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범자들' 관람과 최승호PD와의 만남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KBS와 MBC의 연대 파업을 지지한다.
그동안 내 기억 속 KBS와 MBC는 정상적인 공영방송으로서 존재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이란 개념 자체를 정부의 통제를 받는 '권력의 하수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상업방송보다 나은 게 없는 공영방송에 대한 별다른 중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얼마 전에야 정치커뮤니케이션학 강의를 통해 제대로 된 공영방송 시스템의 사례를 접하자 비로소 공영방송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정치적 공론장의 제공, 식견있는 유권자 양성, 감시견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 시스템은 유럽의 공영방송이었고, 반면 극단적으로 사유화된 미국의 언론들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공영방송이 그러지 못하고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 그 차이나 중요성을 느끼기 힘든 것이었다.
공영방송의 가장 큰 장점은 언론의 역할 수행에 영향을 주는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다. 사적 방송의 비중이 97%를 차지하는 미국의 방송사들은 광고주에 의존하기 때문에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흥미 위주로 방송을 주로 편성한다. 사람들이 TV를 가장 많이 보는 프라임타임에 공적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시간은 한 시간도 되지 않고, 뉴스를 보도한다고 한들 정책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하는 ‘하드 뉴스’가 아닌 정치인에 대한 사생활이나 이미지만을 다룬 ‘소프트 뉴스’ 수준에 그친다. 완전히 사유화되어 버린 언론 지형에서는 그나마 직접적인 정부 권력의 개입은 없다는 장점이 있으나, 방송 수익과 직결된 경제 권력에 대한 감시, 정치적 공론장의 제공, 식견있는 유견자 양성 등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미국과 달리 유럽은 공영방송이 강해서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도 보장받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방송사를 사적 기업이 아닌 공적 사회제도로 간주하고, 시민들도 공영방송을 정치 정보 획득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공영방송의 점유율이 높은 유럽 국가에서는 그렇지 못한 국가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 관련 내용을 방영하고 있고, 프라임타임에 공적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시간도 미국의 두 배 이상이나 된다. 선거 과정에 있어서도 돈만 있으면 무한정 방송 시간을 구매하고 광고를 송출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유럽의 방송은 의석 비율에 따라 모든 정당에게 방송 시간을 할당하여 유권자들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제적 자율성을 보장받아 시민들에게 정치 정보를 전달하여 공론장을 활성화할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자율성도 보장 받아 정부에 대한 감시견 기능도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9월 4일부터 연대파업에 들어간 KBS와 MBC노조는 공영방송이 자율성을 되찾고 정상화가 된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 굉장히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 말한다. 어제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진행된 영화 ‘공범자들’ 상영회 후 진행된 대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JTBC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두 PD의 대답이었다.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PD와 KBS 언론노조의 강윤기PD는 KBS와 MBC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동안 JTBC가 해준 역할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스템의 일부를 구성하는 공영방송이 정상화된다면 더 큰 차원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덧붙였다. 단편적으로 아직까지 KBS가 점유하고 있는 시청률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한다. 2016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뉴스를 접하는데 아직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 바로 TV방송이다. 그러나 그렇게도 국민적 신임을 받는 JTBC 뉴스룸’은 시청률이 6%를 겨우 넘고 있고, 파업으로 인해 제대로 된 보도 하나 내보내지 못하고 있는 ‘KBS 뉴스 9’의 시청률이 아직도 16%나 된다. 이 16%가 정상화되었을 때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두 PD가 또 하나의 근거로 든 것이 KBS와 MBC가 갖고 있는 탄탄한 지방 조직이다. KBS와 MBC의 사장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방송사처럼 서울에 있는 방송사의 사장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지역 본부 전체를 개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 9년간 언론을 장악해온 권력의 하수인을 끌어낸다면,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는 두 공영방송은 촛불 시위 이후 최대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덧붙여 KBS와 MBC는 9년 간 권력에 맞서 싸운 경력이 있어 후에 언론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시도가 발생했을 때 더욱 잘 대처할 수 있는 노련함도 생겼다고 장난반으로 말했다. 이렇듯 권력의 언론장악을 국민들에게 알린 최승호 PD와 KBS 언론 노조에서 앞장서고 있는 강윤기 PD는 모두 공영방송의 정상화가 우리의 민주주의에 가져올 파급력에 주목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과 영어대 학생회에서 진행한 영화 ‘공범자들’ 무료 상영회를 보고, 또 상영회가 끝난 후 이어진 두 PD와의 대화를 계기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마침 같은 날 오전에 있었던 한국정치 강의에서도 언론이라는 주제를 다루어 궁금한 점이 여럿 생겼었기에 좋은 기회였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막강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구조 속에서 언론의 자율성이 제대로 회복될 수 있는 지의 여부였다. 파업 이후 언론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과 가능성을 묻는 내 질문에 그들은 ‘일단 파업 성공이 우선’이라고 대답했다. 다양한 사회적 계층과 직능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직접 사장을 선출하는 독일의 방식 등이 이상적일테지만, 일단 두 사장을 끌어내고 적폐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9년이라는 너무도 긴 암흑기를 보냈기 때문에 언론을 망친 자들을 조사하고 엄벌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 말이다. MBC 이사회에서는 두 명, KBS 이사회에서는 1명이 사퇴를 하여 2:1로 지고 있다는 강윤기 PD의 농담을 끝으로 긍정적인 전망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의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내일 26일부터 27일까지 본격적으로 KBS와 MBC를 대상으로 국정감사와 업무보고를 갖는다고 한다. 언론인들도 모든 방법을 써본 결과 할 수 없이 택한 선택지가 파업이기에, 이 상황에서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어설픈 글빨로 누군가 이 글을 여기까지 읽게 만드는 것 밖에 없다.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알리고, 아래 첨부하는 ‘공범자들’이란 영화를 한 사람이라도 더 보게 만들어 지난 9년간 언론을 탄압한 세력들의 실태를 알리는 것이 내 최선인 것 같다.
공영방송이 바로 서서 중요한 정치 정보 제공원으로서 기능하고, 국민을 대신하여 정치 권력에 대해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KBS와 MBC의 연대 파업을 지지한다!
영화 공범자들 : https://www.youtube.com/watch?v=93JfBfMtD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