 간결함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 그림은 고전주의적인 공식을 허물은 혁명적인 그림이다. 자세히 다리를 확대해보자.
원기둥형 다리를 표현하면 당연히 밝음, 중간, 어둠, 반사광을 그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화가는 어두운 블랙 한가지 색으로 과감하게 칠해버렸다. 어떤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처리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평면으로 표현했다. 당연히 입체감이 없어 보여야 할 그림이다. 그런데 조금만 멀리서 보면 이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모델은 어두운 옷을 입고 실제 공간의 바닥에 매우 현실감 있게 서있다. 화가의 눈에 파블로의 다리는 모두 어둡게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화면에 어떤 편견과 주관을 배제하고 평면적으로 옮겨 놓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평면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진 이상의 현실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벨라스케스가 가지는 놀라운 사실주의적 마법이다. 화가는 객관적인 관찰을 방해하는 조금의 고전주의적 편견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틀박힌 공식을 버리고 현실을 보았다. 혹시 이런 가치관의 사조가 사실주의 혹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닌가? 그렇다. 그는 200년 뒤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사실주의 그리고 이어질 인상주의를 이미 예고하고 있다. 벨라스케스가 대단한 화가임은 그를 연구하고 추종한 화가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 있기도 하다. 인상파의 리더 그리고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도 평가받는 마네가 이 그림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패러디를 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패러디 결과물을 보자.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이다. 그도 역시 어두운 상의를 평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네의 이런 평면적인 화법은 이후 현대미술의 3차원 파괴의 시작을 알렸다. 마네는 벨라스케스 '시녀들' 그리고 다른 그림들을 보고 선배 화가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그는 화가들 중의 진정한 화가다'
마네 역시 본래는 벨라스케스를 롤모델로 왕립 아카데미에 등용되며 출세한 귀족 화가가 되길 원했다고 알려진다.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것 같은 귀족 화가 벨라스케스는 그림에서만큼은 스스로 권위의식을 버리고 사람 그리고 모든 사물에 어떤 편견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림 속 세상에서는 성직자, 왕, 귀족, 하인, 난쟁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평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7세기 가장 보수적인 나라였던 스페인이 배출한 품격 있는 예술의 혁명가였다.
-글/아트카운셀러 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