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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Jan 29. 2023

사립 명문 오행고

2. 2022년 서울. 서오행중학교


 “부적은?”

 “가방에!”

 “없는 거 내 다 안다.”

 “나 참, 엄마. 가방에 부쩍 넣고 다니면 왕따당한다고.”

예서가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이럴 땐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그 학교는 액땜 하는 부적 없으면 못 간다고 내 말했지?”

 엄마의 고함이 들렸지만, 예서는 계단으로 줄행랑을 쳤다. 

 “김예서, 엄마 말 좀 들어! 그러다가 제 명에 못 죽어. 이 년아!”

 엄마가 창문까지 열고 소리를 질렀지만, 예서는 서둘러 이어폰을 꼈다. 엄마의 고함 대신 저스틴 비버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됐다. 3년 내내 지긋지긋한 부적들과 보낼 수는 없다. 이제 부적들과 안녕이다! 예서는 비버의 음악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잠깐만요!”

 간신히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운이 좋았다. 이걸 놓치면 1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부적이 없어도 이렇게 운이 좋은데 엄마는 괜한 걱정이다. 버스 뒷자리에 앉으니 따뜻하고 편안했다. 곧 졸음이 쏟아졌다. 지금부터 늘어지게 자도 상관없다. 지금부터 타는 모두 승객은 서오행중학교 정류장에 내리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얘 너 1학년이니?”

 누군가의 목소리에 예서는 눈을 떴다. 그 순간 예서는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바라보면 안 된다. 모르는 척해야 해. 들리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예서는 눈을 꼭 감고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없다. 그제야 엄마가 넣어둔 부적을 모두 탈탈 털어버리고 집을 나섰다는 게 실감 났다. 손이 덜덜 떨렸다. 

 “와이는이엑스플러스사를엑스툭으로대칭이동하는직선을에이라고할땔 때….”

 그것이 예서의 왼쪽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찌르는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주문처럼 문제를 읽어댔다. 참아야 한다. 귀를 막거나 고개를 젖히거나 해도 안 된다. 녀석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예서는 가방끈을 꼭 잡았다. 엄마의 부적만 있어도 이런 일은 안 당하는 거였다. 제발 사라져 제발!

 “김예서!”

 민영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민영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예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야? 내가 안 반가운 거야?”

 민영이 이렇게 말하며 예서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다행이다 어느새 그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귀를 찌를 듯한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안 반갑긴 뽀뽀를 해주고 싶을 정도다”

예서가 입술을 들이밀었다. 

“야! 넌 내 취향 아니거든 저리 안 가!”

 민영이 예서의 얼굴을 밀쳤다. 하지만 예서의 얼굴은 싱글벙글하였다. 만약 지금 민영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민영만 있으면 예서 주변에서 보이던 이상한 것들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된다. 엄마 말로는 인간 부적이 있다는데 민영은 예서에게 인간 부적과 같은 존재였다. 

 “오민영! 네가 같은 반이라서 내가 얼마나 기쁜지 넌 모르지? 사랑한다 오민영!”

 예서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버스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예서와 민영에게 향했다. 예서와 민영은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어휴 김예서 너 학교 가서 보자.”

 민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민영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자신이 듣고 있던 이어폰 하나를 민영에게 건넸다. 민영은 빙긋 웃었다.

 “또 비버? 난 스위프트 노래가 더 좋던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영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예서와 함께 리듬을 탔다. 언뜻언뜻 버스 창에 비추는 아침 햇살이 손등을 간지럽혔다. 바깥 날씨와는 다른 따뜻한 공기를 음미하다 예서는 문득 울컥했다. 이제 중학교 졸업이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민영과 함께 학교에 가고 쉬는 시간마다 수다를 떨고 매점에 같이 달려가는 일 들은 더는 하지 못한다. 예서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리려는 듯이 침을 꿀꺽 삼키고 민영이에게 물었다. 

 “오행고 원서는 다 썼어?”

 “응”

 민영이 간단히 대답했다. 서오행중학교에서 사립 명문 오행고등학교에 입시 원서를 쓴 사람은 민영이가 유일했다. 

 “좋겠다. 난 아직도 고민이야. 담임은 특성화고등학교로 가라지만 내가 뭐 잘하는 게 있나? 관심 있는 것도 아니고….”

 예서가 한숨을 쉬었다. 민영이 하고 3년을 지내는 동안 공부하는 방법이라도 잘 배워 두었다면 이런 고민을 안 할 텐데….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 엄만 뭐라는 줄 아니? 오행고에 원서를 내라는 거야. 올해 내가 관운이 최고라나? 나 참. 꼬박꼬박 가져다준 내 성적표는 보지도 않으셨나. 자칭 오행동 최고의 무당이라더니 우리 엄마도 영빨 다 떨어졌어.”

 예서가 넋두리했다. 민영의 눈빛이 빛났다.

 “원서…. 써 봐 너희 엄마 말은 틀린 적 없잖아.”

 예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야, 말도 안 돼. 전국 1위 오행고가 미쳤다고 날 뽑겠….”

 순간 예서는 민영의 얼굴을 보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민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야, 야 왜 울어. 딴 고등학교 간다고 아예 얼굴 못 보는 거도 아니고 아이, 참….”

 예서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가득했다. 결국 두 소녀의 울음보가 터졌다. 버스 승객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고 그날따라 햇볕은 더 따뜻했고 저스틴 비버의 댄스곡도 왠지 슬프게만 들리는 아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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