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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May 20. 2024

오늘의 꽃

꽃이 무더기로 온 날

풀과의 전쟁이다. 봄철 남새밭을 가꾸는 시골 아낙 일상은 그렇다. 이름 모를 초록이는 무조건 뽑는다. 엄지와 검지에 힘을 한껏 모아서 뽑혀 나오는 어린 풀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전쟁터에서는 애초 뿌리가 자라지 않게 해야만 뒷감당이 수월하기에 그런다. 잔인하지만 피할 수 없다.

 

고들빼기


바지런히 움직이던 손이 주춤거릴 때가 있다. 뭔가 약초 비슷한 모양이거나, 어쩐지 시장에서 채소로 파는 것과 비슷한 초록은 무명 세계에 있지만 미지의 영역, 더 알고 싶은 연구 대상으로 분류하며 일단 손을 멈춘다. 시간을 두고 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음을 자연은 이미 약속했다. 진득하니 기다리는 인내심만 더하면 된다.

두어 달을 보내고 맞이한 노랑이. 머뭇거리던 손놀림이 찰나에 내린 판단과 선택, 그리고 참고 기다렸던 마음이 안겨준 선물이다. 특별한 날 특별한 만남이리라.


 네이버 렌즈로 찍어보니 ‘고들빼기’라고 알려준다. 처음에는 노랑선씀바귀라고 하여 며칠 전 지인의 브런치에서 보았던 정보와는 달라서 다시 검색하니 두 번 모두 고들빼기다. 잎이 줄기를 둘러감싸고 꽃술과 꽃잎이 모두 노랑이면 고들빼기다. 이와 달리, 씀바귀는 꽃술이 갈색을 띈다. 푸른 잎도 줄기를 감싸지 않고 길쭉하고 뾰족하기만 하다. 시장에서 쌉싸름한 엄마 손맛을 그리며 샀던 기억과 씨앗을 구하여 직접 파종했던 순간이 스쳤다. 결국, 뿌린 손으로 뿌리를 뽑아내고 있었던 어리석은 손이다. 그리고 오늘 영접한 노랑이는 봄 한 철 기다린 결실이다. 반가운 고들빼기꽃이다.


                                                             얇은잎고광나무


고들빼기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허리를 꼿꼿이 펴니 지난주에 놓쳤던 하얀 꽃이 아직도 몇 송이 남아 있다. 가지마다 송이송이 달고 아치 모양으로 늘어졌던 녀석을 오늘도 놓칠세라 급하게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역시 이름을 모른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름은 존재다. 네이버 렌즈는 이번에도 친절하게 ‘얇은잎고광나무’라고 알려준다. 이름도 모르고 무심코 지날 때는 그저 한 송이 야생화, 이름 모를 꽃에 지나지 않았다. ‘얇은잎고광나무’라는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며 바라보니 흰 꽃은 새로 사귄 봄 친구가 되었다. 이름을 아는 벗. 시인은 어쩜 이토록 예리한 시선을 장착했을까 싶다.

                                                                찔레꽃


산허리를 오르내리며 고사리를 꺾고, 풀을 뽑고, 머위랑 정구지, 방아를 베고 나니 찔레꽃이 조용히 잎사귀에 얼굴을 감추고 숨었다. 모내기철이다. 따듯한 남쪽에는 찔레꽃이 만개하면 모내기도 마무리된다. 작년 봄 이맘때는 용산 리움 미술관 앞에서 춤추는 찔레 넝쿨을 만났다. 춘궁기 시골 아이들한테는 간식이었던 찔레다. 엄마랑 연하고 달큰한 찔레 줄기를 건네며 허기를 나누던 시절이 기억 속에서도 함께 춤추던 작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눈앞으로 하얗고 소담하게 찾아들었다. 서운한 듯 잎사귀에 얼굴을 묻고서. 오늘이다. 오늘 만난 찔레꽃이다.


노랑 수국

하루가 저물 무렵 품으로 안긴 오늘의 꽃. 생화를 말렸는데 그 색감은 여전하다. 건조하는 과정에서 탈색되거나 변색이 될 법도 한데 더욱 선명하게 본연의 빛깔을 살린 정성에 감탄한다.


모양새로 보아서는 수국인가 보다. 노란 수국도 있나 싶다. 검색해 보니 친절하게도 보라, 분홍, 하양, 노랑 여러 가지 수국꽃이 있다. 꽃말은 분홍은 소녀의 꿈, 진실한 감정이란다. 가장 흔한 보라 수국은 진심, 이해라고. 오늘 꽃이 보라였다면 딸의 마음이 그럴 것이라 짐작했으리라. 하양은 관용, 너그럽고 상냥한 마음이다. 노란 수국은 승부, 짝사랑. 달덩이 같은 미소를 둘러서 안고 온 딸은 그런 꽃말까지는 챙기지 않았을 터. 품에 안은 에미는 온갖 의미를 찾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다정한 딸 마음을 요리조리 짚어보며.


오늘은 꽃이 무더기로 나에게 온 날이다. 초록이 짙어지는 봄날. 아침 햇살이 문지방을 넘던 시각에 꽃으로 온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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