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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Feb 02. 2023

뱀파이어 스쿨

2. 반의 서점<1>

“비가 올 것 같군.”

반이 밖을 힐끗 보더니,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서점은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햇살이 비칠 때는 매우 밝고 아늑했지만, 날이 흐리면 습하고 추웠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유리 벽이 빗물을 흡수해 음습한 기운이 서점 전체를 감싸기 전, 반은 서점 중앙에 있는 톱밥 난로를 켰다. 그러면 유리 벽은 뿌옇게 흐려지고 서점 안은 몽환적인 느낌이 났다.

 그의 서점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소설과 철학서가 꽂혀있는 책장은 주인인 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고 거의 금서처럼 취급받고 있는 역사서들은 뿌옇게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반은 서점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허튼짓하는 놈”

 건물 주인인 챙 노인은 반을 이렇게 불렀다. 챙 노인은 분명 반이 겉멋을 들린 재벌가 아이들이거나 돈 많은 과부를 꼬드겨 한 몫 챙긴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팔면서 나스키고 학교 주변 상가의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월세를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낼 정신 나간 놈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챙은 굳이 반과 같은 세입자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랫동안 꾸준히 월세를 내주는 반 같은 세입자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가게가 문을 닫는 이곳 나스키고 교차로 번화가에서 10년째 장사를 하는 주인은 거의 드물기 때문이었다.

 반은 난로 덕분에 아늑해진 서점의 분위기가 만족스러운 듯 다시 자리에 앉아 읽던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유리 벽에 뿌옇게 습기가 차오르고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팔고 있는 서점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은 스펙탄토의 지배하에 허덕이는 세상과는 뭔가 괴리된 낯선 풍경이었다.

 “정지! 정지!”

 호각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고함에 반은 책에서 눈을 떼었다. 제복을 입은 교통순경 한 명이 황급히 달려왔다가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때였다.

 “으악!”

 비명과 함께 그의 몸이 날아가 반의 서점 벽에 부딪혔다. 반사적으로 반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순식간에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교통순경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 것 같은 사내가 얼굴에 비웃음을 잔뜩 새긴 채,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 지금 나에게 한 말인가?”

 사내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물었다. 교통순경은 벽을 의지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죄, 죄송합니다…. 단순 뺑소니 사곤 줄….”

순간 사내가 그의 몸을 손으로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사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벌레 같은 것들….”

사내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흰자위가 없는 눈…. 모여든 사람들은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린 후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오늘 교통순경이 운이 나빴다. 날이 흐리고 어두운 탓에 스펙탄토를 지구인으로 착각하다니….

 “사…. 살려주세….”

 교통순경의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갔다. 어느새 82 섹터 나스키고 구역 폐기물 처리반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스펙탄토에 의해 살해당한 지구인 시체 폐기물을 치우는 것은 지배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신속하고 청결하게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스키고 번화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공포에 질린 그의 신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어차피 세상의 지배자는 스펙탄토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만 보던 반이 유리 벽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유리 벽만 아니었다면 교통순경의 절박한 호흡과 스펙탄토 괴물의 피비린내 나는 입 냄새를 맡을 정도로 가까이…. 반은 천천히 스펙탄토를 바라보았다. 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순간 스펙탄토 괴물도 반의 묘한 표정을 알아차렸다. 그때 괴물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흰자위 없는 눈에 공포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반이 중얼거렸다.

“더러운…. 흡혈귀 새끼….”

 순간 스펙탄토 괴물은 교통순경을 내팽개치고 뒷걸음쳤다. 폐기물 처리반은 숨을 쉬고 있는 교통순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난감한 표정이었고 스펙탄토 괴물은 당황한 듯 몸을 획 돌려 서점에서 멀어졌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겁에 질린 것이 아니라는 듯, 괴물은 짐짓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지만, 그의 걸음걸음마다 두려움이 느껴졌다.

 “솨!”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처음처럼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게 된 건지 알 수 없던 교통순경은 서점 벽을 의지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두 눈에 하얀색 네온사인으로 치장된 서점 간판이 들어왔다.      


“反 Hell think”


<계속 ....목요일에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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