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묵자 Sep 01. 2019

베놈과 에릭은 어떻게 하나가 되었나

루벤 플레이셔 '베놈(Venom)'

이제 영화에 대한 평가는 어떤 형태의 상영관에서 보았는지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만 해도, 용산 CGV IMAX LASER관에서 봤기 때문에 내 평점 한 개는 올라갔다.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라인과 쓸데없고 지루한 컷들이 IMAX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액션씬에 다 잊혀지니 말이다.

영화 베놈은 개봉 전부터 팬들을 들었다놨다 했다. 예고편에서 등장한 심비오트의 "We are Venom"은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고, 편집된 장면이 많다는 주연배우의 말은 기대치를 확 낮췄다. 엠바고 어기고 올라온 ‘캣우먼’ 같다는 평에 비해서 영화는 상당히 괜찮았다. 내가 히어로물에 대한 평이 관대한 편이지만, 첫 베놈 단독 영화는 무난하게 재미있었다.

사실상 모든 히어로 '영화'의 한계 - 나는 히어로가 시리즈물로 재현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 이지만 캐릭터 설명이 미흡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주인공 에릭과 베놈, 칼튼 드레이크, 앤 웨인 모두 평면적인 캐릭터는 아닌데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 애초에 캐릭터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면 모를까, 초반부에 에릭 개인사로 루즈하게 끌다가 중후분부는 급전개한 것이 문제였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이게 같은 영화의 캐릭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설명이나 심경변화가 많이 컷 된 느낌이다. 이럴거면 2시간 러닝타임은 왜 맞추었나 싶었다.

베놈과 에릭의 심리 대결 구도가 제일 아쉽다. 인간 에릭의 몸에 들어간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 ‘베놈’. 한 육체 안에 존재하는 두 자아가 대결하다, 협력하고, 결국 공존해가는 과정의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 베놈이 어떻게 에릭을 받아들이고, 에릭이 어떻게 베놈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가 말이다. 한순간에 베놈은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가 됐고, 에릭은 인간을 먹어치우는 베놈을 "에라 모르겠다" 정도로 여기게 됐다. 도덕성 인간성 외계인성(?) 개연성 다 밥 말아먹었다.

액션과 CG는 더 할 나위 없었다. 처음 베놈과 한 몸이 된 후 추격씬이나 베놈 마스크만 덮어 쓴 뒤 전투씬은 정말 최고였다. 심비오트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한 액션과 CG였다. R등급이 아니라 베놈이 사람 머리 우걱우걱 씹는데 피 한 방울 안튀기는게 위화감이 들기도 했지만, 영화 분위기 생각했을 때 납득이 가기도 한다. 단, 1,2,3차 예고편을 모두 다 보고 영화를 본 사람은 액션에 별 감흥 없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1차 예고편만 보고 영화봤다.)



사실 히어로 장르에서는 영화의 모든 부분을 챙기기 힘들다. 원작의 서사가 워낙 복잡하고 설정이 자주 바뀌기도 한다. 첫 베놈 영화는 톰하디라는 배우와 심비오트 액션신 잘 살린 것 만으로 일단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허한 아름다움만이 남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