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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물 Aug 05. 2022

스리랑카가 너무 좋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나의 마지막 여행은 스리랑카였다. 2020년 1월, 한 달간 스리랑카를 여행했다. 한국은 겨울이고 스리랑카는 뜨거웠다. 첫번째 이유는 스리랑카가 따뜻한 곳이기 때문이었고, 2019년에 친구가 스리랑카를 다녀왔기 때문이었고, 우연히 스리랑카를 예찬하는 여행자를 플리마켓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나의 여행은 항상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다행히, 친구도 스리랑카를 마음에 들어했다. 우리는 2019년에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함께 했고,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비슷한 여행을 하고 싶어했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호수와 산을 바라보며 넋놓고 한 달을 보내볼까. 포카라가 유력한 여행지였지만 친구가 소형 비행기를 타는 것에 공포가 있었고, 유독 스리랑카 얘기를 많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스리랑카를 가게 됐다. 운명처럼.


언제나 그렇듯 여행국가에 대해 알아보고 가지 않는다. 무슨 신념 같은 게 아니라 귀찮고 게을러서.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타의 나라와 다르게 스리랑카의 환전은 공항이 제일 잘 쳐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르헨티나 공항에서 제대로 호구가 됐던 기억을 떠올리면 믿기 힘들었지만.


입국심사는 까다롭지 않았는데 과연 여기가 맞나 싶게 허술했다. 줄을 섰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새치기를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종종 그런다고. 스리랑카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불쾌했다.


콜롬보에는 밤에 도착했고, 괜찮아 보여서 예약한 숙소에서는 바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본 것만 두 마리.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캐리어 안에 들어가서 알을 깔까봐 짐도 제대로 펴보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숙소를 옮겼다. 스리랑카에 대한 두 번째 인상.


스리랑카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소프트 인디아로 불린다. 인도를 경험하고 싶지만 자기에겐 너무나 하드코어로 느껴진다면 스리랑카를 가라고. 그 말을 떠올리며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함께한 친구는 방글라데시에서 일 년 살아 본 경험이 있었고, 방글라데시와의 유사점을 떠올리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어쩌면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스리랑카에 정을 못 붙였을지도 모른다.


옮긴 숙소는 호스텔 겸 호텔인데 리셉션도 아주 훌륭했고, 시설도 괜찮았다. 단 하루를 묵었지만, 한국에 매우 호의적인 매니저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스리랑카에서 우리의 첫 끼니는 한식당이었다. 부끄럽게도 도착하자마자 한식을 먹었다. 저녁은 kfc. 잘 모를 때는 역시 글로벌 프랜차이즈.


뭐를 먹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겠고, 내일 당장 관광지인 갈레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사기로 했다. 지금은 온라인 예약이 되지만 2020년에도 스리랑카 기차 예약은 기차역에서만 가능했다. 이때 스리랑카 여행자들의 오픈카톡방에서 온갖 정보들을 주고 받았지만 아무도 기차 예약 시스템을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외국인용과 내국인용이 따로 있다는 것, 에어컨의 유무 좌석의 유무로 등급이 갈리고, 큰 역에서는 예매가 가능하지만 어떤 역은 예매가 안 된다는 것. 사람들마다 예매한 티켓 가격이 다르다는 것과, 같은 날 가도 누구는 티켓을 샀고 누구는 티켓이 없다고 거절당했다는 것. 그런데 기다리다가 다른 역무원에게 살 수 있었다는 것. 한 마디로 체계도 모르겠고 엉망으로 느껴졌다. 모든게 불명확하니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 정도.


우리도 기차역에 두 번쯤 간 것 같다. 처음엔 표가 없다고 허탕을 치고, 오후에 다시 갔을 때 살 수 있었다. 도무지 어떤 시스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습한 바닷가로 떠나는 여행에 에어컨 나오는 좌석을 구매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언제나 그렇듯 대도시 수도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행히 먼저 여행한 친구가 꼭 가봐야 할 곳을 알려줬다. 콜롬보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는 베어풋 매장이다. 쨍한 색감의 천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생활용품들을 파는 곳인데 모두 천연원료로 염색을 하고, 직조해서 천을 만든다. 천을 살 수도 있고, 동전지갑을 비롯해서 다양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이제 겨우 여행 시작인데 물건을 많이 살 수는 없었다. 어차피 콜롬보로 다시 돌아올테니 딱 동전지갑 하나만 사서 들고다니기로.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어떤 것을 사야할지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곳은 딜마 카페이다. 스리랑카는 홍차로 유명하고, 커피를 못 마시는 나는 스리랑카의 홍차에 관심이 많았다. 맛은 잘 모르지만, 다양한 종류의 홍차를 마셔볼 수 있다는 데 흥미가 생겼다. 다행히 새로 옮긴 숙소 근처에 딜마 카페가 있었고, 생각보다 세심하게 차를 고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모든 종류의 차를 비교하며 마셔보고 싶었지만. 이쯤되니 스리랑카가 조금씩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매연과 호객하는 사람들, 시끄러운 경적과 알 수 없는 기차 예매 시스템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드디어 마음에 드는 구석을 발견한 것.



출근시간에 콜롬보 포트 역은 지옥이다. 콜롬보 사람들은 기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두가 앉아서 갈 수 없는 건 당연하지만 때로는 문 밖에 매달려서 가야 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행히 출근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한산해진 뒤에야 기차를 탔다. 쾌적한 바람이 나오는 1등석 기차를 타고 바닷가 마을 옆을 달려 갈레에 도착했다. 갈레는 관광지니까 좀 더 적응하기 좋겠지. 여행자보다는 관광객의 마음으로 스리랑카를 만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스리랑카를 이토록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 아직도 여행자들의 오픈채팅방을 나가지 못하며 스리랑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들을 응원하게 될 줄 몰랐다. 스리랑카 여행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스리랑카를 한 번만 여행한 사람은 없다는 여행자들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다시 스리랑카에 갈 날만 고대하고 있다. 스리랑카 경제가 좋아지려면 많은 관광객이 스리랑카를 찾아야 하는데, 스리랑카 너무 좋은데, 또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스리랑카를 찾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몽골처럼 될까봐 우려되는 마음. 그 모순적인 마음으로 스리랑카 여행기를 남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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