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누나, 이러다 둘이 싸우겠어, 그만하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운동장에는 가이와 우솔이 두 사람 말고 비형랑의 아이들인 나루와 나예도 함께 있었다. 물론 나루는 한 손을 나예와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두 사람을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아까 우솔이가 한 골 넣으니까 1반 아이들 좋아하는 거 너도 봤지? 우솔이가 드디어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거야 근사하지 않냐.”
나예는 우솔이만을 바라보며 꿈꾸는 듯이 말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대꾸도 못 하겠네.”
나루는 이렇게 말은 했어도 갑자기 축구공을 사라지게 하는 장난이 은근히 재미있기도 했다.
“뭐, 가이 형도 이번엔 좀 비겁했으니까.”
나루와 나예가 운동장에서 가이와 우솔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서로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3분밖에 남지 않은 경기는 계속되었다. 우솔이는 원래부터 축구나 땀을 흘리는 운동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지만 가이와 신경전이 있고 난 뒤에는 자기 스스로 자기 편 골대 앞까지 달려가 떡 버티고 섰다. 하지만 1반 골키퍼인 민송이는 그런 우솔이가 더 신경 쓰였다.
“야 우솔아! 너 앞 좀 가리지 마! 그렇게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으면 공 날아오는 것도 안 보인단 말이야. 어? 공이다!”
그때였다. 민송이가 우솔이에서 한눈을 판 사이 민태가 온 힘을 다해 골문으로 공을 차 넣었다.
“아 안돼”
우솔이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순간 민송이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민송이는 민태가 찬 공 쪽으로 빠르게 떠올라 엉겁결에 민태의 공을 배로 받았다. 민송이가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민송이의 몸은 한바탕 공중제비를 하고는 땅으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와! 민송이 짱이다!”
“민송아 어떻게 한 거야?”
“나, 나도 몰라.”
아이들이 민송이에게 몰려와 한마디씩 했지만 정작 깜짝 놀란 것은 민송이 자신이었다. 민송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민송아 빨리 던져 이제 2분밖에 안 남았어.”
“어? 어!”
민송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기 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공을 힘껏 찼다. 그 모습을 보며 민태는 아쉽고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아휴! 정말 오늘 뭐 제대로 되는 게 없다니까.”
그런데 화가 난 것은 민태 분만이 아니었다. 가이는 얼굴이 뻘게져서 우솔이에게 달려왔다. “너 정말 비겁하게 이럴 거야?”
“내가 뭘!”
“내가 뭘? 민송이가 날아오른 게 너 때문이 아니란 말이야? 그럼, 걔가 무슨 슈퍼맨이라도 돼?”
가이의 말이 맞았다. 우솔이는 조금 전에 자기도 모르게 민송이를 공중에 떠오르게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이렇게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우솔이 마음속에서도 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솔이는 소리를 꽥 질렀다.
“이, 이 깟 축구가 뭐가 대단하다고 난리야!”
지금까지 우솔이는 가이에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가이를 노려보며 소리를 지르다니…. 우솔이는 자기 자신도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이를 쳐다보았다.
당황한 것은 가이도 마찬가지였다. 귀 볼까지 빨개진 얼굴로 가이는 아무 말 도 없이 식식대다가 고개를 확 돌리고 한마디를 했다.
“너…. 두, 두고 봐.”
멀리 자기 편 골대 쪽으로 뛰어가는 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솔이는 마음이 쓰렸지만, 가이의 뒷모습에 대고 마치 가이가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외쳤다.
“두, 두고 보자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
축구 경기 시간은 이제 딱 1분밖에 안 남았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가이의 몸에서 한순간 푸른 빛이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1반 회장 만재가 찬 공이 공중에서 방향을 획 바꾸어서 1반 골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우솔이의 몸이 주황빛으로 물들이자 축구공은 땅에 내려 꽂히는 것처럼 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드디어 기회다!”
민태가 냉큼 달려와서 땅에 덜어져서 꼼짝도 안 하는 축구공을 힘껏 걷어찼다!
“퍽!”
“아! 아야!”
축구공은 마치 커다란 바윗돌처럼 꼼작도 안 했다. 민태는 발목을 부여잡고 떼굴떼굴 굴렀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가이는 온몸에서 파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눈 깜짝할 새 날아가 축구공을 둘러쌌다 하지만 우솔이의 방해 때문에 축구공은 마치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기만 했다. 가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더욱더 힘을 쏟았다. 이윽고 축구공은 아주 조금씩 1반 골문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3반 아이들도 서둘러 공물 몰러 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몇 발자국 못 가고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우솔이의 몸 전체를 감싸는 주황빛도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으윽, 발이 너, 너무 무거워.”
“우솔이 이 녀석…. 정말!”
가이도 으르렁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솔이 때문에 온몸이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이는 축구공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공은 푸른 빛을 발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몇 미터만 가면 골대다. 제발!
“휙!”
드디어 축구공이 골대 바로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축구공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갔다. 처음엔 작은 점처럼 보이더니 더 높이 올라가자 아예 보이지 않았다.
“우와 우솔이 형 대단한데! 축구공이 우주까지 날아갔어. 누나!”
나루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을 했다.
“야, 넌 그게 보여?”
나예는 나루를 따라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 당연하지. 그게 내 능력이잖아.”
두 사람이 감탄할 사이 우솔이는 힘을 다 썼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3반 아이들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곧이어 가이가 씩씩대며 우솔이에게 달려들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다 망쳤어.”
순식간에 우솔이와 가이는 운동장에서 서로 부둥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 왜 싸우는 거야?”
1반 아이들도 3반 아이들도 두 친구가 싸우는 이유를 몰랐지만 모두 두 아이에게 달려갔다. 두 반 선생님들도 시끄럽게 호각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경기는 그렇게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아, 알지? 이건, 누나 탓이 아니야. ”
나루는 나예에 얼굴을 살피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나예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몰라, 이건 다 나 때문이야.”
나루도 어쩔 줄을 모르고 나예를 바라보기만 했다.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이 가이 우솔의 싸움을 말리려 달려가고 나예의 모습을 보며 나루가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우솔이가 날려 보낸 축구공은 이제 막 북극 상공을 돌고 있었다. 마치 인공위성처럼….
<계속..... 월요일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