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규 Jan 29. 2023

사립 명문 오행고

3. 2022년 대전. 서대전여자중학교

 “제가 걔야?”

 “응, 쟤 맞아. 전교 1등….”

 “전교 1등이면 뭐 하냐 만날 혼자인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수록 혜린은 더욱 몸을 움츠렸다. 

 “몸을 다 가리고 다니는 거야? 우리 학교에서 교복 바지 입는 여자애는 제가 유일하다며?”

 “몸에 이상한 게 있나 봐.”

 “아토피지? 엄청 심한가?”

 “그게 아니고 상처라는데? 온몸에 상처 자국이 있대.”

 그 말에 혜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 수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수희의 눈빛이 빛나는 걸 넘어간 것은 혜린의 실수였다. 혜린의 걸음이 빨라졌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끼이익!”

 학교 옥상으로 연결된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평소에는 도어락으로 잠겨 있지만, 혜린은 자유롭게 옥상 문을 열 수 있었다. 학교 경비 아저씨가 기르던 강아지를 치료해준 대가라고 해야 하나? 경비 아저씨는 혜린에게 옥상 비밀번호를 알려 준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혜린에게 묻고 또 물었다. 

 “혹시 나쁜 생각으로 옥상 가는 건 아니지?”

 혜린은 대답 대신 꾸벅 인사만 했다.

 11월이라 옥상은 바람이 찼다. 하지만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여기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혜린은 후드티와 마스크를 벗었다. 붉은색 실핏줄 같은 상처가 얼굴과 목, 팔에 드러났다. 3일 정도 지나서 그런지 그렇게 보기 흉하지는 않았다. 혜린은 옥상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코끝이 시렸지만, 몸은 날아갈 것 같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곳에서 보내는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 혜린에게는 학교생활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사귀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아니 초등학교 때에는 조금 노력은 했다. 하지만 모두 혜린의 몸의 상처를 보고 뒷걸음을 쳤다. 그때마다 혜린은 화를 내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겪고 나서 애가 좀 어두워졌어요.”

 고모는 혜린에 대해 아무에게나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혜린이 고모를 싫어하진 않았다. 고모는 그날의 사고를 잘 알지 못했고, 그저 혈육이라는 이유로 결혼도 안 한 젊은 나이에 혜린을 거두어야 했다. 10여 년이 되도록 혜린을 보살핀 고모이기에 혜린은 그 정도의 푸념은 해도 된다고 여겼다. 게다가 6살 때 교통사고를 겪은 후 의지할 사람이라고 고모밖에 없는 혜린에게 고모는 아빠며 엄마이고 동생이었다. 

 “괜찮아 이제 4일만 지나면 말끔해질 거야.”

 혜린은 팔의 가득한 상처들을 보며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찌잇! 찌잇!”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옥상에 혜린 말고 또 누가 있는 걸까? 혜린은 후다닥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람의 인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옥상에 설치된 수많은 에어컨 실외기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일까?

 “찌이.... 찌잇!”

 소리는 더욱 처절하게 들려왔지만,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해. 옥상 실외기 사이를 한 참 헤매던 혜린의 눈에 무언가 작은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박새 한 마리였다. 녀석은 옥상 시멘트 바닥에 누워 힘겹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쩌지?”

 혜린은 박새와 자기 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박새의 울음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남은 생명이 다 꺼져가는 것일 터였다. 그 와중에도 녀석의 눈은 푸른 하늘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이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녀석은 자신이 마음껏 날아다녔던 푸른 하늘에 대한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 

 혜린은 문득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은 어떤 미련을 가질지 생각해 보았다. 박새처럼 푸른 하늘을 바라볼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쓸쓸하게 최후를 맞는 것에 만족할까?

 “휴우!”

 혜린은 한숨을 쉰 뒤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박새를 안았다. 여전히 체온이 남아 있는 박새의 몸이 따뜻하다. 하지만 박새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 녀석은 무서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모든 걸 체념하고 있을까? 알 수 없다. 혜린은 두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박새 주변에서 붉은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천천히 혜린의 온몸을 감쌌다. 빛은 점점 뜨거워지며 혜린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희미한 온몸의 상처들이 다시 붉어지고 가지를 뻗으며 혜린의 온몸에 번지기 시작했다. 싫다. 이 끈질긴 상처들…. 하지만 이 작은 녀석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순 없다. 

 “찌잇! 찌잇!”

 박새 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혜린은 눈을 번쩍 떴다. 박새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손끝에서도 생생히 느껴졌다. 혜린은 안고 있던 손을 가만히 놓았다. 박새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포르르 하늘로 몸을 던져 날아갔다. 혜린은 날아가는 박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 상처는 내가 다 가져갔으니 앞으로 아프지 말고 잘 살아.”

 혜린의 팔에는 진하고 흉한 상처가 새로 생겼다. 이 상처가 모두 사라지기까지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교통사고로 가족을 다 잃은 혜린 대신 얻게 된 이상한 운명이었다. 혜린은 후드티를 다시 입고 마스크도 썼다.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된다. 

“늦겠다. 서두르자.”

 “끼이익!”

 혜린은 옥상 문을 천천히 닫았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사립 명문 오행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